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정말 오랜 만에 올리는 것 같아요.. 주말을 맞아 텔궁에 오는 발길이 뜸할 거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오늘을 넘기고 싶지 않아 이 밤에 입궁 했습니다.. 정신 없이 쓴 글이라, 정말로 걱정이 앞서지만.. 더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낫다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러니 조금 어설퍼도 반가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어 주신다면.. 이 부끄러움에 대한 보답이 될 것 같아요.. 시기가 바쁜 때이기도 했지만.. 갑자기 스토리가 막혀 버려 헤매느라 텀이 더 길어졌어요. 원래 쓰고 싶은 장면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수 같아 포기하고 났더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버벅거리다가 완성한 38화입니다.. 어찌 보면 두 아이의 망중한을 그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왠지 이렇게 달달한 장면들을 쓰는 게 더 어렵고 힘에 겹네요.. (왜 이럴까요?) 어찌됐든 사건 사고 없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신혼 생활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계곡씬은 오랫동안 긴장된 스토리를 따라와 준 여러분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좀 더 길게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으나, 시간에 쫓겨 짧게 끝맺음 하고 말았는데요.. 그래도 두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읽어 주시길 부탁 드려요.. 제가 상상한 만큼 예쁘게 그려질지는 모르겠으나.. 예쁜 장면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니 거절하지 마시고 잘 받아 주세요.. 부족한 솜씨지만 예쁘게 포장했으니.. 탱즈, NeverAGAIN, 프리티우먼, yuri, 야구광, 에메랄드, 우실이, 두리안, 요안나, 천칭자리, 초록빛아이, 아즈마이, 오만과편견, 선아, 그리움, 카시오페, 배따라기, 미래소년코난, 미쁨, 하얀비, 짱돌이, 쥰세이, 아별, 로사리오, Jkelly, 대덕원, 하늘바라기, 블루베리, 계룡산줌마, 주사랑, 에궁, 미즈, 맑음, 요술색연필, 달꿈이, 좋은생각, 아로아, 성준엄마, 바나나1978, 노란병아리, 은정, 하얀구름, jcw, 보보보, 저승사과, achieve210, 권안찬양, 맑은 하늘, 레드팁, hyunju9220, 미니, park, 오렌지, 마라이, 이미지, 별을쫓아, 라뷰, 사과꽃향기, 꽃녀한구, 이쁜엄마, 푸른장미, 꼬맹이맘, 서울여자, 소원, 알프스, 마리, 시베리안꼬꼬, 세이지, 봄비, 진제이, 바이러스5, L군, 비타민, ♡사랑스런 뒈갈♡, Jean, 달무리, 비셀스, 똘똘이, 꿈꾸는날, 구찌, 사랑jy, 밥팅써니, 시리우스 대감님.. 37화에 구독료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37화 올리고 댓글 올라가는 걸 보는데 위축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님.. 글이 재미 없어서인지 댓글이 정말 더디 올라가더군요. 그래서 솔직히 60개도 안 넘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루 하루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 숫자를 보고 고맙고 유쾌했어요. 정말로 글 쓰기가 안 돼서 괴로웠는데.. 여러분들 덕분에 힘낼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 드리구요.. 그리고.. 염치 없는 부탁을 드리자면.. 텔궁의 침체된 분위기는 저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에요. 그러니 많이들 힘내 주세요.. 혼자만의 메아리는 참 외롭다는 거.. 알아 주시길.. 그러니까 함께해 주시길.. **쏭기자에게 그 남자 그 여자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신 분들 많으신데요.. 제가 의도적으로 대답을 회피한 건 아니구요, 어쩌다 보니 한 편 한 편 글 올리기 급급해서, 물어보신 것에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뒤늦은 답변이 맘에 드시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음.. 현재 상태로 동시 연재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모든 것은 왕녀 연재가 끝난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기다리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려요.. 자꾸 수습 못할 일이 많아지네요.. --;; **쏭기자에게 개인적으로 지난 소설들 갠소 파일을 부탁하신 분들이 많으신데요.. 아직 뚜렷한 답장을 드리지 못하고 있어 가슴 한쪽이 답답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파일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제게 메일로 어렵게 부탁하셨을 텐데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제가 갖고 있는 파일들이 정리가 안 돼 뒤죽박죽인 상황이에요. 그래서 어떤 것이 최종 파일인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할 짬이 안 나고 있어요. 그 때문에 파일을 보내기가 어려워 계속 미뤄 두고만 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파일들이 다운이 안 되는 상황이라, 저도 참 답답한데요.. 이건 제가 파일 정리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해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기다려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오늘 시날방 들어와서 아이리스와 제 소설을 비교하신 분들의 글을 봤어요. 제가 액션 첩보 이런 거 좋아하는 거 다들 아실 텐데.. 그래서 아이리스를 무척 기다렸어요. 평가가 분분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부디 물량 공세가 끝이 아니길 기도했는데.. 기다린 보람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이리스 보면서 비밀 커플을 떠올리셨다니.. 저로썬 감개무량할 따름이에요. ^^ **끝으로 시날방을 썰렁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 심히 반성하고 있구요.. 마감 끝나고 스토리를 확실히 잡아 속도를 내보도록 노력할게요. 담주엔 분발하겠습니다. 그럼, 주말 잘 보내시구요.. 가을비 오고 나서 춥다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 제38화 지금 이대로.. #1. 정화산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으나, 일단 궁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이.. 정말 상쾌했다. 비록 승마를 배우지 못해 폐하의 애마에 동승한 탓에 끈적한(?) 시선을 받아내야 했지만, 바람을 가르고 달려가는 기분이.. 얼굴을 스치우는 햇살과 바람은.. 정말 최고였다. 실로 오랜 만에 만끽하는 자유와 해방감에, 정화산으로 가는 내내 채경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동안 간택령을 치르면서 느꼈던 긴장감과, 국혼을 치르면서 가졌던 두려움, 시해 사건을 겪으면서 감내했던 고통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끝도 없이 달려가면서 아픈 과거는 훌훌 털어 버렸다.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고통스런 기억은 모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털어낸 가슴엔.. 비워낸 머리엔..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채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와 소망을 품고 정화산에 도착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영험한 기운이 산을 휘감고 있었다. 보는 순간, 왜 왕실에서 이 산을 왕실 사냥터로 지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세가.. 참으로 오묘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뒤엉켜 있어, 웬만한 사람은 산에 홀려 정신을 놓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리 정화산에 대한 첫인상을 정리하며 군사들이 사냥할 채비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환익이 불쑥 나타나더니 폐하께서 찾으신다며 채경을 산 속으로 안내했다. 안내는 금방 끝이 났다. 산 속으로 얼마 들어가지 않은 곳에 제법 너른 공터가 나왔는데, 신은 그곳에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신이라는 걸 알고 보는데도, 평소 보던 곤룡포가 아닌 무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다. 그래서 감상하듯 신의 뒷태를 훑어보던 채경은, 신이 몸을 돌려 마주보자 싱긋 웃으며 신에게 다가갔다. 채경: 언제 예까지 들어오신 거예요? 신: 몸 풀기로 순간 이동 한번 해 봤어. 채경: (어이 없다. 몸 풀기로 순간 이동이라.. 참.. 남다른 분이시구나..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신: 여기 오니까 어때? 채경: 좋아요.. 신: ………………………그게 다야? 채경: 그럼 뭐라고 해요? 신: 좀 길게.. 자세하게 감상평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댄 수다쟁이잖아~) 채경: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말 좋아요.. 이곳의 공기도.. 바람도.. 햇살도.. 때묻지 않은 맑은 기운까지 전부.. 신: (채경 보는) 채경: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궁 안의 답답한 공기랑은 차원이 달라요.. 그냥.. 좋다는 생각만 들어요. 신: (궁 안의 공기랑 비교하니.. 왠지 좀 미안해진다. 그리고.. 왠지 좀 답답해진다. 이런 공기 속에 살아가던 사람을 갑갑한 궁으로 데려간 장본인이 자신이므로..) 채경: (신이 미안해 한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사냥하는 덴 얼마나 걸려요? 신: 병사들이 두세 시진 몰고 다니면, 내가 반 시진 정도 정리할 거야. 채경: 그럼 병사들이 사냥하는 사이에 점심 수라 드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최상궁을 불러 지시를 하려고 하는데..) 신: 일단 식사는 됐고! 채경: 예??? 신: (환익에게 고개짓을 한다.) 환익: (허리를 숙여 명령을 받잡고 어딘가로 향한다.) 채경: ??? 신: 밥은 좀 미루고 그 전에 할 게 있어. 채경: 무엇을 하시려구요? 신: 운동 좀 해야겠다고 했던 말 기억나? 채경: (아침에 한 얘기이니 기억은 하고 있지만, 그건 농담으로 한 얘기 아니셨나? 정말로 나 살 빼게 운동시킬 생각이신가? 점심도 건너 뛰게 하고..) 신: 류대장이 운동 기구를 갖고 올 거야. 채경: 예??? 신: 제대로 하면.. 확실히 운동 될 거야. 채경: 무슨.. 신: 마침 오네~~ 채경: (신이 바라본 곳을 쳐다본다. 그리고 환익이 들고 오는 물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설마.. 저게 운동 기구는 아니겠지?) 환익: (신에게 목검을 드린다.) 신: (목검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채경: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머리 한쪽에서 두려움이 엄습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일이 아니길 바라며 신을 바라본다.) 신: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채경에게 목검을 내민다.) 채경: (신 보는) 신: (눈으로 채경에게 이걸 받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채경: (멀뚱멀뚱 신을 쳐다보며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을 짓는다.) 신: 뭘 그렇게 뻔히 봐? 이거 안 받을 거야? 채경: ‘그러니까요~! 그걸 왜 주세요? 그 흉측한 건 왜 주는 건데요?’ 신: (채경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팔 아파~ 이래 보여도 제법 무겁다고.. 채경: (신 보는) 신: (팔을 살짝 흔들며) 무겁다니까~ 채경: ……………………………………..검은 원래 무거운 거예요.. 신: (채경 보는) ??? 채경: 그 어떤 검이라도.. 목숨을 짊어지고 있잖아요.. 헌데 어찌 안 무겁겠어요? 가벼우면 더 이상하죠.. 신: ………………………………………(채경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모른 체하고 싶어진다. 왠지 그런 기분이다.) 채경: (조심스레 신을 올려다본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폐하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신: (채경의 말간 눈을 살짝 회피하며 이리 말하고 만다.) 진짜 검도 아니잖아. 채경: (살짝 실망스러운.. 자신의 생각이 전달 안 됐다는 생각에 아쉬운..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안 받아 주는 폐하에게 섭섭한 감정이 드는지도 모르겠는.. 그래서 살짝 한숨 쉬며) 목검도 검은 검이에요. (이리 말할 수밖에 없다.) 신: 이걸로는 사람 못 죽여~ 채경: 꼭 죽고 사는 문제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아시지 않습니까? 신: 어렸을 때 나무 막대기 갖고 안 놀아봤어? 채경: 놀이하던 막대기랑 수련에 쓰는 목검이 어찌 같습니까? 신: 장난치는 것처럼 갖고 놀면 똑같아~ 채경: 목검으로는 장난도 치고 싶지 않습니다. 신: (두 손을 허리에 얹고) 후~~~~~~~~~~~~~~ (긴 숨을 토해낸다.) 채경: (신 보는) 신: 따지지 말고 좀 받아 주면 안 돼? 채경: 예??? 신: 그냥 군소리 없이 받아 주면 안 돼? 채경: (폐하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지만 쉬이 물러서지 않는다.) 의도를 가지고 목검을 쥐어 주시는데, 어찌 넙죽 받습니까? 신: (일단 말 삼키는) 채경: 폐하께선.. 여기 가자는 폐하 말씀에 걱정하는 제게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다한 걱정들을 치워 버리고 그저 따라 나섰습니다.. 헌데..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신: (채경 보는) 채경: 폐하의 심화만 생각했지,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를 놀라게 할 계획이셨다면.. 성공하셨어요. 지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놀랐으니까요. 신: ……………………………..내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채경: (신 보는) 신: 내 의도를 뭐라고 짐작하길래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놀라? 채경: .. 신: 그대가 싫다고 하면 안 시킬 거야. 채경: (신 보는.. 처음으로 폐하의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신: 내 의도대로 움직여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일단 받아. 채경: .. 신: 사람 손 무안하게 계속 거절할 거야? 이래 봬도 이런 식으로 거절 당한 적 없어서 엄청 낯부끄럽거든? 채경: .. 신: 정말 이럴 거야? 채경: ‘하..’ (마음이 안 내키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 수밖에 없다. 목검을 받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데, 이렇게 자기 손이 무거웠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손을 뻗어 매끄러운 목검을 받아 드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신: (채경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고 덩달아 불쾌해진다. 이 여잔 왜 이렇게 민감한 걸까? 당장 저 칼로 누군가를 해치라는 것도 아니고, 목검 좀 휘두른다고 누가 죽어나가는 것도 아닌데, 남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만으로 만지는 것조차 싫어하고 있었다. 정말..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것 같아 갑갑해진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채경이 의도에 따라줬으면 했다. 진심으로 그걸 바랬다.) 채경: (신은 쳐다보지도 않고 목검을 뚫어져라 내려다본다.) 신: 어렸을 적에.. 기공술 수련했지? 채경: (신의 질문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신을 본다.) 신: 수련하면서.. 어떤 훈련 받았어? 채경: (꿈뻑꿈뻑) 신: 이연 스님께서 뭐 가르쳐 주셨어? 채경: ……………………..알고 싶으신 게 무엇인데요? 신: (일단 말 삼키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는 말을 일단 삼키는..) 채경: (신 보는.. 대답을 기다린다.) 신: …………………………….검술.. 배웠어? 채경: (하.. 역시나.. 그 질문인가요?) 신: 승마도 못하는 거 보면.. 검술도.. 안 배운 거지? (조심스레 묻는다.) 채경: (목검을 꼭 움켜 쥔다.) 신: 검이나 활.. 이런 거 만져 본 적 없지? (스님이 기공술을 가르쳤을 테니, 무기 다루는 건 안 가르쳤을 것 같다.) 채경: 기대에 어긋나서 죄송한데요.. 활은 아니지만 검은 좀 다룰 줄 알아요. 신: ??!!! ‘검을 다룰 줄 안다고?’ 채경: 이연 스님이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검기(劍氣)였어요. 신: 검기?!! (그런 고등 검술을 갖고 계셨다고?) 채경: 네.. 검에 기를 불어넣어서 그 기로 돌도 베고 나무도 베고, 물도 가르고.. 그게 너무 신기해서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어요.. 처음엔 안 된다고 만류하시다가, 제가 워낙 고집을 부리니까 어쩔 수 없이 가르쳐 주셨어요.. 신: 그……럼.. 검기를 다룰 줄 안다는 거야? (이건 너무 예상치 못한 얘기라 진심으로 놀란다.) 채경: (도리도리) 아니오.. 그럼 내가 여기 있겠어요? 강호를 평정하고 돌아다니고 있지.. 신: ??? ‘그럼 뭐야? 배웠다며?’ 채경: 검기를 검에 맺게 하기 전에, 검술의 기본부터 알아야 한다고 해서 기본기부터 배웠어요. 그런데 기본 검술이라는 게 연신 찌르고, 돌리고, 베는 동작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야 하는 거잖아요. 검기는 멋있었지만, 기본 검술은 하나도 안 멋있더라구요.. 힘만 들고.. 그래서 하다가 그만 뒀어요. 신: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잔뜩 기대했다가 아니라고 하니까 실망이 더 큰 것 같다.) 채경: (살짝 목검을 휘둘러 보며) 오랜 만이라 엄청 어색한데요? 신: 그래도 금방 익숙해질 거야. 몸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채경: (신 보는) 신: (채경 마주 보는.. 이번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더는 회피해서 해결되지 않을 시점이었다. 제대로 납득시키고 검을 쥐게 해야 했다. 일단 손에 쥐게 했으니, 시작은 된 셈이었다.) 채경: ………………………….저.. 검술 익히게 하시려구요? 신: 응..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채경: 제가 짐작했던 의도가 맞았네요.. 신: (이럴 땐 눈치가 빠르단 말야..) 검술 익히는 게 무서워? 채경: (신 보는) 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놀랐다며? 검술 익히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야? 채경: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신: (채경 물끄러미 본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지만, 그 말들은 다 삼키고) 그래도 배워. 채경: (신 올려다보는) 신: 무서워도 배워. 채경: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신: 내가 필요해. 채경: ??? 신: 그대보단 내가 필요해서 배웠으면 해. 채경: ??? 신: (조금 혼란스러운지 제자리걸음을 한다. 처음엔 조금 몸을 뒤척이는 정도였으나, 점점 걸음을 떼며 채경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무언가 답답하고 민망한 듯 표정마저 굳어지고 있다.) 채경: 폐하.. 신: (채경의 부름에 멈칫 서서 그녀를 보는..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겠다. 지금은.. 평소처럼 자신을 걱정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대가 군말 없이 하겠다고 했으면.. 이런 얘기까진 안 해도 됐을 텐데.. (조금 원망스럽다. 사람은 이기적이라, 자기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자신이면서도, 당장 채경이 따지지 않고 목검을 받아 줬으면 이런 부끄러운 말까지 안 해도 됐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채경: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신: 왕으로서.. 이런 걸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나한텐 굴욕이야. 그 점에 있어선.. 희연 공주가 내게 한방 먹였다고 할 수 있어.. 채경: ??? 신: 이번 일을 통해서 궁(宮)이 완전무결하게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 누군가 맘만 먹으면.. 이 나라 왕실을 더럽힐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게 나한테 얼마나 뼈아픈 사실인지.. 부끄러운 치욕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채경: 폐하.. (신이 안쓰럽다.) 신: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궁내 안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게 밝혀진 이상, 난 궁의 주인으로서 최대한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이래. 채경: 저한테 목검을 쥐어 주고.. 검술을 익히게 하는 게.. 폐하의 비책이십니까? 신: 그렇게 말하지 마. 이 방법밖에 없었냐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구! 채경: (일단 말 삼키는) 신: 궁성 경계를 강화할 거야. 수비대, 호위대 수를 늘릴 거고, 궁내 출입도 제한할 거야. 신원이 보증되는 자들만 들일 거고, 경비 태세도 전시 상황으로 승급시킬 계획이야. 교태전 경비에 호위대를 투입할 거고, 그대와 할마마마에게 그림자 부대를 붙일 거야. 궁에 군대를 데리고 들어와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어. 헌데.. (채경 보는) 채경: (신 보는) 신: 이렇게 한다 해도 새는 구멍이 있을 거야. 아무리 막는다 해도 파고들 틈은 있기 마련이니까.. 채경: .. 신: 그래서 부탁하려고.. 그대 스스로 위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면 하니까.. 채경: 그 능력이라는 것이.. 검술입니까? 신: 응.. 채경: 저는 보통의 여인과 다릅니다.. 신: 그래도 필요해. 채경: 여차하면 도망가면 되잖습니까? 신: 그놈도 그대처럼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채경: .. 신: 하늘도 날고 검도 잘 쓰는 놈이면 어떡할 건데? 채경: 제가.. 무사들처럼 검을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신: 시간만 벌 정도면 돼. 채경: ??? 신: 내가.. 누군가가.. 그대에게 달려가기 전까지만 버텨 주면 돼. 검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할 생각은 없어. 피를 묻히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씻어도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피 냄새로 진저리 치는 건 나 하나면 돼.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대 손에까지 피 묻혀 가며 지키고 싶은 건 없어. 그 정도로 미치진 않았어. 채경: ‘폐하..’ 신: 그대의 힘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잖아. 그대를 죽여 다른 이를 살리는 힘이잖아. 그런 그대 손에 피를 묻히는 순간, 그댄 죽을 거잖아. 살자고 묻힌 피 때문에.. 죽을 거잖아. 그걸 아는데.. 너무 잘 아는데.. 내가 사람 죽이라고 그대 손에 검을 쥐어 주겠어? 채경: .. 신: 최소한의 대비를 하자는 뜻이야. 그러니.. 채경: 제가.. 검술을 익히면 마음이 놓이시겠습니까? 신: (채경 보는) 채경: (목검을 들어 보이며) 이 흉측한 녀석이랑 친해지면.. 걱정이 덜어지는 겁니까? 신: (피식 웃는.. 채경의 농담 한 마디에 지금까지 긴장해서 열변을 토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는..) 채경: 폐하의 마음의 짐을 더는 일이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신: (놀라는.. 좀 더 설득해야 납득해 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승낙해 주리라곤 생각 못했다.) 채경: 그래야 마음이 놓이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신: (약간 울컥해지는..) 채경: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신: ??? (부탁..? 그 어려운 청을 들어 준 후에 하는 부탁이라.. 왠지 긴장되는데?) 채경: 궁성 경계를 명(命) 하시는 건 폐하의 소관이나.. 그리 옥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 무슨..? 채경: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 궁은 운우국의 정궁입니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의 성이기도 하지요. 고된 삶 속에서 그들이 꾸는 최고의 꿈이 자리하는 곳이자,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그래서 무너져선 안 되고, 그래서 버텨 주어야 하는 게 궁이고.. 왕실이에요.. 우린.. 이곳은.. 희망이어야 해요. 그러니 걱정 어린 시선으로 궁을 바라보게 해선 안 돼요. 곧 침략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을 안겨 줘서도 안 돼요. 방어를 철저히 해 대비하는 건 좋으나, 왕실이 겁을 먹었다고.. 궁조차 안심할 수 없다고 광고하진 말아요. 이런 일쯤 우리 궁엔 전혀 문제 없다고.. 왕실은 끄떡도 안 한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적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는 모습 같은 거.. 우리가 움츠려 들었다는 거.. 보여 주지 말아요. 그러지 말아요.. 신: .. 채경: 저는.. 우리는.. 괜찮을 거예요. 폐하가 계시잖아요. 신: .. 채경: 폐하가.. 지켜 주실 거잖아요. 저는.. 폐하를 믿어요. 백성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러니 이리 무너지지 마세요..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저 때문에 약해지신 거라면 더더욱.. 신: (채경을 잡아당겨 품에 안는다.) 채경: (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고른다. 너무 많은 말을 토해내느라 숨이 가쁘다.) 신: (자신의 가슴에 숨을 밭아내는 채경을 꼭 끌어안는다.) 채경: (왜 이렇게 격하게 안으시는지.. 연유를 모르겠다. 혹시나 자신의 고변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신: (채경의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그는 지금 채경에게 고마움과 감동에 빠져 있다.) ‘그댄.. 그댄 역시.. 남달라..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알아채서 선수치질 않나.. 내가 이리 겁을 집어 먹은 이유가 그대 때문이라는 걸 알고 되려 날 위로하려고 하잖아. 그대 하나 지키자고 궁을 봉쇄하려는 내 행동에 백성들이 불안해 할 걸 먼저 걱정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 준다 약조한 후 그걸 대신해 나와 백성들을 위한 충언을 부탁으로 돌리고.. 대체.. 어디까지 날 감동시킬 거야? 어디까지 날 부끄럽게 할 셈이야? 대체 어디까지..’ 채경: 폐하.. 신: 미안해.. 채경: 예?? 신: 늘 양보하게만 해서.. 나 좋을 대로만 하자고 해서.. 채경: ………………………….늘 저한테 져 주시잖아요, 결국엔.. 신: 져 줘도 좋은 것만 그런 척하는 거야. 정작 중요한 건 늘 내 멋대로 하는 걸.. 채경: 그건 당연하잖아요. 임금님이신데.. 신: (채경을 품에서 떼어내며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채경: 임금님께서 이 정도로 양보하는 것도 대단한 거예요. 제가 그리 만만한 아내는 아니잖아요. 늘 양보한다곤 해도 호락호락 물러선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리고 공짜로 해 준 적도 별로 없구요.. 신: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거야? 그리.. 물러나 줄 거야, 이번에도..?’ 채경: 그래서 말인데요.. 저.. 부탁이 하나 더 있는데.. 신: ??? 채경: 검술 배우는 조건으로 부탁 하나만 들어 주세요. #2. 세 시진 후 “우르르 쾅쾅” 저 멀리 아련하게 들려오는 굉음에, 잠시 땀을 훔치고 있던 채경은 하늘을 바라본다. 키 큰 나무들 너머 어디쯤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계실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오랜 만에 잡아 본 검 때문인지 잠깐 뛰었는데도, 이리 숨이 거칠어지는 자신과 비교해, 하늘과 땅을 울리며 정화산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임금님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다. 채경: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환익: (채경 보는) 채경: (환익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환익: (채경이 돌아보자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채경: 내가 너무 오래 쉬는 거예요? 환익: 아, 아닙니다. 채경: 일어나라고 쳐다본 거 아니에요? 환익: 아닙니다. 그저.. 채경: 그저.. 뭐요? 환익: 폐하께 가고 싶으신 게 아닌가 해서요.. 채경: (난 또 뭐라고..) 아니에요. 이따 데리러 오겠다 하셨잖아요. 그럼 기다려야죠.. 환익: (채경 보는) 채경: 또 왜 그렇게 봐요? 환익: 처음 뵀을 때.. 이런 모습은 상상하지 못해서요.. 채경: ??? 환익: 아뢰옵기 송구하나, 중전마마께서 기다리란 말에 이리 얌전히 기다리시는 분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채경: (풉!!) 환익: (체신머리 없이 웃음이 터져 버린 채경을 어이 없이 바라본다.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모습을 보며,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조신한 중전마마는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채경: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는다. 박장대소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숨을 참으며 웃는 게 더 힘들다. 그리고.. 그게 더 환익에게 웃겨 보인다는 걸 모르고, 스스로는 참고 있다고 생각하며 격한 웃음을 흘린다.) 환익: (채경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의 그때 그 모습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알겠다. 중전이 되시고 난 후, 중전이라는 옷을 입고 계셨을 뿐.. 인간 채경: (서서히 진정이 되는지 웃음이 잦아든다. 눈물이 어리던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미안해요.. 사람을 면전에 두고 너무 웃었네요.. 근데.. 대장님의 솔직한 발언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환익: 그리 웃으셔선 안 됩니다.. 채경: (고개 끄덕거리며) 예~~ 체신머리 없이 웃으면 안 되죠. 나는 중전마마니까~ ^^ 환익: 그 얘기가 아닙니다. 채경: ??? (그러면요?) 환익: 무례한 말씀을 올린 저를 꾸중하셔야 했습니다. 제 얘기에 그리 웃으셔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채경: .. 환익: (채경 보는) 채경: 방금.. 내가.. 대장님을 혼내야 했다구요? 환익: 예, 마마.. 채경: 솔직한 얘기였는데두요? 환익: 예.. 채경: 사심이 없었는데두요? 환익: 예.. 채경: 그럼, 앞으론 내 앞에서 솔직한 얘기 안 해 줄 거잖아요. 환익: (채경 보는) 채경: 이연님이 그러셨어요. 본인이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그건 무례한 게 아니라고.. 환익: .. 채경: 그러니까 대장님도 솔직하게 얘기해요. 격식에 맞춰 하는 얘기가 나한텐 오히려 불편하고 어색하니까.. 환익: 하오나.. 채경: (환익의 반박을 막고자) 근데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화제를 돌린다.) 환익: (말 삼키고 채경 보는) 채경: 대장님은.. 혼례 아직 안 치렀죠? 환익: (갑자기 혼례 얘긴 왜 꺼내시는지 참으로 뜬금 없다. 그래서 뭐라고 대꾸해 줄 생각도 못한다.) 채경: 올해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간다던데.. 환익: 알고 싶으신 게.. 왜 아직까지 혼례도 안 올리고 사냐는 것입니까? 채경: (피식) 네~ 근데 이런 질문 많이 받았나 봐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선수를 치고.. 환익: (그저 웃는) 채경: 왜.. 아직 혼자예요? 환익: (채경 보는) 채경: ………………………………….곤란한.. 질문을 한 건가요? 환익: 헌데.. 갑자기 제 혼인이 왜 궁금하신 겁니까? (저는 그게 더 궁금한데요..) 채경: (말 돌리려고 하다 보니까 평소에 궁금했던 게 튀어 나왔을 뿐이에요. 하지만 이리 말할 순 없으니..) 폐하께서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아서요.. 환익: (얼굴 굳어지는) 폐하께서.. 제 걱정을 하신다구요? 채경: (환익의 표정이 너무 굳어지자 살짝 긴장한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환익: 폐하께 불충을 저지르고 있군요.. 채경: (환익이 깊이 좌절하자 좌불안석이다. 다른 핑계를 댔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건드려선 안 되는 핑계를 가져와서 환익을 곤란하게 한 것 같아 당황스럽고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구요.. 그저, 혼기가 꽉 찼는데 장가를 안 가니까.. 신경이 쓰이시는 것 같아요.. 환익: 평생 혼례를 치르지 않겠다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도.. 포기를 못하시네요. (후..) 채경: (환익 보는) ‘폐하께.. 평생 혼례를 안 올리겠다고 했다구요? 왜요? 류대장님 같은 분이 왜.. 평생 독신으로 살려고 하는데요?’ (갑자기 환익이 혼인을 안 한 연유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환익: 폐하께서 혼례를 치르더니 혼자인 제가 좀 안쓰러우신가 봅니다.. 채경: 그 마음을 안다면.. 생각을 바꿔 보는 게 어때요? (남자라면 가문을 위해 자신의 자손을 남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기본적인 포부조차 갖고 있지 않는 거예요?) 환익: 생각이.. 쉬이 바뀌질 않습니다.. 처음부터 혼자 살겠다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제 와서 누군가와 연을 맺고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채경: ………………………………….사모하는.. 여인이 있나 보군요.. 환익: (그저 미소 짓는) 채경: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환익: (채경 보는) 채경: (안쓰러운 표정으로 환익을 마주 본다.) 환익: (심성 곱고 다정한 중전마마의 심중을 건드린 듯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구어 줄 것 같은 큰 눈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송구스러워진다. 그저 그런 옛날 이야기.. 풋풋했던 감정.. 과욕으로 놓친 인연.. 아련한 여인의 기억..일 뿐인데.. 저리 마음 아파하실 것이 못 되는데..) 채경: .. 환익: 제가 폐하를 처음 뵌 것이 마마의 나이였습니다. 채경: (환익 보는.. 연을 맺지 못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폐하의 얘기가 나오자 의아하다.) 환익: 그때의 저는 출세욕에 불타 있었지요.. 채경: !! 출세욕이요? 환익: 예.. 출세욕에 눈이 멀어 폐하를 깔보기까지 했습니다. 채경: !!!!!!! 환익: (10년 전.. 그때의 일들이 떠오르는지 눈빛이 애잔해진다.) 채경: (놀라운 얘길 내뱉은 사람은 너무 멀쩡해 보이고, 자기만 놀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충성을 다하고 있는 환익이 출세욕이 불타 폐하를 업신여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계속 어리둥절하다.) 환익: 저희 집안은 대대로 무관으로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습니다. 마마의 집안이 대대로 문관을 배출한 것처럼요.. 채경: .. 환익: 헌데.. 제 아버지 대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지요.. 채경: ??? 환익: 백부께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셨습니다. 채경: (침 삼키는) 환익: 병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무기와 군량미를 빼돌려 이웃나라와 밀거래를 하셨다더군요. 채경: !!! 환익: 천인공노할 대역죄는 아니나, 가문에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긴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지요. 하여, 관직에 있던 어르신들 대부분 국경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퇴직하셔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러셨구요.. 채경: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환익: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출세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우러러보던 백성들은 손가락질 하며 수군거렸지요.. 남자로서.. 무관으로서.. 야망이 크셨던 아버지에겐,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무너지신 건 아닙니다. 국경 지방을 전전했지만,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셨지요.. 국가에 대한 충성.. 왕실에 대한 존경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사셨지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게 되었을 무렵부터, 아버지의 좌절을.. 뼈저리게 통감하며 자라야 했으니까요.. 채경: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타인의 잘못으로 인해 꿈과 미래가 망가져 버린 자의 슬픔을.. 좌절을.. 모두다 이해할 순 없으나, 그 절망감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기에 환익의 아버지와 환익이 느꼈을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 환익: 그래서 어렸을 때의 저는.. 아버지를, 무너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하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내 힘으로 가문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잃어 버린 신뢰를 회복해 다시 한번 일어서겠다고 결심했지요.. 채경: .. 환익: 아버지는 무모하다고 말리셨습니다. 그래 봤자 너만 상처 받을 거라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당신처럼 내 삶도 좌절로 점철될까 두려워하셨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만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땐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거든요. 오로지 도성으로 가서 폐하를 만나겠단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응시했고, 무관 부문에서 장원급제를 했지요. 기반이 없었던 제겐.. 꿈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내 인생이 풀리기 시작하는구나.. 가문의 재건이 꿈만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헌데.. 채경: .. 환익: 장원급제한 저를 대궐이 아닌 동궁으로 배속시키더군요. 호위대가 아닌.. 익위사가 되라 하더군요.. 그때의 좌절감이란.. 정말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요. 채경: 동궁 익위사도.. 중요한 직책이잖아요. 헌데..? 환익: (피식 웃으며) 마마께선 당시 상황을 잘 모르실 테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채경: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르다는 거지?) 환익: 그때만 해도 폐하의 위치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추앙받아 마땅한 동궁이셨지만, 세력이 미약했지요. 유일한 적통 후계자이셨지만, 왕실 대대로 전해진다는 힘도 약하셨고.. 지지 기반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하여, 언제 승하하실지 알 수 없는 국왕과 미래가 불투명한 동궁보다는 이석 대군의 세력이 더 컸지요. 허나.. 병중이긴 해도 폐하를 보필하는 건 무관으로서 최고의 영예였기에, 호위대에 배속되길 원했습니다. 헌데.. 동궁으로 가라 하더군요.. 출세욕에 불타오르던 제게 그건 귀양을 가라는 것과 같은 명(命)이었습니다. 채경: .. 환익: 그렇게 폐하를 처음 뵈었습니다. 그리 불온한 마음으로.. 불만 어린 시선으로.. 뵈었지요. 지금은 죽을 만큼 송구스러우나.. 당시엔 내 불만이 너무 커서 내가 무엇을 잘못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채경: .. 환익: 그러나 폐하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되고..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 후.. 평생 함께하겠다 결심하게 됐습니다. 나의 명예도.. 가문의 재건도.. 폐하보다 중요치 않다 생각하게 됐지요. 폐하가 열어갈 세상을 보기 위해 그분의 앞길을 방해하는 이들은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분의 이상을 믿었고.. 재능을 믿었고.. 아량을 믿었기에, 제 행동엔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채경: (폐하와 환익의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뛴다. 그녀가 모르는 그 시절, 그들의 이야기.. 마음들.. 때문에 뭉클하다.) 환익: 지금껏 폐하께 실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늘 폐하는 옳으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채경: …………………………………………..부러운데요? 환익: 무엇이 말입니까? 채경: 저는 고작 폐하를 알게 된 지 반 년이 흘렀을 뿐인데.. 대장님도.. 아버지도.. 제가 모르는 폐하의 시간들을 함께 하셨잖아요.. (오래도록 외로웠던 그분의 곁을 지켜오셨잖아요..) 환익: 허나.. 저도, 좌상 대감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마마께서 하고 계십니다. 채경: ??? 환익: 앞으로도 마마께서 하실 일이 많을 겁니다. 폐하의 허한 마음 채워 주실 이는.. 마마밖에 없으니까요.. 채경: .. 환익: 마마를 처음 뵈었던 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놀라움은 그치질 않았지요.. 좌상 대감의 여식이라고 보기 어려운 높은 공력과, 왕명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 못지 않은 배포.. 친구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우정.. 그 모든 게 여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 버렸습니다. 그래서 폐하가 마음에 품으신 정인이 마마라는 걸 알았을 때.. 우려보단 기대가 더 컸습니다.. 채경: (환익 보는) 환익: 보통의 여인들에게 만족하지 못한 폐하께서도, 마마라면 진정한 안식을 얻을지 모른단 기대가 됐거든요. 그래서.. 마마가 반가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폐하께서 이제야 쉴 곳을 찾으셔서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모릅니다.. 아마 좌상 대감께서도 비슷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늘 홀로이셨던 폐하께 짝이 생겨서 안심이셨을 겁니다. 채경: (어깨가 무거워진다. 모두의 기대가 태산처럼 크고 무겁다. 모두가 내가 폐하의 고독을 없애 줄 거라 하는데.. 과연 내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폐하의 곁을 지켜 드리는 것 밖엔.. 가끔 웃게 해 주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환익: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 애써 밝게) 마마께서 폐하를 피해 다니실 때, 입막음 하느라 저 고생 많았습니다~ 채경: (환익 보는) 환익: 폐하께서 마마의 존함을 여쭈었을 땐 등골이 서늘했지요.. 그때가 아마.. 제가 처음으로 폐하께 거짓을 고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채경: (씨익) 내가 두고두고 빚을 갚아야겠네요? 환익: 빚 청산은 관두구요.. 폐하 잘 봐 주십시오. 저리 차가워 보이셔도 속은 여린 분이십니다. 채경: (환익의 말을 모두 공감하긴 어렵지만 따지지 않는다. 대신 다른 말 한다.) 헌데.. 대장께서 출세욕이 높았다는 거랑 혼례를 못 올린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환익: 예??? 채경: 혼인 안 한 연유를 물었는데, 왜 얘기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거예요? 환익: (채경 보는) 채경: (환익 뚫어질 듯 마주 보는) 환익: ………………………………………안 잊어 버리셨습니까? 채경: 네.. 두 분의 과거 얘긴 재미있었는데요.. 제가 한 질문은 안 잊어 버렸어요. 환익: 다른 얘기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채경: 하기 곤란한 얘기면 하지 말아요. 대장님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환익: ……………………………………………..적기를 놓쳤습니다.. 채경: (환익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혼례를 올릴 적기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 있고, 하고 싶다 생각하면 그게 바로 적기죠.. 그러니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시도해.. 환익: …………….필요한 때에.. 있어야 할 자리에.. 제가 없었습니다. 채경: (환익 보는) 환익: 그래서.. 늘 그곳에 있을 거라 여겼던 이를 놓쳤습니다.. 채경: .. 환익: 한번 놓치고 나니, 다시 잡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리고.. 굳이 다른 이로 그 사람을 대신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채경: …………………………………그분은.. 잘 살고 있어요? 환익: (채경 보며 그저 웃는다.) 채경: (환익의 미소에 마음이 아파진다. 슬퍼 보이는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다.) “설마.. 그 손이 류대장 어깨로 올라갈 건 아니지?” 채경:!!!!!!!!!!!!! 환익: (돌아보는) 신: (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채경에게 더 시선이 쏠려 있다.) 채경: (자기도 모르게 환익을 향해 가던 손이 허공에 멈춘 채 놀란 얼굴로 신을 쳐다본다. 폐하는 대체 언제 오신 거래?) 환익: (얼른 일어서서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숙인다.) 채경: (뒤늦게 손을 수습하고 엉거주춤 일어난다.) 신: 연습은 끝났어? 채경: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어요. 신: (심기가 불편한 탓인지, 제대로 연습을 한 건지 믿어지질 않는다.) 잘 돼? 채경: (도리도리) 아니오.. 신: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그렇지~ 누구는 혼신을 다해 사냥하고, 누구는 이렇게 분위기 잡고 담소나 나누고.. 대체 누가 이 세상 최고의 천자라는 거야~?) 채경: (신이 삐쳐 있다는 건 모르고 미안한 마음으로 얘기한다.) 오랜 만에 잡아 봐서 그런지 잘 안 돼요. (도리도리) 아니.. 폐하껜 수련하겠다 약조했는데, 마음이 아직 준비가 안 됐나 봐요. 그래서 정말로 검이 무겁고 몸도 무거워요.. 이런 적 없는데.. 신: (채경 보는.. 좀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채경: (밝은 표정 지으려 애쓰며) 이러다 지키지 못할 약조를 한 실없는 사람이 되면 어쩌죠? 신: (입술 깨무는.. 자신의 욕심으로 검을 쥐어 줘 놓고.. 저리 힘들어 하는 거 뻔히 보이면서도 말리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이 속상하다. 그런데 못나게 환익과 좀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속좁게 투기나 하고.. 정말 못나 빠졌다..) 채경: 헌데.. 예까지 오신 거 보면, 저 데려 가려고 오신 거예요? 신: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나오면 속울음이 표날 것 같아..) 채경: (환익에게 목검을 넘기고 환하게 웃으며 신에게 걸어간다.) 신: (채경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 쥔다.) 채경: (신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본다. 이제 사냥터로 데려가 주실 건가.. 기대하는 눈빛이다.) 신: (시선을 살짝 비끼며 채경의 손을 잡아 품으로 끌어 당긴다. 그리고 가볍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3. 계곡 계절의 흐름에 따라 계곡 주변은 곱디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푸르른 녹음과 찌는 듯한 햇살, 귓가를 간지럽히던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지던 여름은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시간 저 너머로 흘러가고, 눈앞에는 가을이 펼쳐져 있었다. 너무 높아서 우러러보게 하는 하늘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빛은 눈이 시릴 정도였다. 얼굴을 스치우는 바람은 상쾌했고, 바람에 날려가는 낙엽은 빛깔이 참으로 고왔다.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완연히 달라진 풍경과 달라진 관계의 두 사람.. 그때만 해도 파릇파릇한 풍경과 함께, 서로를 탐색하고 불안한 심정으로 마주 섰었다.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속내를 감추면서도 끌리는 감정에 어찌할 줄 몰라 했었다. 선뜻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발길을 돌릴 수도 없는, 안타깝고 설레는 감정..이 교차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그 알 수 없던 감정이.. 그저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는 바램이.. 사랑인 줄은.. 지독히도 빠져 버린 깊은 사랑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후의 엇갈림이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진작 알았으면 놓치지 않았을 것을.. 거짓 이름으로 서로를 속이고 속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을.. 그러나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일 뿐, 이제는 제대로 마주 보게 되어 후회 없는 신과 채경이었다. 이제는 거짓 이름으로 서로를 속인 과거가 재미난 사연이 되어 떠올리면 미소 짓게 되는 두 사람이었다. 신, 채경: (바위 턱에 걸터앉아 주변을 구경한다.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다.) 신: (예전 생각도 나고, 지금은 채경을 아내로 맞은 상황이라 기분이 좋아서 뿌듯하다. 이런 마음을 채경과 나누고자 풍경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채경을 돌아보는데.. 어라? 지금 뭐 하는 거지?) 채경: (바위 턱 아래로 슬금슬금 내려가고 있다.) 신: 뭐 하는 거야? 채경: 계곡물 좀 만져 보려구요.. 신: 뭐?!! 채경: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만 하긴 아쉽잖아요. 신: 물장난 하기엔 추워~ 채경: 그래두요.. (하고는 계속 계곡 쪽으로 내려간다.) 신: (채경의 팔을 잡아 당겨 바위 턱으로 다시 올려 앉힌다. 정말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게 한다니까~!!) 채경: (신의 저지에 불만 어린 기색을 내비친다. 입술은 툭 튀어 나오고, 눈빛은 불손하다.) 신: (채경 표정을 흘끔거린다. 남이 기껏 걱정해서 올려 앉혔더니, 뚱한 표정을 짓는 채경을 보니 억울하다.) 채경: (신은 쳐다도 안 보고, 계곡물을 노려 보는 척한다.) 신: 산에는 겨울이 일찍 찾아와. 채경: .. 신: 9월이라고 해도, 물은 얼음장 같을 거야. 채경: 몸을 담그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손 한번 담그겠다는데.. 그것도 못하게 해요? 신: 걱정되니까 그렇지.. 혹여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채경: 저 그렇게 안 약해요. 신: 요즘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잖아. 평소랑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 채경: (신 보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웠다. 이제 더 추워지면, 아니 궁 밖으로 나올 기회조차 없을 테니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계곡에서 놀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을 그냥 넘기는 게 아까웠다.) 신: (채경이 너무 아쉬워 하자)………………물을 좀.. 따뜻하게 데워 줄까? 채경: ??? 신: 계곡에 화력을 가하면 물이 좀 따뜻해지지 않겠어? 그럼 덜 찰 것 아냐.. 채경: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건 안 돼요. 신: 왜?? 채경: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이 죽을 수도 있어요. 신: 하.. 물 좀 데워진다고 안 죽어. 채경: 얘네들은 이 물에 적응해 있을 텐데, 조금만 변해도 위험해질지 몰라요. 나 놀자고 물고기들을 죽게 할 순 없어요. 그럴 바엔 그냥 구경이나 할래요. 신: (어이 없다.) 물고기는 그렇게 걱정하면서, 난 걱정 안 돼? 채경: (신 보는) ??? 신: (설명을 바라는 채경의 눈을 보고 차마 자신의 속 좁은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훌쩍 몸을 날려 계곡 중간의 징검다리로 내려선다.) 채경: (신 보는) 신: (손을 내밀어) 이리로 와.. 채경: (멀뚱멀뚱) 신: 바위 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계곡에 손 담그는 것보단 여기가 훨씬 안전해. 채경: .. 신: 말려도 소용 없을 것 같으니까.. 같이…………………… 놀아 줄게. 채경: ……………………………………………….(씨익 웃는다. 신이 무엇을 제안하는지 알게 되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신: (손을 내밀고 서서 채경이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순간이.. 무척이나 쑥스럽고 민망하다. 하지만 피하고 싶진 않았다. 손을 거두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투박한 징검다리에 서서 채경을 기다리는 순간이.. 창피하면서도 설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여인과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는 왕이었다. 그래서 마냥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이런 순간을, 이런 경험을 채경과 함께한다는 건.. 참으로 가슴 뛰는 일이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순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그림 속 주인공이 자신과 채경이라는 것이.. 참으로 기분 좋았다.) 채경: (가볍게 몸을 날려 신이 서 있는 징검다리에 바로 옆 돌 위에 내려선다. 그리고 활짝 웃는 얼굴로 신이 내민 손을 맞잡는다.) 두 손을 잡은 신과 채경은 그 자세 그대로 징검다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잡은 손을 풀지 않고 맞잡은 채, 자유로운 손을 계곡에 담갔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쭈볏 설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온몸을 강타했다. 이에 순간적으로 신은 반쯤 몸을 튕겨 올리듯 손을 빼 버렸고, 그 모습을 보고 채경은 당황한 신이 웃긴지 깔깔거리며 크게 웃었다. 무엄하게도 임금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채경의 웃음에 자존심을 구긴 신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져 버린 얼굴은 귀까지 붉게 물들인 후였다. 이에 채경은 화기를 식혀 주겠다며 계곡물을 신에게 흩뿌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물세례를 받은 신은 피하려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봤지만, 손을 잡은 상태라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물벼락을 맞아야 했다. 결국 혼자 당하고 있을 수 없다 판단한 신이 물세례에 동참했고, 그 바람에 채경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물을 뒤집어 쓰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버렸다.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얼굴로 쉴새 없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걸 본 신이 먼저 공격을 멈추고, 물장구 치던 손을 채경에게 뻗었다. 신이 손을 뻗어오자, 새로운 공격인 줄 알고 움찔 하며 살짝 몸을 뒤로 빼던 채경은, 신이 이마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부드럽게 손으로 훔쳐 주자 멈칫 한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잡아 먹을 것처럼 공격하던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채경: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이 친절한 남자는 누구인가.. 싶은 눈길로 신을 본다.) 신: (밝은 표정으로 채경 마주 보는) 채경: 이러다 고뿔 들겠습니다. 신: 고뿔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 채경: ??? 신: 같이 고뿔 걸려서 내내 방안에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아? ^^ 채경: 폐하~~ 신: (웃으며 채경에게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댄다.) 채경: (코앞까지 다가온 신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니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신: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닌데, 입을 맞출 때마다 긴장하는 채경이 귀엽다. 그래서 짓궂게도 놀려 줄 생각을 한다. 바짝 얼어 버린 채경의 입술로 다가가던 방향을 살짝 틀어 눈 밑으로 향한다.) 채경: ??? 신: (혀를 내밀어 채경의 뺨에 맺혀 있는 물방울을 핥는다.) 채경: !!!!!!!! 신: (채경의 목덜미를 부여 잡고는 혀를 살살 굴리듯 채경의 뺨을 훑어 내린다.) 채경: (차마 눈 뜨고 있을 수가 없어 눈을 감아 버린다.) 신: (앙 다문 채경의 입술을 보고 씨익 웃다가 그제서야 살짝 입 맞춘다.) 채경: (신의 가벼운 입맞춤에 숨이 새어 나오면서 입술이 살짝 벌어진다.) 신: (채경의 아랫입술을 베어 물 듯 이빨로 희롱한다.) 채경: (신의 도포자락을 움켜 잡는다. 뭐라도 잡고 있지 않으면 발 디딜 곳도 마땅찮은 징검다리에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신: (채경이 앉아 있는 징검다리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희롱은 그만 두고 완벽하게 채경의 입술을 차지한다. 한껏 흡입한 채경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가득 채워 옴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저물어 가는 노을 진 계곡..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밤과 낮의 경계 무렵.. 물에 젖어 차가워지는 몸을 서로의 온기로, 입맞춤으로 채워 가는 두 사람.. 때론 티격태격 의견 대립을 보이기도 하고, 고집을 부려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하지만, 결국엔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양보할 줄 아는 이들은 진정한 반려이자.. 가족이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함께하며 시간을 공유하고 기억을 새겨 추억으로 쌓는 가족.. 그리고 오늘도 추억을 한 겹 덧댈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며 아름다운 기억을 아로새겼다. . . . . . . . . . . . . . 그러나.. 이들은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없는.. 평범한 부부일 수 없는.. 왕과 왕비였다. 그래서.. 이들의 아름다운 추억도.. 누군가에게는 표적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계곡을 지켜보던 검은 시선 하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건..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나누던 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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