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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드라마

[스크랩] <상상소설>사랑은 이기적이다 #08

 

 

..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준비한 비축분이요..

 

어쩌면 지난 7편에서 비축분이 떨어지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때는.. 희망적인 예감을 하는 분들이 더 많았을 거란 짐작 때문에요..

~ 썰 먼저 읽으시면 이번 편 흐름이 어찌될 거라는 걸 알고 시작하시겠어요..

쟉가가 스포를 알려 주는 시스템이라니.. --;; 정말 저는 아직 철이 덜 들었어요.

 

 

 

어찌됐든, 신이랑 채경이의 첫 재회를 저는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담양에서 만나게 하고, 첫 재회는 이렇게 되고, 다음을 기약하는..

어쩌면 신이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그리고 싶은 내용 때문에 신이를 이렇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이어지는 신이랑 채경이한테 일어나는 일들..

모두 제 무덤 파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갔답니다.

저를 원망하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겠지만.. 두 아이가 잘 될 거라는 희망으로 버텨 주세요.

 

 

그럼, 저는 정말로 여기서 그만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쏭기자가 탄력 붙은 것처럼 대감들도 덩달아 탄력 받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혼자 달리지 않아서 쓸쓸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 드려요~

 

 

 

***환하게 웃고 있는 신이랑 채경이는 왠지 아직은 어울리지 않아서, 선물 받은 대문을 당장 못 쓸 것 같아요.

~~ 이런 건 또 처음이라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곧 이런 날이 올 테니, 그땐 과감히 첫머리로 달게요, 미쁨 대감님..

 

 

***오랜 만에 예고제 할게요.

여러분들이 이번 편 보고 돌 날릴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최대한 금요일밤에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전에 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래 봤자 내일이라서.. --;;

 

 

 

신이랑 채경이의 제대로 된 재회.. 지금부터 보시면 됩니다..

 

 

 

 

#####################################################################################

 

 

 

 

 

 

 

 

 

 

 

채경이 의자 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고, 그녀의 의자에는 웬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채경의 책상을 넓게 차지하고는 컴퓨터 모니터에 코를 박듯 몰두하고 있다.

 

 

 

어제 저녁부터 인터넷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엄청 느린 부팅 속도와 싸우다 지친 채경,

아침이면 컴퓨터가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거라는 헛된 바람을 안고 퇴근을 했더랬다. 

그런데 출근해 보니 여전히 어제와 마찬가지로 먹통처럼 구는 컴퓨터를 보고는 결국,

사내 IT 운영팀에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저께부터 신과 현수는 출장 중이었고,

컴퓨터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을 알고 있지 않은 채경이 도움을 요청할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원래 컴퓨터 AS 요청을 하면 길게는 사나흘씩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들 하던데,

웬일인지 채경이 전화를 하자마자 대리라는 직함을 가진 선배가 즉각 방문을 했다.

 

 

몇 번 집에서 인터넷이나 컴퓨터 AS를 받아본 전적이 있는 채경은,

자신이 컴퓨터를 쓸 줄만 알지 아는 게 전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부른 적이 80% 이상이었다.

그 분들이야 출장 요금을 받으면 그만이라 웃으며 돌아들 갔지만,

이번엔 회사 동료, 그것도 직급 높은 분의 방문에 조금은 긴장되는 채경이었다.

전문가가 봤을 땐 너무나 어이 없는 에러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까지 미치자,

조금만 더 참아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지금은 그저 심각한 바이러스에 손상을 입었다든지 하는 평가가 내려지길 바랄 밖에..

 

 

 

 

뭐가.. 문제예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탓에 아무 말 없이 컴퓨터를 살피고 있는 남자에게 먼저 조심스럽게 묻는 채경.

 

 

 

 

, 요즘 돌고 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아요.”

 

..!”

 

안 그래도 백신을 깔라고 사내 공지를 띄우려던 참이었는데, 그 전에 당하셨네요.”

 

그럼 어떡해야 돼요? 파일 다 날아가는 거예요? 백업 안 받았는데..”

 

괜찮아요. 파일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니까..”

 

, 그래요? 다행이다..”

 

“(피식) 지금 치료는 거의 끝났구요, 백신도 깔아 놓고 갈게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저 가고 나면 백업도 받아 두세요.”

 

.. 근데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치료하고 백신 깔고.. ~~ 2~30분 정도..?”

 

.. 그럼 차 한 잔 하실래요?”

 

??”

 

제가 마음이 급해서 물 한 잔도 대접 못했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시간 걸리잖아요. 차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세요. 잠시만요~”

 

 

 

 

채경이 종종걸음으로 탕비실로 사라지자, 그제서야 참았던 긴 한숨을 토해내는 기욱.

 

 

채경이 IT 운영팀으로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팀내 모든 미혼 남자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전화가 끊기고, 운 좋게 전화를 받은 막내가 출장(?)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미혼 남자들의 반짝거리던 눈빛이 다급하면서도 위험하게 꿈틀거렸다.

이런 희대의 행운을 그저 전화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차지하게 해선 안 된다는 암묵적 동의..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초 사이에 그런 암묵적 동의가 눈빛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 가위바위보로 승패를 가렸다.

누가 봐도 멀쩡한 제일그룹의 잘 나가는 직장인 일곱 명(애인 있는 사람 포함),

사활을 걸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특히 여직원들의 야유와 유치하다는 눈빛이 일곱 남자들에게 고스란히 쏟아졌다.

하지만 가위바위보에 임하는 남자들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고,

손을 내미는 동작 한 번 한 번에 심장 박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승패가 갈릴 때마다 극명한 희비가 엇갈리면서 고개 숙이는 자와 환희 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승부의 최종승자로 당당히 출장권(?)을 따낸 이가 기욱이었다.

 

모든 라이벌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저절로 세레머니가 나올 만큼 기쁨은 대단했다.

언젠가 입사 동기인 현수를 통해 소개를 받기 전부터 채경의 미모와 착한 성품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오며 가며 멀리서 채경을 볼 때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과 한마음으로 채경을 칭찬하느라 바쁜 그였다.

여직원들이야 회장님 아들인 신에게 열광한다지만, 남자 직원들에게도 아이돌 여직원들은 있었다.

 

그 중 최근 급부상한 이가 작년 대졸 공채로 입사한 채경이었고,

비서라는 직함이 주는 단아함과 왠지 모를 신비감으로 인해

채경의 인기는 허리케인처럼 제일그룹 남자들을 강타하고 있었다.

기욱도 휘몰아치는 신채경 신드롬에 열광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현수 옆에 있던 채경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현수를 아는 체를 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현수는 채경을 소개시켜 줬고, 그게 감격적인 첫만남이었다.

 

그 후 복도며 로비며 구내식당이며 휴게실이며 눈인사라도 하길 고대했지만.

어쩐 일인지 채경과 눈인사를 할 만큼 직접적으로 대면할 기회가 오질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런 행운의 기회가 오다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 그렇고 말고.

하지만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통에 승부욕도 타올랐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오늘 기욱에게 내려온 모양이었다. 결국 행운이 그에게 돌아왔으니..

 

 

 

 

이거 마시면서 하세요..”

 

, 정말 안 이러셔도 되는데..”

 

 

 

채경이 손수 탄 차를 배달까지 해 주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기욱.

자기도 모르게 4년이나 늦게 입사한 후배에게 깍듯한 존대를 하는 건 기본이요,

채경이 찻잔을 내려놓을 땐 엉덩이를 떼며 그녀를 맞이하는 꼴까지 보였다.

더군다나 사양하는 자신의 말에 바로 코앞에서 채경이 생긋 웃어 주는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나 뭐라나..

 

 

 

 

근데 저희들 구면이죠?”

 

???”

 

저번에 김팀장님이랑 같이 있을 때 인사를 드린 것 같은데.. 아닌가요?”

 

“!!! 기억하고 있었어요?”

 

.. 웃는 얼굴 뵈니까 기억이 나더라구요.. ^^”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진짜,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근데 저는 컴맹이라 정말 이런 거 잘하시는 분들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 보여요~”

 

이게 뭐가 대단해요?”

 

아니에요! 진짜 대단해요.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대신에 저는 이것밖에 모르잖아요.”

 

전문 분야가 있는 게 어디에요~”

 

그런가..? ^^”

 

그럼요~ ^^”

 

~! 그럼 전문가로서 조언 하나만 할까요?.”

 

??”

 

일단 여기 앉아 볼래요?”

 

 

 

 

기욱이 채경에게 의자를 내어 주고 일어선다. 그리고 얼떨떨해 하는 채경의 팔을 슬쩍 잡아 자리에 앉힌다.

 

 

 

 

오늘 같은 일 벌어지지 않게 컴퓨터 보안 하는 거 알려 줄게요. 간단하니까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해 주세요.”

 

.. ..”

 

일단 회사 보안 프로그램 클릭해 볼래요?”

 

..”

 

 

 

 

워낙 이쪽으론 아는 게 없는 채경인 탓에, 기욱의 지시를 매우 진지하게 수행한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기욱이 말하는 바를 클릭하느라 마우스를 잡은 손이 바쁘다.

그래서 자기 뒤에서 허리를 숙여 같이 모니터를 보느라 한층 가까워진 기욱의 표정이 어떤지,

알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누군가 자기 뒤에 바싹 붙어 있다는 사실조차..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모습을 목격한 그녀의 남자친구 눈엔 온통 그 기분 나쁜 장면만 들어왔다.   

더 솔직히 말해,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보는 순간 이맛살이 구겨지고 욕이 튀어나올 장면이었다.

대체 아침부터 저러고 뭘 하고 있는지, 아니, 저 놈은 왜 채경 뒤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아니다, 아니다! 상황 파악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저 상황이 어떤지 알 필요도 없었다.

그냥 엎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저 눈에 거슬리는 놈도, 장면도, 치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무슨 문제 있어?”

 

 

 

 

신의 목소리에 컴퓨터로 향해 있던 둘의 시선이 동시에 이동한다.

그리고 신을 발견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발딱 일어서는 채경과,

비서는 아니지만 이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중압감에 의해 몸을 일으키는 기욱.

 

 

일단 둘이 야릇한 포즈를 깨뜨리는 덴 성공했지만, 여전히 나란히 서 있다는 게 맘에 안 드는 신은

평소보다 더 위협적이고 차가운 표정으로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 채경 향해,

 

 

 

 

커피 좀 부탁해.”

 

 

 

 

나름 쿨하게 지시하고 뒤늦게 꾸벅 인사하는 기욱은 가볍게 스킵 해 버리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는 쿨하고 멋들어진 포즈는 순식간에 집어 던지고,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바깥 동정을 살핀다.

채경이 바로 탕비실로 움직이는지 책상 주변에서 미적대는지, 소리로 확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듣는다.

만약 당장 안 움직이면 다른 지시를 내려 채경을 움직이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문 손잡이를 잡고 대기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채경이 남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탕비실로 이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단순하게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깨에 잔뜩 들어간 긴장을 빼며 몸을 기대는 신.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뒤늦게 스스로를 돌아보지만,

방금 전 자신이 본 장면을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아니, 더 유치하게 굴 수도 있었는데 안 그런 자신이 대단하다고,

결국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신이었다.

 

 

2분 후,

 

똑똑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쟁반을 든 채경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때까지 문에 기대어 서 있던 신이 그 자세에서 고개만 채경에게 돌린 채 그녀를 바라본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 코앞에 서 있는, 그것도 나른한 시선을 하고 있는 신을 발견한 채경.

조금 놀라서 반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래서 문 닫는 것도 잊고 신을 빤히 쳐다보는데,

그런 그녀를 대신해 신이 손수 문을 닫아 준다. 그리고는 다시 나른하게 채경을 마주 본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러는 넌 저기서 뭐 했어?”

 

??”

 

저 놈 대체 누구야?”

 

누구요?”

 

지금 니 책상에 앉아 있는 놈 말야.”

 

강대리님이요?”

 

강대리고 나발이고 누구야?”

 

제 컴퓨터 고치러 온 IT 운영팀 직원이요.”

 

그럼 컴퓨터나 고쳐 주지, 둘이 사랑과 영혼이라도 찍어?”

 

??”

 

왜 뒤에서 껴안고 난리야?”

 

누가 누굴 껴안았다고 그래요?”

 

누구긴 누구야? 니 뒤에서 침 질질 흘리던 저 자식이지.”

 

실장님..”

 

, 그리고 넌 왜 그렇게 빈틈이 많아? 남자 무서운 걸 모르는 거야, 아님 타고난 거야?”

 

??”

 

내가 이래서 자릴 비울 수가 없어~ 요즘도 사무실 기웃거리는 놈들 한 트럭이지?”

 

..”

 

그렇게 코웃음칠 일이 아니라니까?”

 

지금.. 질투하시는 거에요?”

 

??”

 

출장 갔다 오자마자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쟁반 내밀며) 자요~ 커피 마시고 정신 차리세요!”

 

.. 졸지에 미친 놈 됐네..”

 

그 정돈 아니에요.”

 

그 정도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상처 받았다~”

 

“..”

 

그러니까 치료해 줘.”

 

“???”

 

넌 참~~ 눈치가 없어. 내가 피곤한데 굳이 회사로 바로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 커피 내려놓고 당장 품에 뛰어들어~”

 

~??!!”

 

얼른~~”

 

..”

 

나 피곤하다~ 얼른 치료해 줘.”

 

그거면 돼요?”

 

글쎄~~ 일단 함 안아 보고..”

 

 

 

 

 

 

 

 

 

 

 

 

 

 

 

 

 

 

 

 

 

 

 

 

 

 

 

 

 

 

 

 

 

 

 

 

 

사랑은 이기적이다 #08

 

 

 

 

 

 

 

 

 

 

#. 대나무 숲

 

 

 

 

제법 한참을 걸었다. 어딘지 알고 가는 길도 아닐 거면서, 신의 걸음에 망설임은 없다.

 

 

그는 늘 그랬다. 한치의 의심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감히 꿈도 꿔선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가 가진 무한한 자신감과 넉넉함에 빠져들었다.

마음 한 켠에 들어찬 불안감 따위 안 보이는 척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채경에게 보여 준 사랑과 신뢰는 대단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남자였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남자이면서, 애인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래서 채경은 한 없이 이 남자에게 빠져들었고, 그 마음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온전히 채워 주는 그가 너무 좋았다. 그저 좋기만 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이끌어 주는 그가 좋았고, 부족함 없이 자라 그늘 없는 면이 좋았다.

늘 자신만만한 남자가 자기 앞에서만 작아지고 소심해지는 사랑스러움이 좋았고,

남한테 맞춰 줄 줄 모르는 남자가 자기에겐 모든 걸 양보하고 참아 주는 배려가 좋았다.

 

세상이 아는 차갑고 무뚝뚝한 남자 이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채경은 마음껏 그를 사랑했고, 온전히 그의 사랑을 받았다.

영원한 사랑을 믿을 만큼 순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믿었다.

자신들의 사랑이 진실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가고 싶었다.

그를 배신하는 일 같은 거, 그를 아프게 하는 일 같은 거, 안 하리라 믿었다.

적어도 자신이 그에게 등 돌리고 떠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채경은 그의 손을 놓았고, 철저하고 무참하게 그를 버렸다.

 

다시 만난 그의 서늘한 표정이, 차갑고도 쌀쌀한 그 눈빛이, 지난 세월 얼마나 아팠는지 알 수 있었다.

 

차가운 그의 시선이 참 아팠지만, 채경은 그런 걸 원망할 입장이 아니었다.

솔직히 재회를 안 떠올렸다면 거짓말일 것이기에, 차가운 그도 여러 번 상상했었다.

더 심각하게는, 신에게 뺨 한 대 맞는 상상도 무수히 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을 무책임하게 버리고 간 그녀에게 그는 화를 낼 자격이 충분했으므로..

 

하지만 어쩐 일인지(아마 태호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오래도록 상상만 했던 재회는 꽤 싱거웠다.

그의 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순간에 이뤄지긴 했지만,

그녀를 마주한 그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반응했고, 하고 싶은 말을 뒤로 미루는 침착함도 발휘했다.

 

그래서 채경도 생각할 시간을 벌게 됐다.

여전한 그의 뒷모습을 3년 만에 따라가며,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흔들림은, 불안은, 모두 그와 헤어지고 난 후에 터뜨릴 것이다.

절대 그 앞에서 자신이 그와의 만남이 반갑다는 걸, 고대했다는 걸 눈치채게 안 할 것이다.

아직 채경은 약속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평생 짊어져야 할 것이었다.

 

 

 

 

: (서서히 걸음을 멈춘다.)

 

 

 

 

폐장 시간이 가까운 탓인지, 숲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신은 최대한 조리 있게 말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쯤 멈춰 섰다.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채경이 도망가지 않고 따라온다는 사실에 내심 안심했다.

적어도 이번엔 지난 번처럼 어이 없이 버려지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 .. 숨을 고르고 천천히 뒤돌아본다.

 

채경, 돌아서는 신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본다.

 

 

 

 

신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재회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는 채경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이번엔.. 손 뻗어서 만져 봐도 사라지지 않겠지..?

 

이름을 부르면.. 메아리만 되돌아오지 않겠지..?

 

 

이 사실만으로도, 지난 지옥 같은 시간들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이 단순한 일들을 채경과 할 수만 있다면.. 과거 따위 무시할 수 있었다.

 

 

 

 

채경: (손목시계를 보는 척하며) 나 일행이 있어서 시간 많이 못 내 줘요.

 

: (채경이 먼저, 그것도 저리 무심하게 얘기를 꺼내자 기습 받은 듯 가슴 한쪽이 아프다. 어떻게 너, 그렇게 덤덤하게, 나와의 재회가 별거 아닌 것처럼 행동할 수가 있니? ,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우리 3년 만에 보는 거야. 아니, 니가 나 버리고 어이 없게 헤어진 후에 처음 만나는 거야. 그런데 너, 그런 말이 나와? 그런 표정 지을 수 있어? 너 그래도 돼? 너 정말..)

 

채경: 나한테 무슨 얘기할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요.. 그래도 그거 시간이 너무 지ㄴ..

 

: 아직도 연기해?

 

채경: (신 보는)  

 

: 내 앞에서도 연기하려고?

 

채경: 무슨..?

 

: 그래~ 3년이나 지났으니 연기력도 늘었겠다.. 함 볼까? 얼마나 소름 끼치는 가식 연기를 떨어 주는지..?

 

채경: (숨 삼키는.. 신의 눈빛이 너무 서늘해서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 ? 멍석 깔아 주니까 못 하겠어? 그래서 그때도 도망친 거야? 차마 내 앞에선 할 수가 없어서?!!!

 

채경: ..

 

: 왜 도망쳤어!

 

채경: (한 발 뒤로 물러나는)

 

: (다가서며) 왜 도망쳤어!!!

 

채경: (흔들리는 눈빛)

 

: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도망쳤어? 나한테 말하면 안 됐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됐던 거야?

 

채경: (입술 깨무는)

 

: 고아원 부지 살 돈.. 네 어머니 수술비.. 나한테 말했어도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었어!

 

채경: !!!!!!!!

 

: 어떻게.. .. 어떻게 그런 일로 날 버릴 수가 있어?

 

채경: (충격으로 휘청대는.. 신이 알게 됐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 내가 너한테 그렇게 의지가 안 되는 애인이었어? 그런 일도 상의 못할 만큼 못미더운 놈이었냐구!

 

채경: ..

 

: .. 왜 하필 그런 일을 우리 엄마한테 부탁한 거야? (조금은 원망스러운 말투)

 

채경: (신 보는)

 

: 우리 엄마 손 잡으면.. 내 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

 

채경: ..

 

: 어떻게 내 손 놓고 우리 엄마 손을 잡을 수가 있어? 어떻게..!  

 

채경: ..

 

: (숨 고르는)

 

채경: (생각 많아지는)

 

: ……………………………..우리 엄마 만난 일은 왜 얘기 안 했어?

 

채경: (신 보는)

 

: 우리 엄마가 너 힘들게 한 거 왜 얘기 안 했어?

 

채경: ..

 

: 그때부터 나 떠날 생각 하고 있었어?

 

채경: ..

 

: 그런 거야?

 

채경: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 (서늘한 대답)

 

: ??

 

채경: 어차피 우린 헤어졌잖아요. (담담한 눈빛)

 

: .. 뭐라고?

 

채경: 사모님이 날 힘들게 했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결과적으로 실장님 말대로 난 실장님 손 놓고 사모님 손 잡아 버린 걸..

 

: 그걸 말이라고 해?

 

채경: 저한테 변명 듣고 싶은 거 아니에요?

 

: ?

 

채경: 그때 왜 그랬냐 묻고 있는 거잖아요.

 

: 그래서?

 

채경: 그래서 대답해 주고 있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 ..

 

채경: 어이 없겠지만, 그때의 선택.. 나 후회하지 않아요.

 

: ? 후회 안 한다고?

 

채경: ..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선택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 .. 나 엿 먹일라고 작정했어? 대체 그딴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ㅇ..

 

채경: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제 와서 실장님 기분 더 나쁘게 해서 뭐하겠어요?

 

: (너무 덤덤하게 얘기하는 채경이 딴 사람 같다. 이 여자, 내가 알던 그 여자 맞아? 그 순둥이 내 애인 맞아? 내 농담 한 마디에 까르르 자지러지고, 내 호통 한번에 눈물 찔끔 흘리던 내 여자.. 맞아?)

 

채경: 솔직히 실장님한테 돈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 죽기보다 싫었어요.

 

: ?

 

채경: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마지노선이라는 건 있으니까요..

 

: 그 마지노선이라는 게, 날 버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었던 거야?

 

채경: (신 보는)

 

: 나보다 더 중요했어?

 

채경: ..

 

: !!!

 

채경: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저한텐 그랬어요. 실장님 손만 놓으면 마지노선도 지키고, 내 식구들도 지킬 수 있었어요.

 

: ‘..’

 

채경: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수술 안 하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고,

동생들은 곧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었어요.

그러다.. 호시탐탐 내가 실장님 곁을 떠나 주기만 바라는 분이 떠올랐어요.

 

: (채경 보는)

 

채경: 그 분이라면 내 고민을 모두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어요.

 

: 그럼 정말로 네가 먼저..

 

채경: .. 제가 먼저 부탁 드렸어요.

 

: !!!!!!!!!!!!! (그래도.. 그래도 그건 안 믿었었는데.. 엄마가 아무리 그렇게 말했어도 그건 아닌 줄 알았는데.. 네 사정 알게 된 엄마가 널 공략한 거라고.. 약점 걸고 넘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채경: 사모님은 제가 부탁 드린 걸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이행해 주셨어요. 그러니 저도..

 

: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행방불명 된 거야?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채경: 그래도.. 마지막 밤은 실장님한테 주는 선물이었어요.

 

: ?!!

 

채경: 그날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드렸어요. 그래서 나는 여한 없이..

 

: (오른손이 치켜 올라간다.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더는 그 시간들이 더러워지는 걸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있는 채경의 입을 막고 싶었다.)

 

채경: (하늘 높이 치켜든 신의 오른손 보는)

 

: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온 힘을 다해 끌어 내린다. 욕이 튀어 나오려는 입을 막기 위해 입술을 핏멍울이 들 때까지 깨문다.)

 

채경: (신이 흥분할수록 터져 나오는 속울음과는 반대로 담담하고 차갑게 말이 튀어 나간다.) 일방적으로 떠나온 건.. 잘못했어요.

 

: (채경 보는)

 

채경: 사과한다고 용서 받을 수 있는 일 아니라는 거 알아요. 어차피 그것도 다 내 편의대로 한 거니까..

 

: 그럼.. 하나 마나 한 얘길 왜 하는데?

 

채경: 실장님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희망 같은 건 없다는 거 말해 드리려구요..

 

: ???

 

채경: 이유야 어떻든 실장님을 떠나오면서 난 우리 사랑을 끝내기로 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진짜로 끝 냈어요.

 

: ..

 

채경: 물론 당시엔 실장님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었어요. 그 후로도 한동안 미련이 있었구요..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3.. 생각보다 길잖아요. 불 같던 사랑도 식기에 충분한 시간이에요.

 

: 그래서.. 네 사랑은 식었다고?

 

채경: ..

 

: 그러니까 내가 다 용서해 준다고 해도 돌아올 생각이 없다~?

 

채경: ……………………………….이런 날.. 용서해 주려구요?

 

: (용서해 준다는데 왜 그렇게 비아냥대? 너한테 그렇게 확실하게 버림 받고도 미련 못 버리는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여자 따위 안 믿는다던 내가 이런 꼴이 된 게 웃기니? 그런 거니?)

 

채경: (피식)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실장님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맘 없어요.

 

: !!!!!!!!!!!! (그래도 너.. 어떻게 대놓고 나한테.. .. 어떻게..)

 

채경: (다시 손목시계를 본다.)

 

: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다.)

 

채경: 이제 정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정신 드는)

 

채경: 이런 말 내가 하는 거 염치 없지만.. 그래도 이젠 나 같은 여자 잊고 새출발 하세요.

 

: (입술 깨무는)

 

채경: 이미.. 시간은 충분히 흘렀어요. 그러니까 더는 지난 사랑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다른 사람 만나도 지난 사랑이 거짓이 되는 거 아니니까, 새로운 사람 만나세요. 그럼..

 

 

 

 

 

고개를 까딱 하고 채경이 돌아선다.

 

 

 

돌아서는 순간 무너져 내린 표정은 걷잡을 수가 없다.

 

제발 신이 자신을 잡지 않기를, 그래서 이 감정을 들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번에 그에게 잡히면, 한번 무너진 감정이 도로 숨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채경은 도망쳐야 했다. 그가 자신을 잡기 전에 반드시 도망가야 했다.

 

내딛는 걸음에 속도가 더해진다. 힘이 더해진다. 그래서 점점, 점점, 그에게서 멀어진다.

 

 

 

 

 

 

 

돌아서는 채경을 보며, 어이없게도 신은 움직일 수가 없다.

 

다시 만나면 절대로 놓아 주지 않을 거라고 했던 결심은 지키지 못했다.

 

충격으로 멍해져 버린 머릿속이, 채경이 던진 비수로 인해 찢겨진 심장이, 그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신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서서 충격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너져 내렸다. 서서히 무너져 내린 무릎이 땅에 닿았다.

 

중력의 힘을 받은 눈물이 땅을 향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대지를 뒤흔드는 한 남자의 포효가 고즈넉한 대나무 숲에 크게, 크게 울려 퍼진다.

 

 

 

그 울음 같은 포효에 도망치던 여자는 터지는 울음을 두 주먹으로 훔치며 달려간다.

 

 

상처 받은 남자를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배신하며, 멀리, 더 멀리 달려간다.

 

 

 

 

 

 

 

 

 

#. 차 안

 

 

 

 

현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현수: 최대한 빨리 간다 해도 8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호텔로 와. 회장님이랑 먼저 식사하고 있을 테니까..”

 

현수: ..

 

, 근데 신이는 어때? 많이 피곤한 상탠가?”

 

현수: (백미러로 흘끔 신을 본다. 불만 가득한 얼굴로 창 밖만 보고 있는 그의 상태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팀장~”

 

현수: , 예 사모님.. 그게, 출장 스케줄이 빡빡한 탓에, .. 피곤해 하십니다.

 

그러게 왜 차로 가서 그 고생을 하는지.. 비행기 탔으면 편하고 좀 좋아?”

 

현수: ..

 

어쨌든 피곤하다고 딴 데로 안 새게 김팀장이 책임지고 데려와.

생일날 부모도 없는 놈처럼 지내게 할 순 없잖아? 안 그래?”

 

현수: ..

 

그럼 수고해~”

 

현수: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고 현수는 다시 백미러로 신을 흘끔 본다. 여전히 신은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 채경이 울면서 도망갔는지, 어째서 신이 채경을 놓아 줬는지, 그로선 모를 일이었다.

 

채경이 뛰어가고 한참 후에 숲을 내려온 신은, 초점 없는 눈으로 유령처럼 걷고 있었다.

 

 

그 전부터 사모님으로부터 신이 언제 서울로 오냐는 독촉 전화를 받고 있던 터라,

현수는 무엇보다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다. 그의 표정은 차후 문제였다.

그래서 정신 없어 보이는 신에게 저녁 스케줄에 대해 얘길 전하며 차로 신을 안내했다.

아무 말 없이 순순히 차까지 따라오던 신은, 차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사방을 살피며 채경을 찾아야 한다는 둥 이건 아니라는 둥 횡설수설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신의 핸드폰으로 회장님의 전화가 걸려왔고, 서울 복귀 명이 떨어졌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망설이던 신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 나선 쭉 저 상태다.

 

 

차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다.

 

채경이 울면서 뛰어갔다는 말조차 해 줄 수가 없다.

 

그래서 현수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운전수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 또 다른 차 안

 

 

 

 

채경: 미안해요..

 

태호: 뭐가요?

 

채경: 저 때문에 하루 일찍 가게 됐잖아요.

 

태호: (피식)

 

채경: 정말 미안해요.

 

태호: 미안해 하지 말고 고마워해 줘요.

 

채경: ??

 

태호: 채경씨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안 그래요?

 

채경: ???

 

태호: 아까 만났던 그 남자한테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인 거잖아요.

 

채경: 태호씨..

 

태호: 미안해요. 이럴 땐 매너 있게 모른 척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네요. 뱃놈이라..

 

채경: 태호씨가 미안해 할 일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너무 폐가 많은데요..

 

태호: 이런 폐라면 얼마든지 끼쳐도 돼요.

 

채경: (태호 보는) 고마워요..

 

태호: 근데..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채경: ??

 

태호: 이왕 매너 없다는 거 뽀록난 마당에, 나도 채경씨한테 살짝 폐 좀 끼칠게요.

 

채경: ???

 

태호: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요 이런 질문..

 

채경: (태호 보는)

 

태호: 아까.. 대나무 숲에서 만났던 그 남자..

 

채경: ..

 

태호: 그 남자가 혹시..

 

채경: ..

 

태호: …………………………………..아이 아빠예요?

 

채경: !!!!!!!!!!!!!!!

 

 

 

 

 

 

 

 

 

#. 호텔

 

 

 

 

이런 기분으로 생일 축하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게 거지 같은 신.

아버지가 직접 전화한 것만 아니면 다 때려 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번지르르한 대리석 복도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다 재수 없어 보인다.

 

 

터덜터덜 긴 복도를 걸어가는 자신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생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개떡 같이 느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신은 부모님께 인사만 드리고 대충 뭉개다가 집에 가야겠다 생각한다.

 

 

적어도, 레스토랑 룸을 열기 전까지 신의 소박한 바램은 그랬다.

 

 

 

 

 

 

 

 

 

신아~~”

 

 

 

문이 열리자 혜숙이 반갑게 자신을 불렀다. 겉으로 보기엔 아들의 등장에 반가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혜숙의 눈빛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신이 안 올까 봐 내내 걱정하고 있던 터였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걸 눈치 못 챌 신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신이 문을 열고 들어간 룸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만 계신 게 아니었으므로..

 

 

 

 

 

정하: (생긋 웃으며 신에게 눈인사 한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신이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를 통해서만 보아왔던 정하의 아버지, 윤형주 의원이 앉아 있었다.

 

 

 

 

정말, 오늘 하루는 더 없이 길 것 같다.

 

 

 

 

 


출처 : 시나리오 창작방
글쓴이 : 쏭기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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