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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드라마

[스크랩] <상상소설>사랑은 이기적이다 #05

 

 

신이랑 채경이가 얼른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두 아이가 만나는 장면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 그런데 대감들의 댓글을 읽다 보니, 대단한 사연과 비밀들을 기대하고 계신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첫 회 썰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이번 소설은 진부한 설정이 굉장히 많습니다. 헤어진 이유는 숱한 드라마에서 울궈 먹은 것이구요..

대신 주안점을 둔 것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아이가 지금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다시 또 만나게 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더 많이 기대하고 궁금해하기 전에 얼른 왔어요. 또 이래야 두 아이가 만나는 장면도 빨리 오겠죠?

 

 

연휴의 마지막 밤, 일찍 자야 하는 관계로 댓글 달아 주신 대감님들 이름 모두 불러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 대신 소설 들고 온 거 예뻐라 해 주시구요.. 구독료 많이 내 주시면 그 보답으로 담글도 얼른 갖고 올게요.

 

 

원래는 5편에서 두 아이 만나게 할 생각이었는데, 또 글이 길어지네요.

10편 전후로 해서 끝을 보려던 저의 계획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래도 상상소설 쓰는데 조금은 탄력을 받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 서서히 탄력 받고 있는 쏭기자의 순번 애매한 상상소설 <사랑은 이기적이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새로운 대문 선물해 주신 미쁨 대감님! 감사해요!

두 아이의 재회는 저 역시 비루한 상상을 하고 있어서.. --;;

 

**채경이의 표정이 너무 어여쁜 소설쯩 만들어 주신 좋은꿈 대감님..

이번 짤도 너무너무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진짜 인사는 따로 댓글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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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모래바람을 흩날리며 좁은 운동장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자동차.

운동장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낯선 자동차로 쏠린다.

외부 방문이 드문 곳이다 보니 모두의 시선이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개중에는 차에서 내릴 사람을 잘 보려고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나는 아이도 있었다.

이렇듯 고아원 아이들의 열렬한 관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에서 내린 남자는,

주변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그런 남자의 뒤를 쫓아 건물로 따라가는 아이도 있고,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은 더 많다.

 

 

 

 

여기 신채경씨 있어요?”

 

??”

 

 

 

 

다짜고짜 방으로 쳐들어와 인사도 없이 묻기부터 하는 남자.

이에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있던 보모가 놀라 남자를 쳐다본다.

 

 

 

 

여기 신채경 있냐구요..”

 

“..”

 

그렇게 쳐다만 보지 말고 대답을 해요. 채경이 있어요?”

 

채경이.. 없는데..”

 

없다뇨?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지금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에요? 여기에 없다는 뜻이에요?”

 

누구..세요?”

 

“..”

 

누구시길래 우리 채경일 찾아요?”

 

“..”

 

“..”

 

저는..”

 

“..”

 

신채경 남자친구인데요..”

 

??”

 

채경이 애인이라구요..”

 

.. 회사 동료라는..”

 

..”

 

근데 채경일 왜 여기서 찾아요?”

 

??”

 

채경이 나흘 전에 왔다 갔는데..”

 

“??!!”

 

출근해야 된다고 원장님 입원한 것만 보고 서울로 돌아갔어요..”

 

“!!!!”

 

근데, 채경이가 서울에 없어요?”

 

..”

 

혹시.. 채경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

 

“..”

 

저기요..”

 

“…………………………….원장님.. 어느 병원에 계세요?”

 

 

 

 

 

 

 

 

 

 

 

 

 

****7개월 후

 

 

 

 

 

똑똑..

 

노크 소리에 뒤이어 문이 열리고 현수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컴퓨터로 주식 시세를 체크하고 있던 신의 시선이 움직인다.

그리고 다가오는 현수의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포착한다.

 

 

 

 

뭐야?”

 

실장님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편지?”

 

.. 그런데 발신이.. 은혜원입니다.”

 

“!!”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편지를 낚아채다시피 하는 신.

그런 신을 아주 잠시 쳐다보다가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는 현수.

 

 

다급하게 편지 봉투를 뜯은 신은 은혜원 원장이 보낸 편지를 빠르게 읽어 나간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늦어 버린 감사 인사라 쑥스럽네요..

채경인 끝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제서야 용기를 내어 한참 늦어 버린 인사를 전합니다.

 

 

채경이를 통해 저희의 사정을 듣고 선뜻 도움을 주신 것.. 정말 고맙습니다.

아무리 만나는 사이라 해도, 그렇게 도와주기 쉽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길거리에 나앉을 뻔한 아이들과 제가 우리 집에서 계속 오손도손 살게 되었네요.

.. 몇 년 전부터 말썽을 부려 채경이 맘고생 시키던 제 심장도 건강해졌구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채경이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 했지만..

물론 채경이가 알아서 잘할 아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은혜원의 이름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염치 없지만 지금은 고맙다는 인사밖에 드릴 게 없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만나요.. 그땐 제대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겠습니다.

 

 

 

.. 전에 춘천에 오셨을 땐 제가 수술 직후라 의식이 깨어 있질 않았다죠?

하지만 인연은 그리 쉽게 어긋나는 게 아닌 법이니, 꼭 뵐 수 있을 거예요.

그땐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까지 모두 모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리고 오늘 편지는 채경이한텐 비밀로 해 주세요.

그 녀석, 제가 편지를 보낸 걸 알면 길길이 화를 낼 거거든요.

그러니 이건 님과 저의 비밀입니다..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해요. ^^

 

 

그럼.. 늘 평안과 안식이 당신과 함께 하길 기원하며..

 

 

춘천에서 채경이 엄마가..

 

 

 

 

 

 

 

 

 

 

 

 

 

 

 

 

 

 

 

 

 

 

 

 

 

 

 

 

 

 

 

 

 

 

 

 

 

사랑은 이기적이다 #05

 

 

 

 

 

 

 

#. 제일그룹

 

 

 

 

: 전라도 제2공장 부지 시찰은 언제로 잡혔지?

 

현수: 4월 셋째 주 목요일입니다.

 

: 그럼 몇 일이야?

 

현수: 13일입니다.

 

: (뭔가 생각하는 표정)

 

현수: (문제가 있는 걸까 싶어 살짝 고개 갸웃하는)

 

: 차편 확보했어?

 

현수: 담당자랑 다시 한번 스케줄 확인해서 픽스하려고 아직 안 했습니다.

 

: 그럼 비행기 예약 하지 말고 차로 가도록 조정해.

 

현수: 차로 움직이시게요?

 

: ..

 

현수: 광주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는 게 편하실 텐데요..

 

: 광주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 차 가지고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현수: .. ..

 

: 그건 그렇게 알고 진행해~

 

현수: 알겠습니다. 더 지시할 건 없으십니까?

 

: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컴퓨터로 돌린다.)

 

현수: (살짝 목례하고 물러서는데..)

 

: !!

 

현수: ??

 

: 있잖아..

 

현수: ..

 

: 윤정하.. 기억 나?

 

현수: ..

 

: 그 여자에 대해서 조사 좀 해 줘.

 

현수: ??

 

: 어머니한테 물어보면 바로 답 나오겠지만, 그렇겐 싫어서..

 

현수: ..

 

: 왜 그렇게 봐?

 

현수: , 아닙니다..

 

: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현수: (피식 웃으며) 아닙니다.. 정말로..

 

: 다신 안 볼 것처럼 굴더니 왜 그 여자 뒷조사는 하냐 싶어?

 

현수: (신 보는)

 

: 딱히 그 여자한테 관심이 생겼다거나 그런 거 아냐. 그냥.. 보험이야.

 

현수: ???

 

: 어떤 여자길래 어머니가 저렇게 나오나 궁금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게 대처하는 데 좋을 것 같아서..

 

현수: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 .. 소름 돋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

 

현수: 정말 대단한 집안 아가씨면.. 어쩌실 겁니까?

 

: (현수 보는)

 

현수: 죄송합니다. 주제넘은 얘길 했습니다.

 

: 아니~ 주제넘은 발언이 아니라 쓸데 없는 질문이었어. 내가 어떻게 할 건지 김팀장은 알고 있잖아, 이미..

 

현수: ..

 

: 나가 봐~ 이제 정말 더 지시할 거 없어.

 

현수: ..

 

 

 

 

현수가 나가고, 사무실에 혼자 남은 신은, 빙그르르 의자를 돌리며 일어선다.

창가로 다가가 20층 아래의 깨알 같은 땅 세상을 내려다본다. 전혀 감흥이 없다.

그래서 1분도 안 지나 시선을 위로 들어올린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려 하고 있다.

언제 하루가 다 간 건지.. 새삼 시간의 속절없음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른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시간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을 때면 조금은 무서운 신.

 

 

 

너를 잊지 않을 자신은 있는데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힘들기도 해..

떨어져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게 아쉬워..

아무것도 못하고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이러다 영영 너를 찾지 못할까 봐, 그래서 이렇게 기억만 할까 봐 두려워..

 

이렇게 무력한 놈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인내심이 많지도 참을성이 많지도 않았는데..

너에 한해서만은 무한한 인내심과 참을성이 발휘되고, 얌전히 기다리게도 되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참고 버티는 거겠지..?

 

 

 

 

: .. 저 석양 보고 있냐? 난 하릴없이 하늘 보는 일 많아졌다.. 바보처럼 하늘이랑 대화하는 날도 많아졌구..

너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음식들도 생겼고.. 너 만나면 다 폭발하려고 가슴 속에 쌓아 두고 있는 감정들도 많아..

다 너한테 쏟아 부을 거니까, 너 각오하고 있어~ 그렇게 어이 없이 도망친 거.. 몇 배는 갚아 줄 테니까.. 

 

 

 

 

 

 

 

 

 

#. 학교

 

 

 

 

여기 오기 전에 뭐 하셨어요? 서울에서 오셨어요?”

 

 

 

 

아마도 선혜는 특별한 의도를 갖고 묻진 않았을 거다.

그녀가 말머리에 붙였던 것처럼 진심으로 전부터 궁금해서 물었던 것일 게다.

오늘은 왠지 편하고, 분위기도 친근해서 전부터 묻고 싶은 걸 꺼냈을 게다.

 

 

하지만 선혜처럼 전부터 궁금했지만, 차마 채경에게 묻지 못한 두 남자는,

선혜의 질문에 채경보다 더 긴장해서 채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기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종이컵을 꽉 움켜쥐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슴 밑바닥엔 채경이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3년 가까이 겪고 있는 채경은, 결코 과거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가볍게라도, 실수로라도 과거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채경을 아는 사람들 사이엔 암묵적으로 과거 이야긴 금기시되었다.

서로 분위기만 어색해질 걸 알기에, 궁금한 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반면, 선혜는 채경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은 축에 속했다.

방과 후 교사를 맡게 되기 전까진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고,

방과 후 교사를 하게 되면서부턴 잠깐씩 마주치는 게 다였다.

들리는 풍문에 채경이 외지에서 왔고, 바닷가 식당 보조를 한다는 걸 알았을 뿐,

자세한 처지나 채경의 신상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선혜 입장에서 젊은 여자가 없는 이곳에서 채경은 친해지고 싶은 존재였다.

자기보다 몇 살은 위일 것 같고, 웃는 것도 선해 보여 착한 사람인 것 같았다.

가끔씩 말을 섞게 되면 이야기도 잘 통하고, 불편한 구석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늘 벽화를 그리면서 편해진 분위기를 틈타 저녁 먹자는 제안도 하게 됐다.

제안이 불발에 그치게 되자, 티 타임 동안 간단한 호구 조사를 하고 싶었다.

무릇 사람이 친해지려면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게 제일 첫 단추이지 않은가?

 

그래서 던진 질문이었다. 선혜에겐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자, 선재와 태호를 긴장시킨 질문..

 

 

 

 

채경: 태어난 곳은 춘천인데 여기 오기 전까진 서울에 있었어요.

 

선재, 태호: !!!!!!!!!!!!! (대답 내용과 별개로, 채경이 대답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랐다.)

 

선혜: 서울로 이사 가셨어요?

 

채경: 아니오.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직장 다녔어요.

 

선재, 태호: (계속 놀라는)

 

채경: (놀란 두 남자와 달리 담담한 표정)

 

선혜: 직장이면..?

 

채경: (작게 웃으며) 그냥 회사요..

 

선혜: 서울에서 취직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채경: (선혜가 미처 끝맺지 못한 말이 짐작이 된다. 사심이 없다곤 해도, 직장 때려 치우고 시골 바닷가로 온 이유를 묻는 건 필시 실례일 거란 생각을 했으리라.. 선혜의 선한 마음이 느껴져 좀 전보다 더 크게 웃는다.) 직장 그만 두고 왜 여기로 내려왔냐구요?

 

선혜: (어색하게 웃는)

 

선재, 태호: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채경 보는.. 저렇게 쉽게 얘기해 주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늘 왜 저렇게 자기 얘길 술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채경: 큰 실수를 해서.. 도망쳤어요.

 

선혜, 선재, 태호: (채경의 마지막 말엔 다들 똑같이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짓는다.)

 

채경: (세 사람의 표정이 너무 똑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풋 웃고 만다.)

 

 

 

 

 

 

 

 

 

 

 

 

잠시 후..

 

 

 

 

 

채경과 선혜가 각자의 일터와 집으로 돌아간 후, 오랜 만에 나란히 앉은 오랜 친구 둘.

두 시간 전까지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난리 굿을 피우던 북쪽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선재는 양반다리를 하고 있고, 태호는 한쪽 다리는 뻗고 한쪽 다리는 세워 팔을 기댄다.

무릎에 기댄 팔 끝에는 연기를 피우고 있는 담배 한 개피가 손가락 두 개 사이에 걸려 있다.

 

 

 

 

선재: 담배 끊은 줄 알았더니..

 

태호: ..

 

선재: 채경씨 담배 피는 남자 싫어하는 거 모르냐?

 

태호: 뱃놈이 담배 안 피면 그게 뱃놈이냐?

 

선재: () 언제는 당장 끊을 거라면서 혈서라도 쓸 기세더니..

 

태호: (선재의 비아냥에도 애먼 담배만 쭈욱 빨아댄다. 대체 몇 번을 끊고 다시 피는지 이젠 세는 것도 지친다.)

 

선재: 담배 하나도 의지로 못 끊으면서, 채경씨는 어떻게 차지하려구..

 

태호: ??

 

선재: ? 기분 나쁘냐?

 

태호: 내 신경 긁고 있는 거 아냐?

 

선재: 그래서 뭐? 예전처럼 주먹으로 입 다물게 하려구?

 

태호: !!

 

선재: 성질 많이 죽었다~ 박태호.. 용케 참네~

 

태호: 좋은 말로 할 때 그만 깐죽 대라~ 너 나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되거든?

 

선재: 주먹 말곤 너, 나한테 이길 수 있는 게 없지~ 근데 어쩌냐? 이젠 주먹으로 모든 게 해결되던 학창 시절이 아닌데..

 

태호: 너 오늘 왜 이러냐? 날 받았냐?

 

선재: 니가 혹시나 흔들렸을까 봐서..

 

태호: 뭐가?

 

선재: 채경씨 얘기 듣고 충격 받은 거 같아서..

 

태호: ..

 

선재: (진지하게 태호 보는)

 

태호: (선재 보는)

 

선재: 채경씨.. 포기할 거냐?

 

태호: 너한테 대답해야 돼?

 

선재: ()

 

태호: 그렇게 웃지 마. 너 그렇게 웃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어!

 

선재: 그런 눈빛은 채경씨 앞에서 보여라~ 나한테 보여 줘 봤자 비웃음밖에 못 살 테니까..

 

태호: .. (말을 말자 싶다.)

 

선재: 난 니가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

 

태호: ? 내가 포기하면 경쟁자 하나 줄어서 좋은 거 아냐?

 

선재: 경쟁자가 있어야 재미 있지.

 

태호: .. 넌 진심이냐?

 

선재: 뭐가?

 

태호: 채경씨 좋아하는 거..

 

선재: ..

 

태호: 내가 흔들렸을까 봐 걱정하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니가 정말로 채경씨 좋아하면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 채경씨 갖고 장난하는 거면 진짜로 가만 안 둬!

 

선재: 장난 아냐.

 

태호: (멈칫)

 

선재: 근데.. 니가 채경씨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재밌어.

 

태호: ??

 

선재: 채경씨한테 호감 있는 것도 진심이고, 니가 재밌는 것도 사실이야.

 

태호: 뭐래는 거야?

 

선재: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태호: (외면해 버리는)

 

선재: 니가 채경씨 어떤 모습에 반했는지 모르겠지만, .. 채경씨가 신기루 같아.

 

태호: ..

 

선재: 닿고 싶고,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막상 다가가면 내 눈이 불러온 착각일까 봐 두려워.

 

태호: ..

 

선재: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사람 같아.

 

태호: ..

 

선재: 오늘 채경씨 입으로 인정했듯이, 분명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그래서 떠나올 수밖에 없었을 거고.. 죄인마냥 숨어서 살고 있는 거겠지..

그런 사실이 날 불안하게 해.. 영영 손에 안 잡힐 것 같아서.. 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태호: 그래서.. 고백을 안 하는 거야?

 

선재: (태호 보는)

 

태호: 넌 나름 엘리트잖아. 우리 마을에선 알아 주는 수재고..

딸 있는 집 어른들이 다 사위 삼자고 달려들 만큼 인기도 많고..

 

선재: ..

 

태호: 근데 왜 미적대?

 

선재: ..

 

태호: 부모님이 반대할까 봐?

 

선재: (피식)

 

태호: 그런 거 아님 왜 그래~

 

선재: 자신 없어서..

 

태호: ???

 

선재: 아직은.. 자신이 없어. 그래서 더 기다리려구..

 

태호: 뭘 기다려?

 

선재: 채경씨가 준비가 될 때까지..

 

태호: ..

 

선재: 너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태호: ..

 

선재: () 우리 정말 다른데.. 여자 취향은 비슷했나 봐~

 

태호: ??

 

선재: ^^

 

태호: ..

 

 

 

 

 

 

 

 

 

#. 열흘 후

 

 

 

 

아직도 멀었어요?”

 

 

 

마당에서 들려오는 심덕의 재촉에 채경의 손길이 바빠진다.

고작 2 3일로 떠나는 여행에 이삿짐을 싸 버린 혜옥 덕분에,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늦고 말았다.

집 앞까지 마중 나온 심덕에게 미안해서 마지막엔 대충 싸 버렸다.

혜옥의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듣고 마당으로 나서는 채경.

심덕의 눈이 채경의 두 손에 주렁주렁 달린 보따리와 가방에 휘둥그레해진다.

 

 

 

 

심덕: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타박하면서도 짐을 들어 준다.)

 

채경: 저도 몰라요. 아줌마가 싸라는 거 다 싸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심덕: 필요한 건 현지에서 사면 되는데..

 

혜옥: (방문을 나서며) 내 물건이랑 같냐?

 

심덕: (눈 흘기며) 니 물건 내 물건이 어딨어요~ 나이 헛 드셨네~ 갈수록 예민해지시긴..

 

혜옥: 깔끔한 성격 어디 가냐?

 

심덕: 알았어요~ 알았어~ (실랑이하면 더 늦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한다.)

 

채경: 차는 바로 앞에 대셨어요?

 

심덕: 순자네서 장독을 내놔서 골목까지 못 들어왔어.

 

채경: , .. 그럼 길가로 나가야 되네요?

 

심덕: ..

 

혜옥: 태호는 정말 따라간대냐?

 

심덕: ~

 

혜옥: 그 놈이 진짜로 채경이한테 마음을 먹었나 보네~

 

심덕: .. ^^

 

채경: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 말 못하고 대문을 빠져 나간다.)

 

심덕: ~~을 때다..

 

혜옥: (고개 갸웃하며) 난 채경이가 아까운데.. 막아야 되는 거 아닌가?

 

심덕: 젊은 남녀가 청춘을 불싸지르겠다는데 왜 막아요~

 

혜옥: 난 선재가 더 좋단 말여~

 

심덕: 아이고 형님~ 우리가 연애 합니까?

 

혜옥: 그래도.. 태호한텐 아까운데..

 

심덕: (혜옥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로 간다.)

 

 

 

 

길지 않은 골목을 빠져 나오자 낡은 승용차 하나가 서 있다. 심덕의 애마였다.

그리고 그 뒤로, 투박하지만 힘은 좋아 보이는 SUV가 주차되어 있다.

SUV의 창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고, 차창 밖으로 세 개의 머리통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을 향해 채경이 인사를 하자, 싱글벙글 웃으며 화답하는 세 남자.

운전석에 앉은 태호를 비롯해, 태호와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경식과 준혁이었다.

채경의 손에 짐이 들려 있는 걸 보고 자동적으로 차문을 열고 나오는 태호.

채경에게서 짐을 뺏어 들어 심덕의 차 트렁크를 열어 차곡차곡 넣어 준다.

그러는 사이 혜옥과 심덕이 합세하고, 두 차가 사이 좋게 출발한다.

 

 

처음엔 같이 여행 가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돼 버렸다.

그리고 과정이야 어떻든, 이상한 조합이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그래서 태백산맥을 가로질러 담양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 기대되는 채경이었다.

 

 

 

 

 

 

 

 

 

#.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탄 이후로 잠깐 눈을 붙였던 신은,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달리는 차 안,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휙 하고 지나쳐간 이정표 하나가 뇌리에 박힌다.

 

 

 

 

 

대나무 소리 되게 좋다~”

 

??”

 

대나무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되게 좋은데요?”

 

“..”

 

포스터 봤을 땐 이영애 빨간 목도리만 눈에 띄었는데.. 청각을 자극하는 영화네요..”

 

청각이 자극돼? 난 옛날 영화라 그런지 좀 적응이 안 되는데..”

 

멜로 영화라서 그런 건 아니구요?”

 

.. 어쩌면 그럴지도..”

 

.. 아까부터 계속 딴짓 하더니.. 영화 재미 없어요?”

 

그냥~ 나랑 취향이 안 맞는 것 같아..”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면서 이 영환 커플들의 필수 영화라면서요~”

 

이렇게 담백한 영환 줄 알았냐?”

 

..”

 

근데.. 저긴 어디냐?”

 

“???”

 

대나무 숲 말야.. 담양에서 찍었나?”

 

담양이요?”

 

.. 담양이 대나무 숲으로 유명하잖아.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다 거기서 찍었다던데..”

 

그럼 우리 담양에 대나무 소리 들으러 갈까요?”

 

??”

 

영화 주인공들처럼 대나무 숲 한가운데서 우주에 우리만 있는 느낌 느껴 보고 싶은데..”

 

우주에 우리만 있는 느낌 느껴서 뭐 하게? 아무도 못 보는 대숲에서 19금이라도 찍게?”

 

??!!”

 

 

 

 

 

어이 없는 그의 농담에, 채경은 한동안 무시무시한 눈흘김을 쏘아댔다.

그리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오기 전에,

영화는 뒷전으로 하고 대숲에서 찍으려던 19금을 그 자리에서 찍고 말았다.

 

 

 

영화는 다 못 봤지만, 영화 속 대나무 숲엔 가보려고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찍은 장소는 담양이 아니었다. 강원도 삼척의 대나무 숲이었단다.

그러나 신과 채경이 가고 싶은 대나무 숲은 담양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그래서 담양에 가서 대나무 숲도 보고, 떡갈비도 먹고 오자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봄날은 간다>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사랑의 변심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담양이라는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눈에 담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신은 다시 눈을 감는다.

 

 

 

 


출처 : 시나리오 창작방
글쓴이 : 쏭기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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