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인사를 드리고 있네요.. 오늘도 일주일 만에 글 올리는데요, 의도한 것은 아닌데, 요즘 제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일주일에 한 편씩인가 봐요.. 중반을 넘어서 이제 마지막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스퍼트를 내고 싶은데.. 12월호 마감에, 내년 개편이 맞물리면서, 여유를 찾기가 상당히 어렵네요.. 또 이런 판에 박힌 변명을 하면서, 늦은 밤 오랜 만에 텔궁에 들어섭니다.. 한 회 한 회마다 반갑지 않은 사건과, 반갑지 않은 대화들이 나오고 있어요. 한꺼번에 사건을 터뜨리기보다는 차곡차곡 사건들을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여러 사건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될 때.. 그때가 되면 아마도 왕녀의 두 아이도 보내 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사이에 두 아이가 다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할 테지만.. 강한 아이들이니 잘 이겨낼 거라는 거.. 다들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쏭기자의 느린 필력에 따라 그려지는 두 아이의 행보를 지켜봐 주세요. 음.. 요즘 시나리오방이 정말로 썰렁해졌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가는 작가님도, 독자님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휑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많이 허전하네요.. 조회수는 점점 더 높아지는데, 흔적 남기시는 분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이러다가 시나리오방이 닫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요즘이에요. 저 역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 하고 있어서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매일매일 들어와 보는 시나리오방의 휑함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쏭기자입니다. 예전 북적거리던 때가 그립기도 하고.. 마구 달리던 때가 있었던가 가물거리기도 하고.. 밤이 늦어서인지 왠지 감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네요.. ^^;;; 사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번 편도 재미있게 읽어 주시구요.. 텔레비전 보면서 수정하느라 잘 고쳤는지 걱정이 되네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편에서는 임금님과 왕비님이 살짝 다툼을 벌일 예정입니다. 본격적인 다툼은 다음 편에서 다뤄지겠지만, 전초전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그럼 저는 다음 편도 다음 주에.. 가져 올게요. 주말 동안 분발해서 속도 좀 내 보겠습니다. 어느 때보다 몸조심해야 할 때이니 감기 조심하시구요..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 제41화 임금님과 왕비님의 첫 부부싸움? #1. 서고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서고로 들어선 채경. 신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로 들어왔건만, 기다리는 그는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일제히 허리를 숙이는 내관들과 나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 중 그들을 대표하는 성내관이 채경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채경을 맞는다. 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채경.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내관을 바라보는데.. 성내관: (허리 숙여 채경에게 예를 갖추며) 중전마마 납시었습니까? 채경: (주변을 둘러보며) 폐하는.. 어디 계신가요? 성내관: 급히 처리할 것이 있으시다면서 먼저 가셨습니다.. 채경: 가시다니.. 어딜요? 성내관: 사정전으로 오라 하셨으니, 그곳으로 가신 듯하옵니다. 채경: 저를 기다린다 들었는데.. 성내관: 예.. 중전마마께서 곧 당도할 거라는 말씀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헌데 갑자기 가시겠다고 하셔서 저희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상태입니다. 채경: 혹.. 저한테 남긴 말씀은 없으세요? 성내관: (고개를 내저으며)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저 마마께서 오시면 급한 일로 먼저 간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채경: (생각하는 표정.. 갑작스럽게 마음이 변한 이유가 뭘지 궁금하다.) 성내관: (중전마마에게 인사를 올리고 얼른 폐하를 뒤따라가야 할 듯하다. 그래서 물러가겠다는 인사를 올리려 입을 열려고 하는데..) 채경: 폐하께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성내관: 예??? 채경: 혹.. 제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해서요.. 성내관: (그가 알기론 폐하께서 중전마마에게 숨길 만한 일 같은 건 없었다. 물론 숨기는 일이 있다고 해도 그의 입장에선 중전마마에게 이실직고할 순 없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채경: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별일도 아닌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이 짧은 시간도 못 기다리고 달려가신 걸까..? 매일매일 살 맞대고 사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 못 보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떠난 폐하의 안위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법 오래도록 의문에 찬 표정으로 수하들 곁에 서 있는다.) #2. 사정전 사정전 내 신의 개인 집무실. 서고에서 채경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날아온 신은, 뚫어질 듯 벽을 바라보고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깊은 눈매는 생각을 읽어낼 수 없는 듯,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라 어느 순간 이성을 모두 장악해 버린 이 생각은.. 아주 오랜 만에 신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손끝이 떨려 온다. 이 힘을.. 그조차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자신의 힘을.. 온통 쏟아 부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였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그 사건 이후의 불안은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 (벽에 붙여 놓은 궁 지도를 응시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만족할 만한 생각이나 결정을 찾아냈을 때 짓는 미묘한 표정을, 지금 바로 지었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방 밖을 바라본다.) “성내관, 밖에 있는가?” “예, 폐하..” “호위대장과 수비대장, 월희를 불러라..”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신: (그의 명(命)에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성내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럼, 이제 작전을 짜 볼까?’ #3. 교태전 밤이 늦었다. 달이 뜬 것도 벌써 다섯 시진이나 지난 야심한 시각이었다. 이제 곧 날이 바뀔 것이다. 헌데 폐하는 아직도 들어올 기미가 없다. 서고에서 그리 헤어져서 다른 날보다 더 신이 기다려지는 채경이었다. 그래서 방안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오지 않는 낭군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중전마마..” 채경: (김상궁의 목소리에 반가운 기색을 내비친다. 폐하가 당도한 모양이다.) 예~ “(문 밖에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채경: 예.. 들어오세요.. 김상궁: (문을 열고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가 바로 선다.) 채경: (김상궁 보는) 김상궁: 방금 전 강녕전에서 연통이 왔습니다. 채경: (고개 갸웃) 연통이요? (폐하가 오신 게 아니라, 연통이 왔다구요? 그리고.. 왜 강녕전에서 연통이 와요? 폐하는 사정전에 계신 건 아니었나요? 어찌 침전에서 연통이 올 수가 있죠?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김상궁: 예.. 채경: (멀뚱히 김상궁 보는) 김상궁: 내관의 말로는 폐하께서 오늘 교태전에 오시지 않을 예정이라 했습니다. 채경: !!!! (조용한 놀람.. 묵직한 충격.. 폐하께서 교태전에 오지 않는다고?!!) 김상궁: 어전 회의가 늦어지신다고, 중전마마께오서 먼저 침수 들라 하셨답니다. 채경: 날 보고.. 먼저 자라 했다구요? 김상궁: 예.. 폐하께선 강녕전에서 주무시겠다고 하셨답니다. 채경: (왠지 어이가 없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혼례를 치른 후 단 한번도 따로 침수를 든 적이 없었다. 여인들이 한 달에 한 번 겪는 그 일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품에 안지 않은 밤도 없었다. 헌데.. 갑자기 교태전에 오지 않겠다고? 게다가 따로 주무시겠다고?!! 이해가 안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김상궁: 그런 얘기는 전해 들은 것이 없습니다. 채경: 그럼 강녕전에 좀 다녀오세요. 김상궁: 폐하의 연통이 온 이상 그리 하는 것은.. 채경: (김상궁이 삼킨 말을 대신해) 법도에 어긋난다구요? 김상궁: 송구합니다.. 채경: (답답하다. 폐하의 상황이 궁금한데, 알아낼 방도가 없으니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다.) 김상궁: 밤이 늦었습니다. 어서 침수에 드시지요. 채경: ‘이대로 그냥 자라구요? 이런 기분으로 어떻게 잠을 자란 말이에요?’ 김상궁: 이부자리를 봐 드리겠습니다. 채경: (김상궁을 말릴 틈도 없다. 이미 늦어 버린 시각이라, 폐하의 연통이 오자 마자 침수를 담당하는 나인들이 부리나케 소환되어 이부자리를 깔아 버렸다.) 김상궁: 마마.. 안녕히 주무십시오. 나인들: 안녕히 주무십시오. 사람들: (허리 숙여 인사한 뒤 방에서 나간다.) 채경: (방문이 닫히고 혼자 남게 되자 허리에 두 손을 얹게 된다. 기분이 참.. 오묘하다.) 그렇게 이상한 기분으로 채경은 한참을 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늘따라 휑해 보이는 너른 이부자리가 참으로 쓸쓸해 보였다. 언제부터 같이 자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이부자리를 쓸쓸하게 생각하게 됐는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폐하가 보고 싶었다. 그리워서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궁금한 걸 여쭙고 싶어 뵙고 싶었다. 아무 일 없다고, 그저 일이 바쁠 뿐이라고, 확인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그렇지 않을 거라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이 찜찜한 기분의 정체는 뭘까? 채경: (결국 이부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깊은 한숨을 내쉰다.) #4. 강녕전 채경에게 깊은 시름을 안겨 준 줄 꿈에도 모르는 신은, 세 명의 호위무사들과 회의에 여념이 없다. 흔들리는 촛불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는 네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사정전에 먼저 소집을 해 개략적인 이야기를 전한 뒤, 장소를 강녕전으로 옮겼다. 왕의 사생활이 철저히 보호되는 이곳 침전은, 편전보단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방에 잔뜩 깔린 그림자 부대원과 호위대만 해도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리 삼엄한 경계 속에서 궁궐과 왕실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세 명의 군장(軍將)들이, 왕 앞에 모여 앉아 모종의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계략의 주모자는 다름 아닌 왕이었다. 신의 표정은 다른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기돼 있었다. 눈빛은 반짝거리고, 표정엔 자신만만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왕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건 분명했으나, 걱정이 많은 눈치였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선뜻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으로.. 고민 중이었다. “폐하..” 때마침 방 밖에서 성내관이 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침묵으로 긴장하고 있던 세 사람의 호흡이 약간 누그러진다. 신: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지 않았나? (이 일에 대해선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약간 짜증 섞인 말투가 튀어 나간다.) “하오나 폐하.. 중전마마께서 납시었습니다.” 신: (눈썹 꿈틀) 환익: (방문 보는) 원호(수비대장): (역시 방문을 바라보는) 월희: (신 보는) 신: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주먹을 살짝 움켜 쥐고는 탁자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돌아가라 하라.. 환익, 월희: !!!!!!!!! 채경: !!!!!!!! (방 밖에서 신의 윤허를 기다리다가 불허하자, 몸이 휘청거릴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돌아.. 가라고..? 이렇게 코앞까지 온 나를.. 돌아가라고? 폐하.. 진정으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성내관: (당혹스럽다. 놀란 중전마마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안 좋다. 그렇다고 폐하의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에겐 오직 폐하의 명(命)만이 지표였기에, 채경을 돌려 보낼 수밖에 없다.) 마마.. 채경: (이미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허해진 눈빛으로) 문을 열어 주세요. 성내관: !!!!!!!!!! 김상궁: !!!!!!!!!!! (채경 뒤에 서 있다가 깜짝 놀란다. 방금 폐하께서 돌아가라고 한 말씀을 들으셨으면서 어찌 저런 명을 내리시는지 모르겠다. 중전마마는 사람을 놀라게 할 때가 많았지만, 이치에 어긋난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폐하의 명을 어기는 분도 아니었다. 헌데.. 지금 대놓고 명령에 불복종하겠다는 듯 굴고 있었다. 그래서 당혹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 채경: (성내관을 보며) 문을 여세요. 성내관: 마마.. (만류한다.) 채경: (성내관이 자신을 말리려 할 것 같아 고개를 획 돌려 방문을 바라본다. 그리고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폐하!! 신: !! (채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놀라 그제서야 방 밖 바라보는) 환익, 월희, 원호: (일동 얼음.. 중전마마는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 채경: (숨을 고르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선다.) 성내관, 김상궁: !!! (발을 동동 구르며 채경의 행동을 말리려 하지만, 중전마마를 강하게 저지하지는 못한다. 그저.. 중전마마께서 정신을 차리시고, 폐하의 명을 따라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채경: 폐하.. (다시 한번 신을 부른다.) 신: (방문에 시선 고정한 채 무표정을 가장해 긴장을 감춘다.) 환익, 월희: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두 분 사이에 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한다. 안 그래도 혼례를 올리신 후 처음으로 야심한 시각까지 회의를 하는 폐하를 보고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폐하가 내놓으신 안건이 중대한 것이긴 하나, 굳이 오늘 밤을 새워 논의를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일말의 의혹이 있었다. 혹, 중전마마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쓸데 없는 걱정도 들었다. 헌데, 중전마마께서 친히 강녕전에 납시어 폐하를 보겠다는 뜻을 밝히는데도 불구하고, 방문 하나 열어 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거절하시는지.. 아무리 폐하의 심중을 헤아리는 데 도통한 그들이라도, 이번만큼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채경: 소첩.. 문을 열겠습니다. 사람들: !!!!!!!!!! (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어 버린다.) 채경: (성내관과 김상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수 방문을 두 손으로 꽉 움켜 잡는다. 그리고 힘차게 여는데..) ??!!!!!!!!!!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으려고 힘차게 방문을 열었는데, 활짝 열려야 할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은 채경의 무례한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꿈쩍도 하지 않고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건 필시.. 폐하가 힘을 가하여 방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술수를 부린 탓이리라.. 그 때문에 더더욱 충격이 컸다. 이건.. 명백한 거부였다. 그녀를 보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분명 돌아가라는 명(命)에 불복하고 문을 열려고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들을 수 있었다. 허나, 이런 식으로 거부 당하는 것은.. 면전에서 거절 당하는 것은.. 참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분명 잘못한 일이고, 무리수를 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사람이란 무릇 간사한 동물이라 자신의 잘못보단 당장의 설움이 더 큰 법이다. 하여, 신에게 거절 당한 채경은 당장에 자신을 거절한 신이 원망스러웠다. 채경: (힘 없이 스르르 방문에서 두 손을 미끄러뜨려 내린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이성은 육체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때, 채경이 방문에서 손을 뗀 바로 그 순간, 예고도 없이 방문이 활짝 열렸다. 성내관, 김상궁: (놀라서 열린 문을 바라보는.. 열린 문 너머에 신이 서 있자 더더욱 놀라는..) 신: (무표정한 얼굴로 방문 바로 앞에 서 있다.) 채경: (갑작스럽게 신이 눈앞에 나타나자 놀라 바라보는데..) 신: (짜증이 나는 걸 최대한 참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경을 마주본다. 돌아가라는 명(命)에, 기어이 문을 열겠다고 고집을 피운 아내, 아니 ‘중전’이 맘에 들지 않았다. 수많은 신하들 앞에서 왕(단순히 남편이 아니었다. 그가 입을 열면 그건 왕의 명령이 되었다.)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문을 못 열게 힘을 가했다는 걸, 중전이 알아 줄지 몰랐다. 기어코 방문에 손을 뻗어 열려는 중전의 행동에, 말릴 틈도 없이 힘부터 쏘아져 나갔다는 걸 알 날이 올지 모르겠다. 이건 분명 배려였다. 그러나 채경의 표정을 보니, 상처를 받은 듯 처연한 눈빛이 엿보였다. 자신의 의도를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그런 건 상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상당히 짜증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채경의 불명예를 막기 위해 잠시 힘을 쏘아 보내는 동안, 짜증의 강도는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왜, 중전은 이 시각에 이곳에 온 걸까? 오늘은 일이 있어 가지 못한다는 전갈까지 보낸 마당에, 부득불 이곳에 온 연유는 뭘까? 큰 일을 앞둔 상황에서, 흐름을 방해하는 훼방꾼의 등장-그것이 아무리 중전이라 하더라도-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마주한 채경을 서늘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채경: (신 올려다보는) 신: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중한 말투다. 철저하게 고의로 던지는 말이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채경에게 해 본 적 없는 경어였다.) 채경: 되었습니다. 신: ??? 채경: (시선을 내리깔며) 폐하를 뵈었으니 되었습니다. 신: ???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 채경: 폐하의 용안을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헌데 이렇게 폐하를 뵈었으니, 제 볼일은 끝났습니다. 그럼.. 소첩, 물러가겠습니다. 신: (채경이 정말로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리려 하자 그제서야 채경의 팔을 잡는다.) 채경: (멈칫.. 신에게 팔꿈치를 잡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신을 올려다본다.) 신: (좀 전과는 달리 약간은 궁금한 눈빛으로) 제대로 얘기해 봐. 채경: (맥이 탁 풀린다. 평소와 같은 하대에, 평소의 폐하로 돌아온 것 같아 방금 전 느꼈던 이질감은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심하며) 말 그대로입니다. 신: (채경 보는) 채경: 서고에서도 그렇고.. 오늘 교태전에 오지 못하신다는 전갈도 그렇고.. 왠지 폐하를 눈앞에서 놓친 것 같아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여, 실례라는 걸 알면서 폐하를 뵈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리 걸음 하게 되었습니다.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폐하를 걱정해서 저지른 무례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신: .. 채경: 결단코 폐하를 방해할 뜻은 없었습니다. 신: .. 채경: (이 정도면 지금의 행동에 대해 설명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의 안색을 살피며 그가 이해를 했는지 가늠하는데..) 신: (채경의 팔을 조심스레 놓는다. 자신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채경과의 접촉을 차단하려 했는지.. 지금에 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감정을 돌이켜 볼 시간.. 서고에서 자신이 느꼈던 정체 모를 감정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할 시간.. 그래서 핑계가 생긴 것이 좋았다. 궁의 안보를 위해 고안해 낸 작전을 짠다는 핑계로, 채경과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채경이 이리 쳐들어오니 자신이 대체 뭘 위해 그렇게 고압적으로 채경을 피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감정을 숨기는 건 그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그냥.. 자신이 생각을 정리할 동안 감정을 숨기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이리 방어막을 쳐서 티 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걱정되어 잠도 못 자고 달려온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채경이 쳐다보는데도 마주 보지 못하겠다. 왠지.. 부끄러웠다. 자신의 못난 심보를 들킬 것만 같아 눈을 못 보겠다.) 채경: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신: (천천히 고개 돌려 채경 보는) 채경: (신의 윤허를 기다린다. 이렇게 되고 보니 폐하의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다.) 신: (차마 대답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채경: (묻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으나, 정사는 자신이 관여할 것이 아니기에 이 정도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그래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채경은 교태전 궁녀들을 이끌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신은 채경이 사라지고 나서야 문을 나서 방 밖으로 나왔다. 채경이 사라진 복도 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그러나 사색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저 멀리서 신: (방 안으로 들어서며) 교태전에 있는 미오를 불러와라.. #5. 교태전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질 않았다. 밤이 늦었음에도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채경은 분명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의문들을 해소하는 것은 내일 날이 밝은 후를 기약하자고 정리도 했다. 그런데 내일 날이 밝기까지 잠들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 주질 않은 탓이었다. 폐하의 전갈 이후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시작한 갖가지 상념들은 여전히 그녀를 해방시켜 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 어두운 방안, 달빛마저 스며들지 않는 시커먼 방안, 흰 소복을 입은 채경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 간간이 빛을 발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해답을 갈망하는 간절함이 베어났다. 채경: 하.. (짧게 내뱉는 한숨 밖엔 입 밖으로 내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척.. 답답한 밤이다.) #6. 궁궐 일각 자시(子時, 금방 잠들지 않을 것 같아 궐내 처소로 가지 않고 인적 드문 전각에 엉덩이를 붙였다.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편안한 표정이 되는 두 사람. 원호는 환익이 무관이 되어 입궐한 이후로 쭉 함께해 온, 환익의 다섯 해 선배였다. 환익이 동궁 익위사로 선발되었을 때, 그를 가르치고 이끈 조장이 원호였다. 올해 나이 서른 다섯.. 젊은 나이에 궁궐의 경비를 총괄하는 궁궐 수비대의 대장이 되었고, 활 솜씨에 대해서 만큼은 운우국 내 최고로 손꼽히는 명사수 중의 명사수였다. 환익이 무관으로서 존경하고, 진심으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환익은 지금 상당히 심란한 상태였고, 그걸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의 기분을 원호는 금세 알아차렸고, 환익을 위해 먼저 운을 떼 주었다. 원호: 걱정되냐? 환익: (원호 보는) 원호: 폐하의 계획 말야.. (말하면서 눈치껏 주변을 한번 더 살핀다.) 환익: 송구하지만.. 예, 걱정됩니다. 원호: (걱정된다 말하는 환익의 인정에, 이 녀석은 회의 때 불거졌던 문제들을 채 마음에 덮지 못했나 보다. 회의 때에는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지만, 일단 그렇게 결정된 이상 따르는 게 신하로서 할 도리였다. 의문 같은 건 가져선 안 되었다. 판단은 폐하가 하는 거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강녕전을 나서는 순간, 그는 모든 우려를 덮어 버렸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러질 못한 모양이다. 평소에도 워낙 폐하를 걱정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녀석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에게 폐하의 제안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마냥 걱정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그의 걱정에 동조하고 싶진 않았다.) 폐하께서.. 틀린 적이 있었어? 환익: (원호 보는) 원호: 폐하께선 틀린 결정을 하신 적이 없어. 헌데 어찌 확신하질 못해? 환익: 이번엔 폐하께서도 확신하지 못하시니까요.. 원호: .. 환익: 폐하를 믿어야 한다는 건 압니다. 허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원호: 한번도 해 본 적 없다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환익: 그렇죠.. 그 가능성 때문에 더 강하게 말리지 못했습니다. 원호: 솔직히 난.. 궁금해. 환익: 무엇이요? 원호: 폐하가 갖고 있는 힘이 어디까지일지.. 그 대단한 힘의 바닥이라는 게 있긴 한 건지.. 이번 기회에 그걸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기대가 돼. 환익: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그래도 그런 얘긴.. 좀 불경스럽지 않아요? 원호: (픽 웃으며) 폐하께서 걱정 말라고 당부한 마당에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너는 어떻고? 환익: (할 말 없다.) 원호: 너무 머리 쓰지 마. 환익: (원호 보는) 원호: 폐하 말씀처럼,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잖아. 환익: .. 원호: 우린 그냥 폐하의 판단에 따르기만 하면 돼. 고민하는 머린, 거추장스럽기만 할 거야. 환익: ‘그래도..’ 원호: (분위기 바꾸려는 의도로 가볍게 던지듯) 어쨌든 대단하지 않냐? 그런 걸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야.. 환익: (그건 자기도 동감이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폐하밖에 없으실 것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폐하만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원호, 환익: (말 없이 다섯 시진 가까이 논의를 펼쳤던 폐하의 놀라운 제안을 떠올려 본다.) 사정전으로 갑자기 호출 받아 온 세 명의 호위무사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의 주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요한 얘기를 하실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세 사람은, 폐하가 말문을 열 때까지 약간은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긴장된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신이 말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무사 중 제일 성질 급한 호위대장 환익이 곧바로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환익: 뭐라 하셨습니까? 신: (환익 보는) 원호, 월희: (환익 보는.. 그의 목소리에 담긴 불만이 느껴져 지금까지보다 더 긴장하게 되는..) 환익: (주변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궁(宮) 전체에 결계를 친다.. 하셨습니까? 신: (가볍게 고개 끄덕이며) 응! 환익: (아찔하다. 결계라는 것은 무릇 외부 접근을 막기 위해 본거지를 숨기는 데 쓰이는 비책이다. 강한 결계일수록 지형에 대한 파악을 철저히 해야 되고, 방위(方位)를 따져야 하며, 몇 단계에 걸친 함정을 파야 한다. 또한 결계를 지키는 파수꾼을 심어야 하는데, 결계의 파수꾼으로는 지형지물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대체로 기(氣)가 모일 수 있는 것들이되 특출나 보이지 않는 것이 선택되는데, 그런 모든 요소를 따져 결계를 치는 데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는 데다, 공력도 어마어마하게 필요했다. 폐하의 실력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결계를 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궁에 결계를 친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었다. 궁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숨기려 한다고 숨겨지는 곳이 아니었다. 또한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기를 흩트려 놓는, 결계를 치기 매우 애매한 장소였다. 이런 곳에 굳이 힘을 들여 결계를 칠 필요가 있는지, 그걸 모르겠다.) 궁을 숨기실 작정입니까? 신: 아니. 그럴 수 없잖아. 환익: (그걸 아신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결계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신: (환익 보는) 환익: 적들에게 궁을 숨길 수도 없는데, 결계를 쳐서 무엇 하시려구요? 신: .. 환익: 만에 하나 결계를 쳐서 방어에 도움을 얻는다 하더라도, 결계가 지속되긴 어려울 것입니다. 신: 어찌해서? 환익: 궁에 오가는 이가 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 .. 환익: 줄잡아도 수천이 넘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오가는 동안 결계가 흐트러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또 오가다가 결계 속에 갇혀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궁 내부인들조차 결계에 따른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신: 그래서 외부인들에게만 작용하는 결계를 치려구.. 환익, 원호, 월희: ??? 신: 호위대장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 나도 생각 안 한 문제는 아니야. 하지만 궁 전체에 내부인들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결계를 치면, 외부에서 잠입해 들어오는 자를 색출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야. 이질적인 기(氣)를 감지하는 순간, 내게 알려 주도록 결계를 치면 되니까.. 그렇게만 되면, 인력으로 인한 보안 공백을 메우는 것도 시간 문제야. 원호: 그것이.. 가능합니까? 신: 가능할 거야. 환익, 원호, 월희: (가능할 거라는 대답이 석연치 않다. 그런 한편으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폐하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넓은 곳에 그런 결계를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자신감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신: 기본적으로 사기(邪氣, 사악한 기운)에 반응하는 결계를 칠 거야. 적의나 살의를 품은 자가 궁 안을 돌아 다니게 되면 신호가 오는 식으로.. 월희: (공력을 지닌 무사라면 원래 사기(邪氣)를 감지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도 각각 자신만의 기(氣)를 발산하는데, 일반적으로 공력을 지니고 있으면 사람들의 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강한 기(氣)나 적의 등은 더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氣)를 탐지할 수 있는 거리는 사방 1리(약 400미터)를 넘기 어려웠다. 헌데 사방 십리도 넘는 궁을 아우를 수 있는 결계를 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당장엔 믿어지지가 않았다.) 신: 궁(宮) 곳곳에 기(氣)를 탐지할 수 있는 표식을 남겨 넓은 궁을 아우를 생각이야. 표식은 나의 분신들이 될 거고.. 사람과 달리 한시도 쉬지 않고 보초를 설 수 있을 테니, 보안 공백을 메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 오히려 사람보다 더 민감하게 사기(邪氣)를 감지할 수 있어서 불온한 세력을 색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원호: 그것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으나.. 신: 또 뭐가 문젠데? 실패할까 봐 걱정돼? 원호: 그것이 아니오라, 만에 하나.. 내부에 적이 있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환익, 월희: (원호 보는.. 그러다가 곧 신을 보는..) 신: (원호의 지적에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 된다.) 원호: 무릇 일을 꾸미는 자들은, 자신을 감추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또한 내부에 첩자를 심는 것은 큰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절차이지요. 제 짧은 소견이나,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어떤 목적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거라면, 그들은 분명 궁 내부에 첩자를 심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비책은 자칫..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원래부터 내부에 있었다면, 꼼짝 없이 당하고 말겠지.. 환익: 그런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시도해야 하는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신: 판단은 네가 안 해도 돼. 환익: 예?? 신: 잊었어? 판단은 내 몫이야. 너희들은 내 판단을 따라 주기만 하면 되는 거구.. 환익: (할 말 없다. 그렇지만.. 걱정이 되어 입술을 깨물며 하고 싶은 말을 참게 된다.) 신: (세 사람을 쭈욱 훑어 본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지만, 기저에는 우려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자기도 확실하게 성공을 자신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해 볼만한 일이었다. 이대로만 된다면 밤마다 걱정으로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외부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굴 수도 있었다. 믿을 만한 보초가 있으니,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지 않은가? 사감을 안고 궁으로 들어온 자는 무조건 색출할 수 있는 믿음직한 신하를 두어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긴 싫었다.) 갑자기 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환익과 원호, 월희의 고개가 저절로 따라 움직였다. 천천히 지도 앞으로 걸어가는 신을 눈으로 쫓았다. 일어서야 할지 잠시 고민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나진 않았다. 그저 신이 뒷짐을 지고 지도 앞에 서는 걸 지켜보았다. 신: (궁 지도를 뚫어질 듯 바라본다.) 원호, 환익: (잠깐씩 서로 눈짓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대개 환익이 흥분하려는 걸 원호가 말리는 눈치였다.) 월희: (등지고 서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는 폐하의 심중이 걱정스럽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저 단호한 뒷모습으로는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신: 오늘 낮에 서고에 잠시 들렀다.. 환익, 원호, 월희: (신이 입을 열자 그에게 집중한다.) 신: (지도 앞에서 제자리걸음을 시작하며) 6년 전 궁에 큰 화재가 일어났을 때, 서쪽 서고에 불이 붙은 걸.. 기억하고 있겠지? 환익, 원호, 월희: 예.. 신: 다른 것들은 모두 복구할 수 있었지만, 그때 타 버린 서책들은.. 되살릴 수가 없었다.. 환익, 원호, 월희: .. 신: 불타서 되살릴 수 없었던 서책들처럼, 그때 잃은 이들 역시 되살릴 수 없었지.. 환익, 원호, 월희: (신 보는) 신: 난.. 그때와 같은 참사가 다시 궁에 일어나는 걸 보고 싶지가 않다.. 환익, 원호, 월희: .. 신: 그때의 참사는 내가 힘이 없어 벌어진 일이었기에, 죽을 힘을 다해 힘을 키웠다.. 그리고 지금은.. 이 난공불락의 궁이 안전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궁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환익, 원호, 월희: .. 신: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고 싶진 않다. (여기까지 말하고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세 사람을 향해 돌아서 뚫어질 듯 바라본다.) 환익, 원호, 월희: (신의 시선을 의연히 마주하는) 신: 그러니 불만이 있더라도 우선은 나를 도와라. 환익, 원호, 월희: .. 신: 우려보다는 격려를 해 주길 바란다. (나도 처음 하는 일이라 걱정이 많거든. 너희들마저 안 된다고 손사래 치면, 내가 어딜 가서 고집을 피우겠냐?) 환익, 원호, 월희: .. 신: 또한 이 일은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 아무도 모르게 완성되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결계라는 걸.. 명심하라! 환익, 원호, 월희: 예, 폐하.. 그리고는 강녕전으로 옮겨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에 들어갔다. 중간에 중전마마의 방해(?)가 있긴 했으나, 논의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오늘 안에 끝내려 노력했다. 그 바람에 회의가 끝난 지금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원호: 내일부터 바빠질 거야. 환익: ‘그렇겠죠. 아무도 몰래 이 방대한 결계를 완성하려면 촌각을 다퉈야 할 테니까요.’ 원호: 폐하께서도 침수에 든 것 같으니, 우리도 이만 처소로 돌아가자.. 환익: 예.. (하며 일어서는데..) 원호: 헌데, 폐하는 왜 교태전에 들지 않으신 거지? 환익: (멈칫) 원호: 금슬이 너무 좋아 탈인 분들 아니셨나? 헌데 오늘은.. 좀 이상해 보였어. 환익: (그건 누구보다 자기가 제일 민감하게 눈치챈 일이었다. 오늘 폐하는 좀 이상하셨다. 확실히 평소 때와 다르게 중전마마를 대하셨다. 결계 때문에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이것도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원호: 설마.. 부부 싸움을 하신 건 아니겠지? 환익: 형님~~! 그럴 리가 있습니까? 원호: (정색하기는~ 워낙 사이가 막역하시다 보니 농 한번 해 본 걸 가지고 되게 떽떽거리네..) 진짜로 자야 할 시간인가 보다. 이리 헛소리 하는 걸 보니.. 환익: 월희는 지금부터 밤을 샐 겁니다. 원호: 올빼미족인 그 아이와 비교해서 뭐 하게? (부질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환익: (잠시 올빼미족인 월희가 있을 강녕전을 바라보다가, 곧 원호를 뒤따라간다. 오늘밤은.. 이불 속에서 밤을 지새울 것 같다. 걱정이 많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7. 강녕전 부근 원호와 환익이 결계와 관련해 얘기를 나누는 사이, 강녕전 앞에서는 미오와 월희가 독대 중이다. 교태전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미오는 뒤늦게 불려와, 이번 계획의 공모자가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태전으로 돌아가야 할 미오가 조용히 월희에게 보고할 것이 있다며 독대를 청했다. 월희: (주변을 살핀 후 가까이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래.. 무슨 일이냐? 미오: 그것이.. 월희: (미오가 망설이자 고개를 갸웃한다.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 거지?) 뭔데? 미오: 대장님.. 월희: 그래.. 말해 봐.. 미오: 최근 도성 내에 살인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합니다. 월희: (의아한 표정..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에, 미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도성 내 살인 사건이야 포청에서 관할하는 것이 아니냐? 헌데 어찌 내게 보고하는 거지? 미오: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통은 그렇지요. 헌데, 도성 내 정황을 살피던 아이가 보고한 사항을 들어 보니 좀 이상해서요. 월희: 무엇이 말이냐? 미오: 원래 강도 사건은 있어 온 것이고, 취객들을 대상으로 한 절도 사건 역시 드문 것은 아니었습니다. 월희: 헌데? 미오: 최근 취객을 상대로 한 살인이 급증했습니다. 월희: 강력 범죄가 늘어났다고 보면 되는 일 아니냐? (절도, 강도를 넘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건 그런 의미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미오: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습니다. 살해된 자들 모두 금품을 털리지 않았습니다. 월희: (고개 갸웃) 금품이 털리지 않았다니? 강도 살해 사건이 아니란 말이냐? 미오: 예.. ‘살인’ 사건입니다. 월희: (그것 참 이상하군.. 취객들을 죽여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살인만 하고 금품을 털지 않은 거지?) 미오: 더군다나 살해된 자들 모두 동일한 사인(死因)으로 죽었습니다. 월희: 동일한 사인(死因)? 미오: 예.. 모두 한결 같이 자상(刺傷)을 입고 죽었습니다. 월희: 칼에 의한 살인이란 말이냐? 미오: 예.. 그것도 매우 능숙한 칼잡이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단 한 번..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목을 베어 살해했습니다. 월희: 연쇄.. 살인 사건이란 말이냐? 미오: 피해자 유형을 보면 그럴 수도 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습니다. 월희: ??? 미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월희: 뭐라? 미오: 같은 자가 저질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입니다. 월희: 신출귀몰한 자의 소행일 가능성은? 미오: 만약 그렇다면, 무공이 보통 뛰어난 자가 아닐 것입니다. 대장님 정도의 무공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월희: ………………………………….하루에.. 몇이나 죽어 나가고 있는데? 미오: 대여섯 정도 됩니다. 월희: 대여섯?!! 미오: 예.. 월희: 하.. (살인 사건은 한 달에 몇 번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인데.. 하루에 대여섯 명이 살해되고 있다..?) 미오: 이 때문에 저잣거리가 매우 흉흉합니다. 괴소문도.. 많이 떠돌고 있구요.. 월희: 괴소문이라니? 미오: (말하길 망설인다.) 월희: 고하라! 미오: (우물쭈물하며) 그것이.. 폐하께서.. 월희: 폐하께서 뭐? 미오: 밤만 되면 광인(狂人)이 되어 저잣거리를 떠돌아 다닌다고.. 월희: 뭐라!! 미오: 폐하와 비슷한 자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월희: (기도 안 찬다.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정말.. 듣는 내가 미쳐 버릴 소리로구나!) 미오: 아무래도 일가족 살해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월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유포될 수 있단 말이냐? 미오: 어쩌면.. 이 사건들도 단순히 범죄율이 증가했다는 뜻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월희: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폐하의 명성을 깎아 내리기 위해 누군가 더러운 술수를 쓰고 있는 것 같구나.. 미오: 어찌.. 할까요? 월희: 포청의 움직임은 어떠냐? 미오: 야간 경비를 강화하고 있으나, 범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월희: ………………………………..도성에 아이들을 더 풀어야겠다.. 미오: (월희 보는) 월희: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자가 하나든 둘이든 그 이상이든, 그들 중 누구라도 잡으면 이 더러운 사건의 꼬리를 잡게 될 거다.. 그러니 도성 탐색에 머물지 말고, 범인 색출에 나서야겠구나.. 미오: 허면, 수련생들을 풀까요? 월희: (미오 보는) 미오: 구회암(그림자 부대원들의 비밀 수련 장소)에서 하산한 아이들이 현재 대기 중이지 않습니까? 월희: (그래.. 이번에 수련을 마친 아이들이 있었지? 이 정도면.. 첫 임무치곤 무난한 일이 될 것 같다.) 수련을 완료한 아이들을 데려와라. 미오: 예.. (대답하고 어둠 속을 달려간다.) 월희: (미오가 멀어지고 혼자가 되자 표정이 어두워진다. 초승달 같은 그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 반쯤 잠겨 더더욱 음산해 보인다. 무언가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뭔지 알 순 없지만, 분명 어떤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결코 아름답진 않을 것 같았다. 폐하의 다급한 태도도,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모두 불길한 예감을 하게 했다.) 월희의 시선이 강녕전으로 향한다. 전각 안에서 침수에 드셨을 폐하를 떠올리며, 불안한 생각들을 떨쳐내려 한다. 그때가 언제든, 오늘밤은 아닐 것이다. 오늘밤은.. 폐하에게 편안한 밤이 되어야 할 것이기에.. 당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걸음을 뗀다. 어둠이 깊어가는 궁이 오늘따라 스산하기만 하다. #8. 며칠 후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골몰하고 있는 채경, 표정이 좋지 못하다. 지난 며칠간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울화가 치미는 것도 같고, 갑갑증이 일 정도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도 같았다. 도대체 폐하의 심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폐하께서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힘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어 이리도 소통이 단절되어 버렸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서고에서 어긋난 만남이 이뤄지고, 야밤의 습격 같은 만남이 있었던 그날 이후, 채경은 신을 볼 수가 없었다. 그날로부터 닷새가 지났는데, 폐하의 용안은커녕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상궁들은 왕실에서 부부가 동침하지 않는 건 드문 게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 했다. 헌데, 다과상을 차려 폐하를 찾아가도 만나지 않겠다 하시고, 수라를 같이 들지 않겠냐고 연통을 넣어도 묵묵부답이시고, 밤만 되면 으레 따로 침수 들겠다는 연통이 날아오고..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래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서찰이라도 써서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같은 궁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매일매일 얼굴 맞대고 사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얼굴 한번 보려고 어찌 이리 용을 써야 하는지..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초래된 걸까? 언제나 결론은 나의 잘못이 무엇이냐로 귀결되었다. 맹세코 채경은 특별하게 잘못한 게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실수한 것 같지가 않았다. 유일하게 우려되는 점이라면, 그날 밤 폐하의 명을 어기고 강녕전으로 들어가려 고집을 피웠다는 것.. 그게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었을까? 이렇게 며칠 동안 얼굴조차 보지 않으려 할 만큼.. 채경: (답답한 마음에 책상에 머리를 쿵 박는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한숨을 내리 쉰다.) 하~~~~~~~~~~ 이제 곧 집에 가는데.. 이런 상태로 집에 가서 부모님께 심려만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집에 가는 걸 미루고 싶었다. 이런 모습 따위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것조차 서러웠다. 소통하지 못하는 슬픔이, 답답함이 얼마나 큰지.. 처음 알았다. 채경: (생각이 거듭될수록 속상하고 또 속상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갑자기 흘러 내린 눈물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폐하를 뵈어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뵈어야겠다. 단호한 결심을 하고 눈빛을 빛내는 채경.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두워져 가는 창 밖을 바라본다. 어둠에 물들어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채경의 얼굴에도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채경이 기다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9. 그날 밤 매우 늦은 시각이었다. 그럼에도 채경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촛불을 밝힌 방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었다.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눈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아니었다. 자못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동자에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축시(丑時, 채경: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채경이 말문을 열었다. 은은한 불빛과 침묵만이 존재하던 방안에,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채경: (시선만 움직여 어딘가를 뚫어질 듯 응시한다.) 채경의 날카로운 시선 끝에서, 서서히 사람의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완전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며칠 동안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신이었다. 신: (피식 웃으며) 귀신이네~ 채경: (신의 농에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약간은 경직된 표정으로 신을 맞이하는..) 신: (입가에 미소를 걸고 채경을 마주 본다. 그러나.. 입가의 미소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며 일자가 된다.) 채경: 왜.. 자는 모습을 보고만 가셨습니까? 신: (채경 보는) 채경: 처음엔.. 잘못 안 줄 알았습니다. 폐하께선 저를 피하고 계셨으니까요.. 헌데, 어제도 그제도.. 이 방에 왔다 가시더군요. 신: .. 채경: 매우 바쁜 분께서 침수도 들지 않고 왜 여기에 오셨습니까? 신: .. 채경: 어찌 그러셨습니까? 신: .. 채경: 저를.. 벌하시는 것입니까? 신: .. 채경: 경거망동하게 군 저를 벌 주시는 것입니까? 신: .. 채경: 제발 아무 말이나 해 보십시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더는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신: (채경 물끄러미 보는) 채경: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신 보는) 그렇게 오랜 만에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날 선 시선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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