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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드라마

[스크랩] <상상소설>사랑은 이기적이다 #14

 

 

외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평소보다 더 멋지게 차려 입고 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선 채 머리가 따라 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허한 마음은 달래었지만, 여러분들에게 내보일 이야기가 채워졌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주를 넘기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이렇게 급하게 컴백 신고를 합니다.

생각보다 늦어져서 죄송하구요.. 기다렸던 만큼 재미난 글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도 죄송합니다.

 

 

저는, 내일 신이랑 채경이가 아프게 재회했던 담양으로 갑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 글 올려 놓고 가요. 오늘 안에 글 올리려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눈과 마음에 푸른 대나무숲 가득 담고 돌아오겠습니다. (떡갈비로는 배를 채우구요..^^)

그리고, 신이랑 채경이 이야기도 재미나고 신나게 풀어낼게요. 속도도 내서요.. ^^;;

 

 

저의 외도를 눈감아 주시고 묵묵히 기다려 주신 거 다시 한번 감사 드리구요.. 그럼, 재미있게 읽으세요.

(저는 이제 짐 싸려구요.. 내일 일찍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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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가 멀리 보이는, 조그맣고 한적한 학교 운동장.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정글짐에 기대어 통화 중인 남자.

흰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 부치고 삐죽이는 미소를 짓고 있다.

아무래도 통화 내용이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나 보다.

 

 

 

 

아버지가 그런 얘길 하셨어?”

 

-..

 

진땀 뺐겠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눈에 선한데..”

 

-..

 

끝까지 아무 얘기 안 한 거지?”

 

-.. 사실 할 말도 없었구요.. 이사님 어디 계신지 정말 모르니까요..

 

“()”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

 

-언제쯤 오실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

 

-회장님이 문제가 아니라, 이사님 결재 기다리는 사안들이 너무 많아서요..

 

“..”

 

-대충이라도 생각하는 날짜가 있으시면 저도 스케줄 조정을 해 둘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안해.. 고생이 많다..”

 

-..

 

아직 정확하게 언제 올라갈진 모르겠는데, 내 생각에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아.

채경이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 거 보이거든. 벌려 놓은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저.. 3년 동안 정 붙이고 살았던 사람들한테 인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라..

사실 그거 갖고 재촉할 수도 없잖아, 내 입장이.. 그냥 아무 말 안하고 기다려야지..”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

 

~ 처음부터 그랬는데 뭘.. 새삼스럽지도 않아. 3년 지났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럼 전에도 채경씨한테 꽉 잡혀 사셨어요?

 

내가 말 안 했었나? 완전 머슴 버전이었다고?”

 

-()

 

“()”

 

-(흠흠)…………….채경씨는.. 건강해요?  

 

.. 완전 시골 아낙네 다 됐어.”

 

-??

 

ㅋㅋ

 

-???

 

흠흠.. 어쨌든 위아래로 선방하느라 고생이 많다.. 며칠 내로 올라갈 거니까 좀만 더 고생해~”

 

-걱정 끼쳐 드리고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여기 걱정은 하지 마시고 편히 있다가 오십시오.

 

.. 그리고 만약에 아버지가 다시 물으면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

 

어차피 서울 가서도 미적거릴 생각 없어.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 해 놓고 기다리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혹시..

 

그래.. 결혼할 거야. 올라가면 최대한 빨리..”

 

-!!!

 

.. 저기 채경이 온다.. 이만 끊을게. 내일 또 연락할게~”

 

-, ..

 

 

 

 

전화가 끊기고 기계음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데도, 현수는 계속 멍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칠 일들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두 사람이 다시 손을 놓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떨어져서 그렇게 아파하며, 힘들어하며 살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사님께서 회사 일만이라도 신경 쓰지 않게 잘 서포트 해 줘야겠다.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현수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는 것으로, 그는 두 사람을 돕고 싶다.

 

이제는 정말.. 행복한 이사님을 보고 싶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미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사랑은 이기적이다 #14

 

 

 

 

 

 

 

 

#. 학교

 

 

 

 

 

나란히 정글짐의 중간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신과 채경.

 

그들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고, 어깨를 맞닿고 있는 둘의 표정은 나른한 듯 편해 보인다.

 

순간순간 둘을 스쳐 지나가는 따스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굉장히 좋다.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두 눈 가득 담겨오는 이 순간이 참.. 좋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순간을, 이 공기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동화되어 있던 채경으로선,

신이 말을 했을 때 그 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너 기다리다가 잠깐 수업하는 거 봤다..”

 

 

 

 

채경: (천천히 고개 돌려 신 보는)

 

: (여전히 바다를 향한 시선)

 

채경: 보지 말라니까.. (조금은 나무라는 말투)

 

: (그제서야 채경 보며) ~? 내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었어?

 

채경: (쭈볏거리며) 그게 아니라.. 쑥스러우니까 그렇죠..

 

: 수업 잘하던데 뭐..

 

채경: 그래 보였어요?

 

: (끄덕끄덕) 제법 선생 티 나던데?

 

채경: .. 2년 넘게 한 거니까요.

 

: 그림을 잘 그렸었어?

 

채경: ..

 

: 그건 또 몰랐던 거라 신선했어..

 

채경: (쑥스럽다.)

 

: 근데..

 

채경: ???

 

: 너 수업 하는 거 보면서 심사가 좀 꼬였어.

 

채경: …………………………왜요?

 

: 니가 웃고 있어서..

 

채경: ???

 

: 웃으면서 수업 하는 거 보고 있으려니까, 지난 2년 동안 저렇게 애들 앞에서 웃으면서 수업 했겠구나.. 싶어서 기분이 좀 그랬어.

 

채경: ..

 

: () 난 속 좁은 놈이라 그게 좀 그렇더라..

 

채경: ..

 

: .. 3년 동안 진심으로 웃어 본 적이 없어.

 

채경: ..

 

: 원래 잘 안 웃던 놈이라 남들 눈엔 똑같아 보였겠지만..

언젠가부터 그 누구 때문에 바보처럼 내내 입에 미소를 걸고 살았던 나로선,

정작 그 누구 때문에 3년 동안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 돼 버렸어..

 

채경: ..

 

: 아무리 웃긴 코미디를 봐도.. 수천 억 원 사업을 따내도.. 웃어지질 않았어.

 

채경: ..

 

: 웃음에 미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가끔씩 이렇게 날 만들어 놓고 가 버린 니가 원망스러웠어.

 

채경: ..

 

: 썩은 미소밖에 지을 줄 모르는 날 거울 앞에서 마주 대할 때마다 소름 끼칠 때도 있었고..

 

채경: ..

 

: 난 이렇게 소름 끼치는 놈이 되어가고 있는데.. 넌 어디선가 저렇게 웃고 살 거 생각하면 억울해지기도 했고..

 

채경: ..

 

: (피식) 왜 안 해도 될 얘길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있지?

이런 얘기 안 하면 더 쿨하고 멋진 놈으로 보일 수 있을 텐데..

 

채경: 그래요.. 정말 바보 같아요.

 

: ?? (눈썹 꿈틀)

 

채경: 왜 그렇게 바보 같이 살았어요?

 

: (채경 보는)

 

채경: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나 하나라는 건 실장님이 세상을 잘못 산 거에요.

 

: ?? (어이 없어지려고 하는)

 

채경: 그걸 제 탓으로 하는 것도.. 멋 없어요.

 

: .. (아무리 자기가 멋 없어도 채경이 이렇게 나오니까 속상하다. .. 안쓰러워해 주면 덧나나?)

 

채경: (신의 눈빛과 표정이 뭘 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이렇게 또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이 남자에게 저지른 잘못은 끝도 없을 것이다. 그걸.. 다시 정식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을 타박하는 것으로 이 무거운 족쇄를 잠시 잊어 보고자 한다. 없는 것처럼 무시하려 한다.) 앞으론 내가 없어도 웃을 수 있는 이유 100개쯤은 만들어 줄게요.

 

: 이유 100개 만들어 주고 넌 어딜 또 가려구?

 

채경: 누가 어디 간대요~ 내가 24시간 맨날 붙어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럼 나 없을 땐 내내 인상 쓰고 지낼 거예요?

 

: (흘겨 보는)

 

채경: (피식)

 

: ………………………………….이제.. 인사는 다 한 거야?

 

채경: ..

 

: (머쓱한지 눈 똑바로 못 보고) 애들한테도 인사하고.. 동네 사람들한테도 인사하고.. 그런 거 같아서..

 

 

 

 

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은 채경은 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기 말이 머쓱하다는 걸 알고 있는지 신이 눈도 못 맞추자 채경은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입가에 피어 오르는 미소를 숨기고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린다.

채경의 시선에 정글짐에 앉아 있느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두 사람의 발이 들어온다.

머쓱한 기분 탓인지 신의 발은 채경보다 조금 더 크게 공중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물끄러미 흔들리는 그의 발을 내려다보던 채경, 갑자기 자기 발로 신의 발을 툭 건드린다.

 

 

 

 

: (움찔 놀라서 채경 보는.. 뭐 하는 짓이냐는 듯한 눈빛..)

 

채경: (입술 씰룩이며) ~ 기다려 준다더니 틈만 나면 올라가자고 독촉이네요~

 

: (순식간에 눈빛 착해지는.. 가슴이 찔려서 다시 또 시선을 살짝 틀어 버리는..)

 

채경: (신이 귀여워서 큭큭거린다.)

 

: (채경의 웃음소리에 채경 흘끔 보는) ‘왜 웃는 건데?’

 

채경: (큭큭) 오늘 저녁에 혼자 좀 있을래요? (다른 얘기 꺼낸다.)

 

: ???

 

채경: (웃음 멈추며) 나 오늘. 저녁 약속 생겼는데..

 

; 무슨 약속?

 

채경: 학교 선생님들이 송별회 하재요..

 

: 송별회?

 

채경: .. 같이 저녁 먹자는데..

 

: 오늘 바로?

 

채경: (끄덕끄덕)

 

: ..

 

채경: 두 시간 정도 혼자 있을래요? 밥만 먹고 금방 올게요.

 

: ..

 

 

 

 

 

 

 

 

 

#. 평창동

 

 

 

 

예고도 없이 일찍 집으로 들이닥친 남편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혜숙.

피곤한 얼굴로 차를 부탁하며 서재로 들어간 남편이 마음에 걸린다.

안 좋은 일이 있나 싶어 재빠르게 차를 준비해 서재 문을 노크하는 혜숙.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데, 남편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눈을 감고 있다.

 

혜숙,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남편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러운 걸음을 떼는데..

 

 

 

 

준수: (혜숙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눈을 뜬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세운다.)

 

혜숙: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슨 일 있어요?

 

준수: (대꾸 없이 찻잔을 잡는다.)

 

혜숙: (나가야 하는 건가 더 있어도 되는 건가 잠시 고민한다.)

 

준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다가) 윤의원네랑은 얘기 잘 마무리 됐어?

 

혜숙: (왜 하필 그 얘길 꺼냈냐는 듯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오르며)

마무리 되고 말고가 어딨어요.. 그냥 미안하다고 백배 사죄한 거밖에 없는데..

 

준수: 그럼 그쪽은 완전히 끝난 거야?

 

혜숙: 신이 그 놈이 그렇게 하고 갔는데 뭐가 남겠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쫑난 거지.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지 목소리가 격해진다.)

 

준수: (열내는 아내를 보고 더 말하려다가 차를 마시는 걸 택한다.)

 

혜숙: 근데 그건 왜 물어요? 그날 이후로 그 일은 입에도 안 올리더니..

 

준수: 신이 말이야..

 

혜숙: 신이가 왜요?

 

준수: 계속 저러면 어쩌지?

 

혜숙: 뭐가요?

 

준수: 지가 알아서 여자 만나지 않는 한 우리가 들이미는 여자는 안 볼 것 같은데..

 

혜숙: 어쩔 수 없죠. 지가 그렇게 바보처럼 살겠다는데.. 

 

준수: 그냥 손 놔?

 

혜숙: 손 놓고 있으래요~ 지가 알아서 한다고..

 

준수: ‘..’

 

혜숙: 왜요? 회사에서 신이랑 무슨 얘기했어요?

 

준수: ..

 

혜숙: 그 놈이 또 뭐라고 했어요?

 

준수: 그 아이..

 

혜숙: ???

 

준수: 신이가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

 

혜숙: (얼굴 굳어지며) 그 기집애 얘긴 왜 해요? 생각만 해도 열 받는데.. (남의 집 귀한 아들 다 망치고 있어~)

 

준수: 3년이 지났는데도 신이는 그대로야. 당신, 아니 우리 판단이 틀렸어.

 

혜숙: 뭐가요?

 

준수: 그 아이가 없어지면 그냥 그렇게 묻혀질 거라고 생각했던 거 말야..

 

혜숙: 묻혀질 거예요. 지금 신이는 고집 부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미워서..

우리 보란 듯이 지나간 과거 붙잡고 있는 척 허세 부리고 있는 거예요.

 

준수: 그게 아니면?

 

혜숙: ??

 

준수: 그 자식.. 평생이라도 그 아이 기다리겠다는 게 진심이면?

 

혜숙: ..

 

준수: (..) 지난 번 그 자리에서 신이 녀석 하는 거 보고 화가 정말 많이 났는데.. 지나고 보니까 생각이 좀 많았어.

 

혜숙: 무슨 생각이요?

 

준수: 3년이면 절대로 짧은 시간 아냐. 그 놈 나이도 벌써 서른 둘이고.. 어린 나이도 아니잖아?

 

혜숙: 그래서요? 

 

준수: 차라리.. 그 아이를 찾아 주는 건 어떨까..?

 

혜숙: !!!!!!!!!! 뭐라구요?

 

준수: 어쩌면 다시 만나서 확실히 정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혜숙: 그게 무슨 소리예요?!!

 

준수: 흥분하지 말고~

 

혜숙: 내가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해요?

확실히 정리하는 게 뭔데요? 걔네들 이미 끝났어요. 다 끝난 일을 왜 다시 끄집어내요?

 

준수: 다 끝난 거 같아?

 

혜숙: ??

 

준수: 내가 보기엔.. 적어도 신이는 안 끝났어.

 

혜숙: ..

 

준수: 근데 어쩌면.. 그 아이는 끝났을 수도 있지..

그래서 끝난 그 아이랑 신이가 만나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혜숙: …………………………….그 아이도 안 끝났으면요?

 

준수: (혜숙 보는)

 

혜숙: 서로 안 끝난 아이들을 만나게 해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라면요?

 

준수: ..

 

혜숙: 그 아이 보는 거 난 싫어요. 차라리 그럴 거면 신이 녀석 못난 짓 하는 거 보고 있을래요. 속이 터져도 그게 더 나아요.

 

준수: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혜숙: ???

 

준수: 어차피 신이 녀석 우리 손에 놀아날 놈도 아니고.. 이제 나이 먹어서 더 지 생각대로 할 거야.

 

혜숙: 그래서요?

 

준수: 품 안에 자식 아닌 거..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혜숙: 자꾸 모를 소리만 하실 거예요?

 

준수: 당신은.. 신이가 평생 저렇게 사는 게 좋아?

 

혜숙: ..

 

준수: 혼자 저렇게 일에 묻혀서 사는 게 좋냐구..

 

혜숙: ………………………….허접한 그 기집애랑 사는 것보단 나아요.

 

준수: ..

 

혜숙: 그 기집애랑 어떻게 될 거면 평생 그렇게 살라고 할 거예요.

 

준수: ..

 

혜숙: (준수 표정 살피는)

 

준수: ..

 

혜숙: 설마.. 당신은 다른 생각인 거 아니죠?

 

준수: (혜숙 보는)

 

혜숙: (불안해지면서) 아니죠?

 

준수: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해? 당신이랑 신이랑 둘 다 고집 꺾을 생각을 안 하는데..

 

혜숙: 여보..!!

 

준수: 어차피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는 게 아냐. 나도 아니고.. 신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어.

 

혜숙: 그래서요?

 

준수: 신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간에 당신이랑 싸울 건 뻔해..

 

혜숙: 그러니까 내 편을 들어 줘야죠.

 

준수: 편 든다고 신이가 우리한테 질 거 같아?

 

혜숙: 그래도..

 

준수: 그 자식 이번엔 뒤도 안 보고 가 버릴지도 몰라. 우린.. 미련 없이 버려질 수도 있어.

 

혜숙: ..

 

준수: 그런데 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싶지가 않아.

 

혜숙: !!

 

준수: (..)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신이를 내 손으로 쫓아낼 순 없어.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여기까지야.

 

혜숙: ..

 

준수: 그래서 어쩌면.. 편 들어 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랑 싸울지도 몰라.

 

혜숙: 여보..

 

준수: (울상인 아내를 보며 피식 웃는다.)

 

 

  

 

 

 

 

 

 

 

 

 

 

#. 삼겹살집

 

 

 

 

자글자글 고기 굽는 맛있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우는 고깃집.

고기에서 피어 오르는 흰 연기가 콧속을 파고들며 시장기를 자극한다.

고기가 다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몇 번 뒤집어 보던 신은,

고기가 얼추 익은 것 같아 고기 한 점을 집어 상추에 싸려고 하는데..

왠지 모를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네 쌍의 눈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고기 먹는 걸 처음 본 건지, 왜 저렇게 쳐다보나 싶은 신.

그래서 무심하게 쌈을 싸서 입안에 집어 넣고 우걱우걱 씹어 삼킨다.

그런데 고기를 씹어 삼키는데도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자길 쳐다보았다.

똑바로 보는 사람도 있고 조금 흘끔거리며 보는 사람도 있고..

뭘 저렇게 보는지 고개를 갸웃하던 신은, 옆에 앉은 채경을 보게 되는데..

 

 

 

 

채경: (신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는다.)

 

: (사람들 한번 봤다가 채경에게 몸을 숙여 귓속말을 한다.) 내가 뭐 잘못했어?

 

채경: (신이 바싹 다가서자 움찔 한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게 느껴져서 더 당황한다.)

 

태호, 선재, 선혜, 박선생: (채경처럼 놀란 얼굴로 신과 채경을 쳐다본다.)

 

: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왜 저렇게 나만 보는 거야?

 

채경: (신에게서 몸을 떼어내며 또 어색하게 웃는다.)

 

: ???

 

태호: 대체 여긴 왜 낀 거예요? (참다 못해 계속해서 묻고 싶었던 걸 토해낸다.)

 

: (태호 보는)

 

태호: (뚱한 표정으로) 채경씨 송별회에 왜 그쪽이 앉아 있어요?

 

: 있으면 안 돼요?

 

태호: ??

 

: 학교 팀 송별회였으면 나도 자리 피해 줬을 건데, 그쪽도 낀 거잖아요.

 

태호: .. 그럼 나 땜에 왔다는 말이에요?

 

: 핑계가 됐죠~ ^^

 

태호: 난 해조리 사람이잖아요. 송별회에 올 자격이 있다구요..

 

: …………………………………그럼.. 내가 여기 와서 다들 그렇게 쳐다본 거예요?

 

사람들: ..

 

: (손가락으로 자길 가리키며) 나 땜에 송별회가 불편해져서?

 

태호;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자리 피해 주는 게 예의 아니에요?

 

: () 여기 인심이 왜 이렇게 박해요?

 

태호: ??

 

: 낯선 타지 땅에 아는 사람이라곤 여자친구 하나밖에 없는 사람한테, 그것도 밤에 혼자 찌그러져 있으라구요?

 

태호: (뭘 또 저렇게 표현하나 싶다.)

 

: (태호 외의 다른 사람들을 보며) .. 그렇게 불편해요?

 

선재, 선혜, 박선생: (그저 침만 삼키고)

 

: 한 마디도 안 하고 밥만 먹고 있는데 뭐가 불편해요?

 

채경: 그렇게 눈치 없이 구는 게 불편해요.

 

사람들: !!!!!!

 

: (채경 보는)

 

채경: (단호해진 얼굴로) 애초에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요.

 

: ??

 

채경: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들 편하게 나랑 인사하고 싶었을 텐데.. 실장님 때문에 다들 얼었잖아요.

 

: .. (넌 내 여자친구면서 내 편 안 들어주고 남들 다 보는 데서 타박이나 주냐? 섭섭해지는)

 

태호: (채경이 이렇게 나오자 좀 민망해져서) 채경씨.. 우린 그런 게 아니라..

 

채경: 아니에요. 제가 더 단호하게 말렸어야 했는데.. 워낙 고집이 세서요..

 

: 고집은 너도 만만치 않거든?

 

채경: 그래서, 내가 이겼어요?

 

: ??

 

채경: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기 내려와서 한번도 나한테 양보한 적 없거든요? 오늘도 마찬가지구요..

 

: (말이 안 나오는)

 

채경: 더 할 말 있어요?

 

: (~~ 분 삭히는)

 

선재: (피식) 채경씨 그러는 거 처음 보네요..

 

, 채경: (선재 보는) ???

 

선재: (이제는 덤덤해지는 얼굴로) 누구한테 그렇게 타박하고 정색하고 그러는 거 한번도 못 봤는데.. 이제 보니 채경씨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채경: ?? (당황하는)

 

: (피식 웃는) ‘맞아요~ 이 여자가 순해 보여도 여간내기가 아니에요~’

 

태호: (선재 어깨 살짝 밀치며) ~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채경씨가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이건 다 저 재수 없는 놈 때문이라구~!)

 

선재: 안 무서운데 넌 왜 그렇게 쫄았어?

 

태호: ??

 

선재: 아까부터 완전 얼어서 입 벌리고 있던 건 뭔데?

 

태호: 이 자식이~

 

박선생: (제일 연장자로서 이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자자~ 이러지들 말고 소주나 한 잔씩 합시다~

 

사람들: (박선생 보는)

 

박선생: 이왕 이렇게 모인 거 즐겁게 먹고 마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싸우지들 말고 잔들 들어요~ 들어~

 

사람들: (조금 망설이다가 술잔을 든다.)

 

박선생: 신선생..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애들하고 놀아 주느라..

 

채경: 아니에요..

 

박선생: ^^ 어디 가서든 지금처럼 밝고 예쁘게 살아.. 우리가 전부 응원할게.

 

채경: 고맙습니다..

 

박선생: 그럼 건배~~ ^^

 

사람들: (손을 더 내밀어 잔을 부딪힌다. 그리고는 원샷 하는 사람, 한 모금 마시고 인상 찡그리는 사람, 담담하게 소주를 삼키는 사람..)

 

: (술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채경: (입안에 있는 소주 꿀꺽 삼키고는) 소주.. 좀 그래요? 맥주 시켜 줄까요?

 

: (채경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며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온다.)

 

사람들: (술잔 내려놓다가 신 보는) ???

 

채경: 안 내키면 안 마셔도 돼요.

 

: (피식 웃고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린다.)

 

채경: (살짝 놀라는.. 소주 마셔도 되나 걱정되는..)

 

: (잔 내려놓으며) 나 이제 소주 마실 줄 알아.

 

채경: ???

 

: 너랑 같이 갔던 막창집에서 몇 번 소주 시켜서 마시다가 이제 좀 먹을 수 있게 됐어.

 

채경: (생각 많아지는)

 

: 근데.. (술잔 만지작거리며) 소주잔 보니까 혼자 마시던 때가 생각나서.. 잠시 감상 좀 했어.

 

채경: ..

 

사람들: (갑자기 또 애잔한 분위기로 반전되어 살짝 당황해 하는)

 

 

 

 

신과 채경의 야릇한(?) 분위기 때문에 테이블 주변에서는 자글자글 고기 굽는 소리만 요란하다.

북적대는 주변 테이블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회식 분위기 전혀 안 나는 고요한 테이블..

아무리 이 자리가 채경을 떠나 보내는 송별회라고는 하나, 초반부터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술도 좀 들어가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흥했을 때, 눈물이고 푸념이고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시작도 하기 전에 어깨가 추욱 처지는 멜로 드라마 분위기를 풍기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를 참기 어려운 태호는 생각에 잠긴 듯한 신과 채경을 눈치 보듯 보고 있는 사람들을 잠깐 보다가,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단 생각에 자기가 이 분위기를 쇄신해 봐야겠다 싶다. 그래서 말문을 열려고 하는데..

 

 

 

 

: 근데 이 자리.. 좋다~

 

태호: (입을 벙긋거리다 만다. 그리고 이내 이래 놓고 뭐가 좋다는 건지 신이 이해가 안 된다.)

 

사람들: (태호와 마찬가지로 신이 뱉은 말을 이해 못한다. 이게 뭐가 좋다는 거지?)

 

: (채경 보며) 너랑 나랑 애인으로 앉아 있는 거라서 진짜 좋다..

여기서 우린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라 남자친구 여자친구인 거잖아.

 

채경: ..

 

사람들: ???

 

선혜: (고개 갸웃하다가) 비밀.. 연애 하셨어요?

 

: ~ (시원스레 대답하는)

 

선혜: 사내 커플이셨구요?

 

: .. 그래서 회사에서 매일 보는데도 사람들 앞에서 애인이었던 적이 없어요.

 

태호: 연애하는 게 죄예요? 왜 숨기고 만나요? (채경과 연애하는 걸 숨겼다는 점이 맘에 안 든다.)

 

: 그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태호: 핑계 없는 무덤 없죠~

 

: () 뭔 뜻인지 알겠는데요.. 그래도 그땐 그게 최선인 줄 알았어요.

 

태호: 남들한테 떳떳하게 공개 못하는 연애가 뭐가 최선인데요?

 

: (바로 대꾸하려다가 잠시 멈칫 한다. 자기도 그 문제에 대해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마음이 갈팡질팡했으니까..) 그러게요.. 왜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태호: ??

 

: 공개하든 비밀로 하든 두 상황 모두 장단점이 너무 명확했어요.

그래서 선택을 해야 했는데, 늘 잡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우리 사이에서도..

(고개 살짝 내젓고) 아니, 내가 좀 불만이 많았죠. 비밀로 하는 것에 대해서..

 

태호: 그럼 남자답게 밀고 나가지 그랬어요~

 

: 변명하는 거 진짜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이렇게밖에 얘기 못하겠네요.

내 욕심대로 공개했다면 채경이가 다칠 수도 있었어요. 아니, 분명 다쳤을 거예요.

 

태호: 그래서 해 보지도 않고 포기부터 했습니까?

 

채경: 제가 원했어요. (끼어든다. 신이 수세에 몰리는 것 같아서..)

 

태호: 그게 진짜로 원하는 거였어요? (믿지 않는다.)

 

채경: ..

 

사람들: (심란한 표정. 왜 채경이 비밀로 하자고 했는지 이해 안 되는.. 저렇게 좋은 여자랑 연애하는 게 왜 숨겨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는..)

 

: (사람들 표정 보고 픽 웃는다.) 신채경~ 너 진짜 여기서 사랑 받으며 살았구나~

 

채경: ???

 

: 어디 가서든 사랑 받고 사랑을 주면서 잘 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그랬구나~

 

채경: (신이 하는 말에 왠지 마음이 아린다.)  

 

: (사람들 보며) 여러분은 저 진짜 맘에 안 들겠어요. 이렇게 착한 여자가 나 같은 나쁜 놈한테 코 꿰었다고..

 

사람들: (침묵으로서 긍정한다.)

 

 

 

 

동네에 도는 소문으로는, 하는 일도 변변히 없는 것 같고-며칠씩 일 나갈 생각도 안 하는 걸 보고 추측된 사항-,

미끄덩한 외모에 늘 입가에 걸고 있는 야릇한 미소, 또 건들거리는 폼이 딱 제비 같다는 게 아줌마들의 지론이었다.

나쁜 남자의 기운이 폴폴 풍기지만,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엄청난.. 딸이 있다면 절대 마주치게 해선 안 되는..

저런 놈한테 한번 빠지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다며, 채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런 걸 학교라고 모를 리 없었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가는 법이므로..

그래서 채경의 남자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었던 차에,

오늘 직접 만나 보니 외모와 분위기는 소문과 얼추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채경과의 만남을 비밀로 했다고 하질 않나, 채경을 화나게 하질 않나,

눈치 없이 낄 자리 못 낄 자리 얼굴 들이밀고 삐대질 않나..

채경이 아깝다 생각하는 건 너무 당연했다. 그래서 눈에 힘이 들어가고 만다.

 

 

 

 

: (피식) 그렇게 도둑놈처럼 보지 마세요~

 

사람들: (눈빛 못 바꾸는)

 

: 나 그렇게 이상한 놈 아니에요.

 

사람들: ..

 

: (도끼눈 하고 자길 보는 사람들 시선에 살짝 풀 죽은 척) ~ 여기선 진짜 나 별 볼일 없구나..

 

채경: (괜스레 미안해지는)

 

: .. 신뢰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날 믿어 달라는 게 무리겠죠?

 

태호: 채경씬 처음부터 사람들이 좋게 봤는데..

 

채경: 태호씨~

 

: (순간 멍해지는.. 태호한테 한방 먹은 것 같은..)

 

태호: (아무렇지 않게 잔 내밀며) 술이나 하죠~

 

: (결국 픽 웃는)

 

태호: (선재에게) 너도 한잔 해~

 

선재: (피식)

 

: (소주병을 들어 두 남자의 잔을 채워 준다. 그리고 소주병을 내려놓는데, 우연히 앞에 보이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이 간다.)

 

태호: (선재와 잔을 부딪히고 신을 본다. 아까 전에 반 정도 마시고 남긴 신의 잔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다가, 잔을 내밀어 건배를 하려고 하는데..)

 

: (텔레비전 보는)

 

태호: (인상 쓰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텔레비전이 눈에 들어와요?

 

: .. ..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태호가 잔을 내밀고 있는 걸 보게 된다.)

 

태호: 이번엔 비우죠~ 소주도 잘 못 마시는 고귀한 서울 남자님~

 

: (픽 웃으며 소주 잔을 들어 태호와 부딪힌다. 그리고 남은 소주를 입 속으로 털어 넣는다. 이번에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채경: (신을 물끄러미 본다. 아무래도 방금 전 뉴스가 신경 쓰이는 것 같은데.. 이따 물어봐야겠다 생각한다.)

 

: (채경의 시선을 느꼈는지) ?

 

채경: 아무것도 아니에요.

 

: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할 때가 제일 무서워. 뭔데?

 

채경: …………………………이따 얘기할게요.

 

: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뭔 얘기길래 여기서 못해?

 

태호: 그러게요~ 사람 차별해요?

 

채경: 그런 거 아니에요~

 

선재: 그럼 못 할 거 없잖아요~

 

채경; ‘이선생님까지..’ (남자 셋이 뚫어질 듯 자길 쳐다보자 당황스럽다.)

 

선혜: (쿡쿡 웃으며) 신선생님 당황하셨다.. 그럴 거면 차라리 얘기해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요~

 

채경: 윤선생님~

 

선혜: (계속 쿡쿡 웃는)

 

: 말해야겠다 너~ 뭔데?

 

채경: 진짜 별거 아니에요.

 

: 그러니까 말하라고~

 

채경: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입이 움찔거린다.)

 

사람들: (술을 마시며, 고기를 먹으며, 다들 자기 일을 하며 채경을 쳐다본다.)

 

채경: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게 불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아까.. 뉴스 말이에요..

 

: ???

 

사람들: ???

 

채경: 해주건설 인수 안 하겠다는 뉴스요..

 

: .. 그게 왜?

 

채경: 신경 쓰는 거 같아서..

 

: ..

 

사람들: ??? (여전히 못 알아듣고 있는.. 뉴스를 못 본 사람들은 채경의 말 자체를 이해 못하고, 뉴스를 들은 선재는 제일그룹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까지만 알아 들은 상태다.)

 

: 티 났어?

 

채경: ………..

 

: , 아직 감 안 떨어졌다~ 내 비서일 때도 눈치 하난 빠르더니..

 

사람들: (채경이 신의 비서였다는 새로운 사실에 다들 조금씩 움찔하는.. 그렇담, 실장과 여비서의 연애? 뭐 그렇다면 비밀 연애를 했다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그런 일련의 생각들이 매우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간다.)

 

: () 다른 건 다 눈치 꽝이면서 일할 땐 어찌나 빠릿빠릿한지.. 솔직히 너 없어지고 업무적으로도 손해가 막심했다~

 

채경: (이래저래 미안한)

 

: 어쨌든, 나에 대해 안테나를 맞추고 있었단 점에선 칭찬해 줄게. (하며 채경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채경: (무지 쑥스럽다.)

 

사람들: (얼어 버린다. 저런 걸 대놓고 할 수 있다니.. 서울 사람들은 저렇게 낯간지러운 행동도 하나 보다. 자기들은 죽었다 깨놔도 못할 짓인데.. 눈 버린 것 같다.)

 

채경: ………………..그래서.. 아까 뉴스는 뭐예요?

 

: ..

 

채경: 회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죠?

 

: ..

 

채경: 진짜 아니죠?

 

: . 아니야. 솔직히 여기 와서 유일하게 걱정되는 게 저 문제였는데, 다행히 포기하셨네. 그래서 한시름 놨어.

만약에 인수 사업에 뛰어드셨으면, 나랑 싸웠을 게 뻔한데.. 그럼 회사에 없었던 놈이 뭔 지적질이냐 하셨겠지.

 

채경: ..

 

: (피식) 너 만나는 거 하늘도 돕나 보다~ ^^

 

채경: (덩달아 빙그레 웃는)

 

 

 

 

그런데 이때,

 

 

 

 

선재: 이준수 회장 아들이에요?

 

, 채경: (멈칫)

 

사람들: ???

 

선재: …………………………………………아버지가.. 제일그룹 이준수 회장이에요?

 

: ……………………….... ^^

 

사람들: !!!!!!!!!!!!!!!!!!!!!!!!!

 

 

 

 

 

 

 

 

 

#. 사흘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 와중에도 채경의 망설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만 포기해도 될 것 같은데, 이 미련 많은 여자아이는 미련을 못 버리고 이 모양이다.

 

 

채경이 해조리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기로 한 이후,

신과 채경은 채경의 거취를 놓고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연히 신은 채경이 살 곳을 마련하기 전까지 자기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쪽이었고,

채경은 그럴 수 없다며 자기가 가진 돈에서 방을 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둘의 대립은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되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신은 채경을 당분간이라도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꺾지 않았다.

채경도 보통 고집이 아닌데, 도저히 신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어영부영 신이 운전하는 대로 끌려오게 됐고, 결국 이 자리까지 오고 말았다.

 

이제 십여 미터만 가면 신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에 다다를 예정이었다.

이 명확한 현실 앞에서도 채경은 계속 마음 속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이게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딱히 대책이 있진 않았지만,

이대로 흘러가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맘만 그렇다.

발은 쭉 신을 따라 걷고 있다. 마음은 혼란스러운데, 발은 앞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 멈춰 섰고, 채경은 문이 열리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 들어가자~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신이 천국으로 초대하는 천사마냥 해맑게 말한다.

이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젠 어쩔 수 없단 생각에 채경이 그 뒤를 따른다.

 

 

넓디 넓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신이 이미 올라선 거실로 올라서려는 순간..

 

 

 

 

엄마..”

 

 

 

 

신이, 놀란 듯, 당황한 듯, 짧게 이렇게 말한다.

 

 

이에, 3년 여 만에 마주 보게 된 두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힌다.

 

 

 

 

혜숙: ..

 

 

채경: ..

 

 

: ‘..’

 

 

 

 

 


출처 : 시나리오 창작방
글쓴이 : 쏭기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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