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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드라마

[스크랩] <상상소설>사랑은 이기적이다 #06

 

 

 

 

 

 

 

 

신이랑 채경이는 만나게 될까요?

 

여러분들의 염원 때문에 6회 엔딩이 바뀌었다는 힌트만 드리고 저는 물러갑니다.

 

 

 

**대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담양 대숲..

6~7년 전 취재로 다녀오고 늘 한번쯤 더 가고 싶었는데,

이번 마감 끝나고 드디어 떡갈비 먹으러 담양에 갑니다.

~ 이번엔 떡갈비가 더 목적입니다. (무도 식객편 이후로 어찌나 땡기던지..^^;;)

 

신이랑 채경이한텐 애틋한 담양이 쏭기자에게 떡갈비가 기다리고 있는 탐스러운 곳이네요.

낭만이 떨어지는 작가 만나 고생하고 있는 두 아이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번 편이 선물이 되길 바라며..

 

 

 

**계속해서 소설짤 만들어 주셔서 욕심과 기대만 커지고 있습니다.

좋은꿈 대감님, 고맙다는 진부하고 흔한 말로 늘 마음을 대신합니다.

이번 편도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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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들은 생일을 어떻게 정하지?”

 

 

 

난데 없는 신의 질문에, 방금 막 장어초밥을 입에 넣고 씹으려던 현수는 사래가 들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 가려던 채경은 동작 그만 되어 신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당황한 것 같은 두 사람과 달리, 담담하게 맞은편에 앉은 채경을 바라보는 신. 

채경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다. 이에, 채경은 앞접시에 초고추장 발린 회를 내려놓고 신을 마주본다.

 

 

 

오늘은 신이 자기 생일이라며 좋은 데 가서 같이 점심이나 먹자며 셋이 함께 나선 참이었다.

 

 

채경은 입사해서 부서 배치를 받은 지 두 달 남짓 되어 가던 시점이라, 신과 현수 모두 어려웠다.

신이야 원체 회장님 아들이라는 백그라운드와 차갑고 냉소적인 성격 때문에 어려운 상대였고,

현수 역시 능력 있고 깔끔한 일 처리를 자랑하는 칼 같은 직속 상관이라 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였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에 아직까지 적응도 안 됐고, 숨쉬는 것조차 불편해 죽을 것 같은 때였다. 

여기에, 입구부터 사람 주눅 들게 하는 세련된 일식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더해져서,

밥을 먹는 건지 불편함을 먹는 건지 모를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이 뜬금없이 물었다.

 

고아는 생일을 어떻게 정하냐고..

 

 

신이나 현수나 채경의 상관이니 당연히 그녀의 이력서를 보았을 것이다.

이름 있는 대학의 졸업 여부, 좋은 학점, 제법 괜찮은 토익 성적으로 채운 채경의 이력서,

그러나 그 제일 첫머리에는 그녀가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족 관계는 공란으로 비어 있었고, 그녀의 호적 주소의 끄트머리는 은혜원이었다.

누가 봐도 채경은 고아 출신이었고, 그 사실을 숨기거나 감추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신과 현수가 집과 관련된 걸 물을 때면 은혜원에서의 일을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딱히 피할 이유도 없었고, 움찔하거나 눈치 볼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오래도록 고아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살아오면서 생긴 노하우였다.

 

 

하지만 지금 뜬금 없이 신이 입에 올린 질문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 멋들어진 식당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고, 다른 때와 달리 민망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평소 덤덤하던 현수도 사래가 들려 버렸을 것이다.

대놓고 고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건..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내가.. 실수했나?”

 

 

뒤늦게 현수와 채경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신이 한 발짝 물러난다.

호기심 다분한 눈빛도 담담해지고, 앞으로 숙였던 몸도 뒤로 약간 빠진다.

하지만 물러난 신의 얼굴엔 자신이 딱히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 눈치다.

이에, 가만히 앉아 있던 채경이 간만에 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입을 연다.

 

 

 

아이들마다 경우가 다 달라요..”

 

 

 

채경이 마음이 상했을 거라 생각했던 현수는 채경이 담담하게,

그것도 신의 질문에 답을 하자 살짝 눈이 커진 채 채경을 본다.

반면, 채경이 자길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길 꺼내자 신은,

채경의 이야기가 흥미 있다는 듯 다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듣는다.

 

 

 

 

생년월일이랑 이름이 적힌 메모랑 함께 고아원으로 오게 된 아이는 메모에 적힌 날이 생일이 돼요.

그냥 오게 된 아이는 대충 나이를 짐작해서 선생님들이 적당한 날로 정해 줘요.. 이름도 그렇구요..”

 

신비서는 어떤 경우야?”

 

저는 아버지 어머니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셔서 호적에 올린 이름이랑 생일이 있었어요.”

 

부모님이 일곱 살 때 돌아가셨어요?”

 

.. 횡단보도 건너시다가 뺑소니 차에 치이셨대요.”

 

..”

 

친척들은 없어?”

 

이모가 계시긴 한데, 형편이 어려워서 저를 거둘 수가 없으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친분이 있으셨던 지금 어머님이 저를 거둬 주셨어요.”

 

그럼 쭉 고아원에서 자란 거야?”

 

중학교 마칠 때까지는요..”

 

고등학교 때 독립했어요? 너무 이르지 않나?”

 

고등학교 땐 기숙사에 들어갔어요. 학교가 사립이라 기숙사가 있었거든요.

집이 멀기도 했고.. 성적도 나쁜 편이 아니라서 기숙사에 들어갈 수가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한텐 기회였죠.. 집보다 공부하기 훨씬 좋은 환경이었으니까요..”

 

그럼, 대학 와서 완전 자립한 건가?”

 

.. 입학 결정되자 마자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벌었어요. 그걸로 서울에 방 얻고..

학교 다니면서는 과외 구해서 용돈 벌고, 학비에 보태고.. 좀 정신 없이 살았어요.”

 

그런 것 치곤 휴학을 별로 안 했네..”

 

빨리 졸업해서 돈 벌고 싶었거든요.”

 

 

 

채경의 마지막 말에, 담백하고 짧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두 남자.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 멋쩍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이 왠지 모르게 재밌기만 한 채경은 자기도 모르게 씨익 웃는다.

 

 

 

해사하게 웃는 채경을 보는데, 그 순간 왜 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분명 그 자리는 신을 위한 자리였다.

 

겉으로야 무뚝뚝하게 대해도 늘 자신을 잘 보좌해 주는 현수가 듬직했고,

간만에 불쾌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여비서가 나타나 기분 좋은 신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과 생일날 점심을 함께하기로 마음 먹은 신이었다.

 

친구처럼 편하지도, 가족처럼 허물 없지도 않은 관계의 사람들이라 불편할 수도 있지만,

회사 동료만이 줄 수 있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래서 1년에 단 하루..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과 특별한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평소 신의 성격상, 생일날 같이 밥을 먹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의미했다.

 

 

가족들보다도 같이 하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들..

나이를 통한 서열이 아니라, 직급으로 서열이 정해지고,

때론 아니꼽고 때론 얼굴 붉힐 일도 많은 공적 관계지만,

그 속에서 웃고 울며 끈끈해질 수밖에 없는 신기한 관계..

 

 

그래서 그 자리는 어찌 보면 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분명 그 자리는 그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를 채워 준 두 사람이 있어 빛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빛나는 두 사람을 마주 보며.. 신은, 해사하게 웃는 여자를 새삼스럽게 보게 되었다.

 

 

이력서만 봐도 살아온 인생 자체가 팍팍하고 고단했을 여자..

온화한 표정 뒤에 숨겨져 있을 고아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온 여자..

어느 날 갑자기 비서로 나타나 어느 샌가 자신의 수족이 되어 버린 여자..

자신을 그저 순수하게 직장 상사로만 바라보는 사심 없이 맑은 여자..

 

 

그런데 정작 난.. 저 해사한 웃음을 짓는 여자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느끼는 걸까?

 

 

..

 

 

..

 

 

 

 

 

 

 

 

 

 

 

 

 

 

 

 

 

 

 

 

 

 

 

 

 

 

 

 

 

 

 

 

 

 

 

 

 

 

사랑은 이기적이다 #06

 

 

 

 

 

 

 

#. 광주

 

 

 

 

갤러리처럼 꾸며진 너른 거실 한 켠에 들어선 와인바.

 

바스툴에 긴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은 신이 빛 좋은 와인을 뚫어질 듯 감상하고 있다.

 

신과 멀찍이 떨어진 거실 소파에 앉은 또 다른 남자가 신을 바라보며 입을 뗀다.

 

 

 

 

우진: 그래서 일은 잘 끝났어?

 

: 뭐 대충..

 

우진: () 니가 대충할 인간이냐?

 

: 일 얘기 하기 싫은데..

 

우진: 알았다~ 술이나 마셔라~

 

: (구경하던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는 거실 둘러보며) 반 년 전이나 지금이나 휑하네~

 

우진: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렇지 뭐.. 분홍 레이스에 꽃무늬 벽지라도 기대했냐?

 

: (피식)

 

우진: 근데 너.. 생일날 여기 있어도 돼?

 

: (우진 보는)

 

우진: , 내일 생일이잖아.

 

: (어이 없다.) 내 생일도 기억하고 있어? 너 나 그렇게 좋아했냐?

 

우진: (역시나 어이 없다.) 니 생일 블랙 데이잖아.

 

: ??

 

우진: 블랙 데이가 생일이라서 자장면만 엄청 사 줘놓고..

 

: ..

 

우진: 발렌타인 데이에 사탕도 대따 많이 받은 놈이 블랙 데이에 자장면 먹자고 하는 거 얼마나 눈꼴 시렸는지 아냐?

 

: 눈꼴 시렸으면 같이 안 먹으면 되잖아?

 

우진: 공짜로 사 준다는데 왜 마다하냐?

 

: 그럼 군말 없이 찌그러지든가~

 

우진: ..

 

: (비어 버린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른다.)

 

우진: 너무 많이 마신다~ 내일 오전에도 미팅 있다며..

 

: 이 정돈 아무것도 아냐~ 걱정 마..

 

우진: 술 늘었네?

 

: () 그래.. 그동안 는 거라곤 주량밖에 없다..

 

우진: 너 얼굴도 어두워졌어.

 

: (멈칫)

 

우진: 안 그래도 검은 얼굴이 아예 어둠에 묻혀서 안 보일라 한다..

 

: (비죽거리며) 그래도 나 좋다는 여잔 끊이질 않는다~

 

우진: ..

 

: (와인을 왈칵 들이킨다.)

 

우진: 아직도 기다리냐?

 

: ..

 

우진: 안 지쳐?

 

: 그러는 너는? 사돈 남 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우진: 나야 뭐 1년도 안 됐잖아. 3년 넘은 너한테 비할 바가 아니지..

 

: 그렇게 따지면 너보단 희망적이지 않냐, 내가?

 

우진: ..

 

: (뒤늦게 쩡~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이신! 너 이거 마시고 취했냐? 정말 돌았구나~ 할 말 못 할 말이 있지 너 정말!!)

 

우진: (피식) 그래.. 어쨌든 니 여잔 살아 있으니 다시 볼 순 있겠다..

 

: 우진아..

 

우진: (손을 들어 막으며) 그래도 너.. 안 힘드냐?

 

: (입 다무는)

 

우진: 아직까지 소식 모르지?

 

: ..

 

우진: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거지?

 

: ..

 

우진: 그 여자가 떠나간 이유가 뭐든, 세월이 많이 흘렀어. 너랑.. 다른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 그럴지도 모르지..

 

우진: 그런데도.. 계속 기다릴 거야?

 

: 그앨 기다리겠다고 작정하고 있는 거 아냐. 그냥.. 다른 여잘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우진: 남들이 보면 그게 그거야~

 

: 그런가? 그래서.. 다들 날 못 잡아 먹어서 난린가?

 

우진: ()

 

: 가끔..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가 있어.

 

우진: (신 보는)

 

: 네 말대로.. 그애가 나랑 다른 마음이 되어 버렸으면 어쩌지..?

 

우진: ..

 

: .. 그걸 참을 수 있을까?

 

우진: ..

 

: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아니.. 참지 못할 거야. 인정도 못할 거고..

그애랑 그애가 다시 마음에 품은 그 놈을 요절내고 말 거야. 아마.. 그럴 거야, ..

 

우진: ..

 

: 시간이 지났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이해되기도 한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런 일말의 가능성 같은 거.. 절대 인정 안 할 거야. 내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날만 고대하고 있는데.. 딴 생각 하고 있는 거.. 절대 용서 못해.

 

우진: 그럼 차라리 다시 찾아봐.

 

: (우진 보는)

 

우진: 왜 손 놓고 있어?

 

: ..

 

우진: 그래.. 너 할 만큼 다 한 거 알아. 할 수 있는 방법 다 동원했다는 것도 알구..

그래도 다시 시작해 봐. 꼭 만나야겠다면, 기다리고만 있지 마. 시간 가는 거, 안 아까워?

 

: ‘아까워.. 아까워 죽겠어..’

 

우진: 전국에 지명수배라도 내려. 너 그 정돈 할 수 있잖아.

 

: ..

 

우진: 그렇게 해서라도 찾아. 그래서 결론을 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만나서 담판 지어.

니가 이렇게 기다리는 거 아직 채경씰 좋아해서, 못 잊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버려진 탓도 있어. 채경씨가 떠난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

네 입장에선 제대로 된 이별을 못한 거구, 그래서 계속 끌려 다니는 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넌 채경씰 반드시 만나야 돼. 그래야 끝이 나든 새로 시작하든 할 수 있어.

 

 

 

 

우진의 말에 생각이 많아지는 신.

 

채경을 기다리면서 끝장을 내기 위해 기다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우진이 말처럼 제대로 된 이별을 못해서 미련이 많이 남는 건, 맞는 것 같다.

채경이 자신을 떠난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채경이 떠난 걸 인정할 순 없었다.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린 그 여자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신은 두 사람이 이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이별이 아니었다.

 

사랑을 둘이서 했다면, 이별도 둘이서 해야 맞는 거다. 그러니 그 전엔 절대 헤어진 게 아니다.

그래서 신은 채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을 계속 이어서 할 생각이었다.

 

 

 

한편, 신이 너무 심각해지자 마음이 무거워지는 우진.

 

신을 다그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떠난 사랑에 힘겨워하는 친구가 안타까워 걱정한다는 게, 잔소리를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친구의 말대로 우진은 지금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영영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을 위해 자숙한다는 핑계로,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으로 돌아와 홀로 죄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랜 만에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와 준 친구가 반가웠고,

그런 만큼 오랜 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어두운 게 마음 아팠다.

그래서 자신의 상황도 잊고, 친구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좀 오버해서 이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고 말았다. 저 자존심 센 녀석한테 말이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아, 우진은 일부러 가볍게 다른 이야기를 던진다.

 

 

 

 

우진: 너 자꾸 미적대다간 제2윤정하 나오지 말란 법 없다~

 

: (살짝 눈 커지는)

 

우진: ? 놀랐냐?

 

: 니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아?

 

우진: 이름만 아는 줄 아냐? 정하랑 나 어렸을 때부터 오빠 동생 하는 사이야~

 

: ??!!

 

우진: 내가 말 안 했었냐? 우리 아버지랑 윤형주 의원 친구라고..

 

: (들은………… 것도 같다.)

 

우진: 정하.. 꽤 괜찮아.

 

: (우진 보는)

 

우진: 내가 아는 여자애들 중에 첫 손가락에 꼽힐 만큼 괜찮아.

 

: ..

 

우진: 솔직히 채경씨만 아니면 정하랑 너, 밀어 줬을 거야.

 

: 하나도 안 반갑거든?

 

우진: () 그렇게 별로였냐? 걔 괜찮은데~

 

: 본인보단 아버지가 괜찮지..

 

우진: 윤형주 의원..?

 

: 그래.. 윤형주 의원.. (처음 현수로부터 윤정하윤형주 의원 딸이라는 걸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새삼 나서 소름이 돋는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 누구 딸?”

 

윤형주 국회의원이요..”

 

 

 

 

윤형주 국회의원이라면 야권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이력 하며,

인권 변호사로 대활약 한 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와 조리 있고 논리정연한 연설 솜씨로,

정치에 관심 없는 이들조차 시선을 고정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정치권에서 이만큼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이도 드물었다.

청렴결백하고 소탈한 이미지는 정치인들을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까지 무장해제시켰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윤형주 의원을, 이신도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딸이 윤정하라고..? 그 재수 없는 여자가?!!

 

 

 

 

진짜 대통령 딸이네~”

 

???”

 

아냐, 아무것도.. 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 .. 윤형주 의원이 이사님과 맞선 보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제일그룹과 사돈을 맺는 것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했다 하더군요.”

 

..”

 

두 집 사모님들끼리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윤의원의 반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씨는 될 수 있겠네..”

 

“..”

 

.. 어쨌든 입이 떡 벌어지는 집안을 물어오셨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둬야겠는데..? 안 그럼 잡아 먹히겠어..”

 

좀 더 파헤쳐 볼까요?”

 

아냐, 됐어~ 그냥 윤정하 개인 프로필이나 더 읊어 봐. 그동안 뭐 하며 살았는지 들어나 보자..”

 

 

 

 

 

 

우진: 작정하고 기다리는 거 아니면, 그냥 가볍게 만나 봐~ , 시간도 벌어야 되잖아.

 

: (상념에서 깨어나온다.)

 

우진: 첫 만남이 그래서 그렇지, 친구 삼아도 좋을 거야.

 

: 그런 친구 필요 없어.

 

우진: ~? 내숭도 안 떨고 활달하고 재밌는데..

 

: 재밌긴 개뿔.. 활달한 걸 넘어서 호전적이라 잡아 먹으려고 달려들더라~

 

우진: 그랬어? 걔가 그런 앤 아닌데..

 

: 그런 애고 자시고 관심 없어.

 

우진: 그래도 너희 부모님은 관심 많으실 거야. 호락호락 안 물러나실 것 같은데..

 

: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쩌시겠어?

 

우진: 무작정 싫다고 하다가 덜미 잡힌다, 나처럼..

 

: (우진 보는)

 

우진: 넌 나 같은 실수 안 했으면 좋겠어.

 

: ..

 

우진: 나처럼 먼 길 떠난 사람 그리며 혼자 살 생각하지 말고, 둘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

 

: ..

 

우진: 난 니가 그때처럼 웃었으면 좋겠다.. (너라도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 ..

 

우진: 채경씨가 있어야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면 어차피 답은 하나야.

그러니까 이미 작성한 답안지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움직여라 제발~

 

 

 

 

 

 

 

 

 

#. 담양 일각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가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들었다.

 

낯선 길을 하염없이 달려 담양에 도착한 때는 오후 3..

 

무엇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혜옥과 심덕은 날이 밝을 때 숙소를 정해야 한다며, 숙소부터 찾자고 했다.

어른들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젊은 사람들은 순순히 그 말씀에 따랐다.

그래서 30여 분 동안 깨끗하고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모텔을 하나 잡았다.

각각의 방에 짐을 풀고, 모텔 주인에게서 맛집을 추천 받아 떡갈비부터 먹으러 갔다.

아침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이른 저녁을 먹자는 데 전원 의견이 일치했다.

 

 

그렇게 찾아간 떡갈비 전문 식당에서 입에 살살 녹아드는 떡갈비를 배 터지게 먹었다.

바닷가 사람들이라 육지에서 난 쇠고기로 만든 갈비가 별미이기도 했거니와,

처음 제대로 된 떡갈비를 먹게 되니 그 맛이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일품이었다.

그래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에 흠뻑 빠져 저녁 식사는 완전 대성공이었다.

 

 

오래도록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지는 거리를 따라 읍내로 나가 아주 짧게 밤거리 구경을 했다.

어른들은 먼저 가서 쉬겠다며 숙소로 돌아가고, 젊은이들은 호프를 찾아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마시는 맥주는, 낯선 술집의 풍경은, 마주 앉은 사람이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들뜨고 설레게 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많이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11가 넘도록 술잔을 기울인 채경과 남자 셋은 기분 좋게 취해 낯선 밤거리를 걸었다.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에 온몸을 맡기고 한창 들떴다.

 

 

 

 

그리고 다음 날..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원래 목적이었던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대나무 숲 입구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4, 그것도 평일 오전인데도 대나무 숲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고즈넉한 대나무 숲을 기대했던 채경은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대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나무 숲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래서 들어갈수록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냐 싶을 만큼 조용하고 고즈넉한 대나무 숲이 채경을 반겨 주었다.

그래서 채경은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오기로 했던 약속의 땅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비록 혼자 왔지만, 그와의 추억을, 그때의 약속을 떠올리며, 밝게 웃어 보이는 채경이다.

 

 

 

 

 

 

 

 

 

#. 차 안

 

 

 

 

이틀째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고 있는 신.

어제 마신 와인이 아직도 깨지 않았는지 머리가 어지럽다.

이마에 주먹을 올려 두고 눈을 감아 두통을 참아보려는 신.

하지만 움직이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으려니 더 어지러워 

금방 감은 눈을 뜨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먼 산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지럼증이 덜어질까.. 기대해 보는 신.

 

 

 

 

현수: (백미러로 뒷좌석을 흘끔 보며) 어디 불편하십니까?

 

: ..

 

현수: 피곤해 보이시는데.. 잠시 쉬었다 갈까요?

 

: 서울 가서 쉴래.

 

현수: , .. (더는 묻지 않고 운전에 열중한다. 최대한 서울에 빨리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 (굳은 얼굴로 창 밖을 본다.)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풍경들과 이정표들이 어지러운 시선에 잠시 담겼다가 사라져 간다.

 

 

그렇게 의미 없이 창 밖만 하염없이 구경하며 한 시간쯤 달렸을까..?

 

지끈거리는 두통과 눈을 아프게 하는 어지럼증, 솟구치는 구토를 참고,

한시라도 빨리 서울에 도착하기 위해 휴게소조차 건너뛴 신이 현수에게 지시한다.

 

오른쪽으로 빠지라고..

 

 

 

 

현수: (영문을 모르겠지만 빠지라고 하니 오른쪽 차선으로 이동한다.)

 

: 잠시 쉬었다 갈래.

 

현수: ??

 

: 저기서 빠져..

 

 

 

 

현수, 신이 가리키는 저기를 바라보니, 멀리 담양톨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 대나무 숲

 

 

 

 

 

채경: (고개를 들어 키 큰 대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꽤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서 하늘과 대나무가 함께하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채경은 풍경 감상에 푹 빠졌다.

 

 

그래서 태호가 곁에 서서 기척을 할 때까지 주변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숨소리도 들리고, 부스럭대는 발소리도 들리고.. 정신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한다.

 

 

 

 

채경: (돌아보는)

 

태호: (채경 보는)

 

채경: (눈앞에 있는 사람이 태호라는 걸 확인하고는 살짝 미소 짓는다.)

 

태호: 재밌어요?

 

채경: ??

 

태호: (대나무 흘끔 보며) 저게 재밌어요?

 

채경: ..

 

태호: 내 눈엔 그냥 대나무가 서 있는 거 밖엔 안 보이는데, 채경씨 눈엔 재미난 게 보이나 봐요.

어떻게 30분을 한자리에서 같은 것만 보고 있을 수가 있어요? 난 좀이 쑤시려고 하는데..

 

채경: 내가 30분이나 이러고 있었어요?

 

태호: () 해 지려고 하는 거 안 보여요?

 

채경: .. (그제서야 조금 붉어지고 어둑해지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태호: 하늘을 뚫어져라 보길래 알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눈치 못 채고 대체 뭘 본 거예요?

 

채경: 그러게요.. 뭘 보고 있었던 거지?

 

태호: ??

 

채경: 내가 뭘 보고 있었던 걸까요? (도리어 태호에게 묻는다. 말간 얼굴로..)

 

태호: (자기가 뭘 보고 있었는지를 왜 나한테 묻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채경을 보고 있으려니, 어이 없다는 표정도 못 짓겠다.)

 

채경: (태호가 멀뚱히 자기만 쳐다보다 시선을 천천히 돌려 숲을 바라본다.)

 

태호: (채경의 시선 따라 숲으로 눈길을 돌린다.)

 

채경: 여긴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해가 지네요..

 

태호: ..

 

채경: 사시사철, 아침이나 저녁이나 늘 그대로일 것 같은데.. 여기도 시간이 가네요.

 

태호: ..

 

채경: 어두운 대나무 숲은 무서운데.. 얼른 도망가야겠다~ ^^ (하면서 걸음을 떼려는데..)

 

태호: ..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줄 알았어요.

 

채경: (멈칫 서는)

 

태호: 그 옛날,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알게 된 신하가 소리 친 곳이 대나무 숲이었죠?

 

채경: ..

 

태호: 그래서 난, 채경씨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채경: ..

 

태호: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둔 말 다 하기 전까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채경: ..

 

태호: 근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무슨 얘기길래 저렇게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선 안 될 말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

 

채경: ..

 

태호: 그동안 참은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먼 곳까지 와서 저렇게 넋 놓고 넋두리를 하고 있나..

 

채경: ..

 

태호: ..

 

채경: (피식) 내가.. 그래 보여요?

 

태호: (채경 보는)

 

채경: 속에 담아 둔 말이 차고 넘쳐서, 아무도 들어선 안 될 비밀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 곳에서만 솔직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처럼 보여요?

 

태호: ..

 

채경: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태호: ..

 

채경: 별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채경과 태호가 동시에 돌아본다.

 

 

 

 

태호: (모르는 남자가 서 있어서 고개를 갸웃한다.)

 

 

채경: !!!!!!!!!!!!!!!!!!!!

 

 

 

 

 

 

어떻게..

 

어떻게..

 

 

 

 

 

 

그가.. 서 있었다.

 

3년간 단 한번도 잊어 본 적 없던 사람..

 

버리고 온 이후 늘 그립고 보고팠던 사람..

 

 

 

 

신이.. 눈 앞에 있었다.

 

 

 

 

 


출처 : 시나리오 창작방
글쓴이 : 쏭기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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