2008/ 1/ 1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59년(세조 5) 세조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수로(水路)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던 도중 양수리(兩水里)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와 기이하게 여겨 다음날 조사해보니 운길산에 고찰(古刹)의 유지(遺址)가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그 바위굴 속에서 16나한을 발견했으며 굴 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려 종소리처럼 들린 것임을 알게 되어, 이곳에 돌계단을 쌓고 절을 지어 수종사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절에는 현재 1439년(세종 21)에 세워진 정의옹주(貞懿翁主)의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창건은 그 이전이며 세조연간에 크게 중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뒤 조선 말기에 고종이 풍계(楓溪 : 楓漢)에게 비용을 하사하여 중창하게 했고, 1939년에는 태욱(泰旭)이 중수했으며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4년에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대웅보전 등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나한전·약사전·경학원·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수종사부도내유물(보물 제259호)이 있고, 조선시대 금동불감(金銅佛龕)과 금동불·보살상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수종사다보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이 있다.
1957년 수종사의 다보탑을 해체·수리할 때 1층 탑신에서 발견된 조선 초기의 금동불감. 높이 20.15㎝, 폭 18㎝, 길이 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판(銅版)을 조립하여 만든 전각형(殿閣形) 불감으로 8각지붕이 파손되어 반쯤 남아 있고 기단부는 없어졌다. 정면에는 2개의 문짝을 달았으며 표면에 사격자무늬[斜格子紋]와 꽃무늬를 선각하고, 문의 안쪽 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을 타출·양각하여 상 위에만 금니(金泥)를 입히고 부분적으로 채색했다. 발견 당시 내부에는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이는 금동불좌상(높이 13.8㎝)을 중심으로 반가사유형금동보살상(높이 9.4㎝)과 두건을 쓴 금동보살좌상(높이 5.2㎝)이 봉안되어 있었다. 내부 정면 벽에는 나란히 앉은 삼존불상과 그 밑에 2기의 5층탑을 얕게 타출·양각했다. 삼존상은 우측으로부터 선정인(禪定印)·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으며, 모두 앙련과 복련이 상하로 배열된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불감 외부의 좌우 벽면에는 보살좌상이 1구씩, 뒷벽에는 불·보살 삼존상과 그 주위에 4보살과 4비구가 둘러선 군상이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뒷벽의 군상 내용은 아미타극락회상도(阿彌陀極樂會相圖)로 보이며 반원형을 이루는 구도는 고려불화의 2단 구도에서 16세기의 원형구도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조선 전기의 불화이다. 또한 이 불감 안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불좌상의 명문과 복장발원문이 태종의 후궁인 명빈김씨(明嬪金氏)와 성종의 후궁들이 시주·발원한 것임이 밝혀져 이 불감은 1459~9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종사 경내에 있는 조선 초기의 8각5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 높이 330㎝. 본래 수종사 경내에서 동쪽으로 벗어난 언덕진 곳에 있던 것을 1970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기단부는 2단의 8각 지대석을 계단식으로 올린 위에 상대석·중대석·하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이 있고 다시 그 위에 5층의 탑신이 있는 구조이다. 8각 지대석에는 각 면마다 안상을 음각하고, 기단부의 하대석과 상대석에도 안상과 함께 단판(單瓣)의 복련과 앙련을 각각 선각에 가깝게 부조했다. 5층의 탑신은 높이와 폭이 점차 줄어들었으나 기단부가 높고 좁아 전체적으로 세장(細長)한 형태로 안정감이 적다. 탑신 표면에는 각 모서리마다 원형의 석주형(石柱形)을 모각(模刻)하고 그 옆으로 가는 우주(隅柱)를 새겼다. 옥개받침은 3단이며 낙수면과 전각부(轉角部)의 반전은 있으나 옥개석의 폭이 좁고 두터워 둔한 느낌을 준다. 옥개석의 전각 끝마다 풍경이 달려 있고, 상륜부는 일부 파손되었으나 8각의 노반(露盤)·보륜(寶輪)·보주(寶珠)가 놓여 있다. 1957, 1970년에 탑의 여러 부분에서 금동불감, 목조불감 및 목조불상, 금동불보살상 등 조선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탑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출토된 불상과 관련하여 1459~9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와 거의 같은 모습의 8각7층탑이 인근 남양주군 와부읍 월문리의 묘적사에 있어 주목된다.
1939년 수종사에 있는 석조부도를 해체·수리할 때 발견된 고려시대의 사리구 일괄유물. 보물 제25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제9층탑(金銅製九層塔 : 높이 12.7㎝)·은제도금6각감(銀製鍍金六角龕 : 높이 17.4㎝)·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 높이 31.4㎝, 입지름 25.7㎝)로 이루어졌는데, 발견 당시의 장치상황이나 위치는 알 수 없고 청자호 안에 6각감과 9층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금동9층소탑은 정사각형 평상형(平床形) 기단 위에 세워진 정사각형 9층탑이다. 기단 위에는 얕은 2단의 굄이 있으며 기단부에는 안상(眼象)이 투각되어 있고, 격자무늬[格子紋]·복련(覆蓮)·어자무늬[魚子紋]가 음각되어 있다. 탑신은 2층부터 높이가 급속히 줄어들어 체감률이 큰 편이다. 1층 탑신 옆에는 뇌문(雷紋)이 음각된 난간이 둘러싸고 있고, 탑신의 3면에는 화두형(花頭形)의 출입구를 만들었으며, 2층 이상의 각 층에는 아래층 지붕과 연결시켜 난간형을 세웠는데, 정면에만 출입구를 뚫었으며 벽면에는 사격자무늬를 음각했다. 상륜부는 화염보주형 8개 잎으로 된 앙화(仰花)가 장식되어 있다. 이 소탑은 고려의 목조건축구조를 보여주는 불교공예품으로서 탑 안에 다층소탑(多層小塔)을 공양하는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은제도금6각감은 수정(水晶)사리소탑을 넣기 위한 장엄구로 수정사리소탑은 구형(球形) 탑신에 구멍을 뚫어 사리를 안치하는데, 6각의 뚜껑 꼭대기에 보주형이 장식되어 있다. 6각감은 기단부·탑신·옥개부로 분해되며, 기단부에는 중판(重瓣)의 앙련·복련을 타출·양각하고 그 위에 연당초무늬와 칠보무늬를 번갈아 투각한 6각 감신(龕身)과 기왓골이 표현된 6각의 옥개를 얹은 형식이다. 6각의 옥개 꼭대기에는 타출문으로 장식된 앙련 위에 보주를 얹었다. 청자유개호는 몸체 전면에 세로로 도드라진 종행능선(縱行稜線)으로 장식하고, 6릉(稜)으로 접힌 화형(花形)의 뚜껑에는 표면에 연당초무늬를, 뒷면에 모란무늬를 양각했다. 몸체는 녹청색으로, 뚜껑은 녹황색으로 발색되며 대체로 원말 명초의 중국 룽치안[龍泉] 지방에서 제작된 도자기로 짐작된다. 이들 수종사부도내유물은 14세기 후반과 관련되는 작품으로 금강산 월출봉에서 발견된, 이성계가 1391년에 매장했다는 일련의 유물들과도 비교되며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사리구와 공예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수종사다보탑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조선시대의 금동불상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57, 1970년의 2차례에 걸쳐 발견되어 일부는 도난당하고 현재 총 21구가 보관되어 있다. 이 가운데 여래상이 10구, 보살상이 10구, 승상이 1구이며, 제작시기는 크게 조선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조선 전기 작품은 1층 탑신에서 발견된 금동불감 안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불좌상(13.8㎝), 반가사유형보살상(9.4㎝), 두건을 쓰고 손에 구슬을 든 보살좌상(5.2㎝)이다. 이 삼존은 양식·크기·존명으로 보아 본래 함께 제작된 것 같지 않으며, 이 중에서 본존인 금동불좌상은 1439년의 복장과 '시주명빈김씨'(施主明嬪金氏)라는 명문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착의형식이나 근엄한 표정이 남아 있는 단정한 얼굴모습에서 고려 불상양식의 잔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명나라 불상의 영향을 반영하는 조선 초기의 불상양식이 보인다. 이 3구의 상을 제외한 나머지 불보살상들은 모두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10㎝ 남짓한 규모이며, 이 가운데 기단 중대석에서 발견된 것으로 유일하게 앙련·복련의 2중 연화대좌를 가진 비로자나수인의 불좌상은 대좌명에 의해 1628년(인조 6) 인목대비김씨의 발원으로 시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머리가 상체와 비슷한 신체비례에 얼굴을 앞으로 내민 구부정한 자세에서 조선 후기의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나머지 불상들도 머리와 상체가 비슷한 신체비례와 구부정한 자세,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 위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있는 등 공통된 표현을 보이는데, 착의법은 고려시대 이래의 통견(通肩) 착의법 외에 우견편단, 우견편단에 대의로 어깨를 가린 것 등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며 손 모양도 다양하다. 아미타수인이 가장 많고, 촉지인과 아미타수인의 결합, 선정인, 비로자나수인 등이 있다. 보살상들도 보관형태, 지물, 착의법, 손 모양이 다양하여 조선 후기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새해 첫날 운길산 수종사를 찾았다.
힘들고 어렵게 올라 갔지만 보람은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보이는 미륵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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