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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드라마

[스크랩] <상상소설>사랑은 이기적이다 #12

 

 

 

신이랑 채경이가 먼 길을 돌아 서로의 입술을 마주하는 순간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워낙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어서 전체적인 맥락을 잘 짚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상황과 그런 장면들이 이 두 아이를 상대로 떠올라 버렸고,

그리고 그 모습을 되는 대로 그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돌아보기는 겁나요. ^^;;

 

 

.. 이번 편부터는 3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두 아이가 현재를 마주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과거 씬 대신 현재의 모습이 이어서 그려질 예정입니다. 읽어 보면 알 내용을 설명하고 있네요.. ;;

제가 말이 길다는 건, 쓸데 없는 잔소리가 많다는 건 다들 아실 테니 변명 더 안 할게요.

 

 

 

아직 채경이는 갈팡질팡 하고 있구요, 신이는 갈팡질팡 하는 채경이를 이해하고, 그래서 이끌어 가려고 애쓰고 있어요.

조금은 엇박자를 치게 되더라도, 두 아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쭉 함께할 거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주세요.

그리고, 지금껏 신나게 달려오느라 잊고 있었는데, 이거 단편이었잖아요. 그래서 정말 만나자마자 헤어지게 될 것 같아요.

물론 요즘 드라마의 대세인 열린 결말 같은 건 절대 아닐 테니, 확실하게 닫힌 결말, 해피 엔딩은 장담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 고생 시켜놓고, 너무 빨리 끝난다고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 기다리고 있는 애들이 줄줄이 사탕이네요. --;;

 

 

 

오늘 회사에서 틈틈이 수정한 거라 오타 수정이 확실히 안 됐을 수도 있어요.

다시 한번 더 보고 올려야 하는데, 나흘간 혹사당한 몸이 그걸 거부하네요..

혹 이상한 문장이나 오타가 나오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구요..

혼자 갖고 있다가 더 늦게 오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변명을 이번에도 받아 주세요.

 

 

그럼, 저는 이번 주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솔직히 다음 편부턴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상태라,

다음 편을 언제 갖고 올 수 있겠다.. 기약도 못 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당분간 발등에 떨어진 원고를 써야 해서..

(매번 같은 변명이지만 또 하고 있네요.. --;;)

 

 

내일부턴 날이 다시 좀 풀린다고 하는데요, 성큼 다가온 봄, 나들이도 많이들 하시고, 좋은 경치 구경도 많이 하고 그러세요.

(이번에 옮긴 사무실은 청계천 바로 옆이라 창 밖 풍경이 정말 근사해요. 점심 먹고 산책하는 재미도 쏠쏠하구요..

명동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마감 끝나면 봄맞이 쇼핑을 꿈꾸고 있어요. 이사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좋은 것도 많네요. ^^)

 

 

다음 주에 최대한 다음 편 들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거구요..

요즘 너무너무 댓글 많이 챙겨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 가득 차고도 넘쳐요.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단비 같은 기쁨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 드리구요..

저는 마감 전쟁 잘 치르고 더 행복해 할 신이랑 채경이 데리고 올게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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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났네?”

 

 

 

부엌으로 들어서는 혜옥의 아침 인사에 돌아보는 채경.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그냥.. 눈 떠 보니까 이 시간이네..”

 

좀 더 주무시지..”

 

그럴라고 했는데 계속 부엌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나서..”

 

..! 저 때문에 깨신 거예요?”

 

.. 솔직히 너 때문에 못 잤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혜옥의 마지막 말에는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어서, 채경은 입을 다물고 만다.

 

그리고 애꿎은 가스레인지 위의 뚝배기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새벽, 백열등을 밝힌 부엌은 그리 밝지도 않고,

두 여자를 감싸는 서늘한 새벽 공기는 마음에 담은 이야기만큼이나 불편하다.

 

 

혜옥은 묻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어제 그렇게 황당한 손님맞이를 하고 홀로 방에 앉았는데,

작은 툇마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작은 방에 있을 두 남자와 여자가 무척 궁금했다.

젊은 남녀가 한방에 있어서 드는 원초적인 상상과 호기심이 아니라, 그저 두 사람이 궁금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채경은, 50년 넘게 산 혜옥이 보기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동향인 타지인 그런 거 다 떠나서, 그냥 괜찮은 사람이었고 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닥 평탄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 같은, 남모를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채경이 안쓰러웠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면서 남에 대한 의존보단 배타심을 더 키워온 혜옥이 선뜻 손 내밀어 주고 싶을 만큼,

비에 흠뻑 젖어 갈 곳 잃은 강아지처럼 그녀의 식당으로 찾아 들어온 채경은 선하고 예쁜 눈을 하고 있었다.

처음 채경을 거뒀을 땐 타지인을 어떻게 믿냐며 잘 때도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었었다.

하지만 혜옥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채경은 처음 보았을 때처럼 선하고 예쁜 눈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그래서, 혼자 적적하게 살아가던 혜옥에게 단비처럼 고맙고 즐거운 가족이 되었다.

2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혼자가 된 두 여자는 그렇게 친구 같은 가족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보다 채경이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이 고운 아이가 여자로서 꽃다운 청춘을 꽃피우기를 바랬다.

그래서 식당을 기웃거리는 태호를 채경이 짝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고, 해조리 최고의 신랑감 선재를 점 찍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낯선 남자가 채경과 함께 찾아왔다.

 

필시 그 남자는 채경의 그 놈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많았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혜옥, 부엌 입구 문턱에 쪼그리고 앉으며..

 

 

 

어젠 어떻게 된 거야?”

 

“..”

 

저 놈은 어디서 튀어 나온 거야?”

 

“..”

 

지 입으로 니 애인이라고 하던데.. 저 놈이 그 놈이야?”

 

“..”

 

너 계속 울상 만들던 그 놈이냐고~”

 

“……………..내가 울리고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젠 그만 울리려고?”

 

??”

 

저 놈 따라갈 거 아냐?”

 

아줌마~”

 

? 내가 틀린 말 했어?”

 

“..”

 

잠깐 본 거지만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던데.. 너 또 도망갈 자신은 있어?”

 

“..”

 

어차피 도망가서도 그런 얼굴로 살 거면 저 놈 따라가서 잠깐잠깐이라도 웃으면서 살아.

울리고 도망친 것 땜에 맘껏 웃으면서 살 수도 없잖아, 니 성격에.. 근데 뭘 망설여?”

 

“..”

 

슬슬 난 너 보낼 준비를 해야 되나?”

 

아줌마..”

 

그렇게 부를 거 없어. 걱정은 되지만, 난 왠지 마음이 놓여. 이제 진짜 니 자리 찾아가는 것 같아서 안심도 되고..

너랑 사는 동안 정말 좋았지만, 너한테 이게 최선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제야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

 

니가 뭐 때문에 망설이고 고민하는진 모르겠지만 마음에 담은 사람이 손 내밀면 잡아 주는 게 당연한 거야.

세상에 마음 맞는 사람이랑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 귀한 기회를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

 

고리타분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보다 20년 넘게 더 산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까 흘려 듣지 마.”

 

“..”

 

근데 저 놈.. 믿음이 안 간다~”

 

“???”

 

뭐 하다가 이제사 온 거야? 올려면 빨리 오든가.. 저래 갖고 너 맡기겠냐~ 우리 귀한 딸래미 저딴 놈한테 줘도 되나 몰라~”

 

저 어디 안 가요..”

 

“..”

 

안 갈 거예요.”

 

“………………………그럴 수 있겠냐? 저 놈 작정하고 온 것 같은데..”

 

그래도.. 안 가요..”

 

누구 고집이 센가 대결하겠네~”

 

“..”

 

 

 

 

 

 

 

 

 

 

 

 

 

 

 

 

 

 

 

 

 

 

 

 

 

 

 

 

 

 

 

 

 

 

 

 

 

 

 

 

 

사랑은 이기적이다 #12

 

 

 

 

 

 

 

 

 

혜옥의 방에 차려진 자그마한 밥상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웃음이 나는 신.

 

이렇게 작고 아담한 밥상은 난생 처음 보는 데다, 밥상 자체도 드라마에서나 보던 낡고 오래된 것이라서,

셋이 둘러앉으면 서로의 무릎이 닿을 만큼 작은 밥상머리에 앉아 있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는 신이다.

 

 

 

 

혜옥: (신이 웃는 것 같자) 뭐가 그렇게 재밌수?

 

: ??

 

혜옥: 뭔가 재미난 게 있나 본데.. 간밤에 꿈을 잘 꿨나? 하루 새 얼굴이 확~ 폈네~

 

: 그래 보여요? 난 어제랑 똑같은 것 같은데..

 

혜옥: (고개 저으며) 얼마나 좋으면 밥상머리에서 웃음이 실실 새도 모르남?

 

: 내가 그래요?

 

혜옥: 안 그럼 밥 숟갈 들 생각은 안 하고 왜 밥상머리에서 고사 지내는 사람마냥 구경만 하고 있수?

 

: 그건.. 이렇게 작은 밥상은 처음 받아봐서요..

 

혜옥: ???

 

채경: (당황스러워서 흠흠.. 헛기침을 한다.)

 

 

 

 

채경은 신이 지금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그랬다.

아줌마가 신의 신분을 알게 되면 얼마나 놀랄지 짐작이 가기 때문에, 최대한 모르게 하고 싶었다.

, 이 비밀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오늘 아침부터 들키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신이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대한 감상을 끝내고 밥을 먹어 줬으면 좋겠다.  

 

 

 

 

: (채경의 기침소리에 채경을 힐끔 봤다가 이내) 진짜로 이런 밥상에 밥 먹는 사람도 있네요~

 

혜옥: (신 보는)

 

채경: (눈 감는)

 

: (전혀 나쁜 뜻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숟가락을 드는 손길도, 밥을 뜨는 손길도 가볍기만 하다.)

 

혜옥: (신을 물끄러미 본다. 아무리 봐도 곱게 자란 도련님 같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무지렁이 시골 아낙인 자신의 눈에도 때깔 좋고 값비싸 보인다. 그리고 그걸 입은 남자의 자태는, 보통 집안에서 자란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곳이, 이런 밥상이 처음이라 말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이 남자가 보통은 아닐 거란 짐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 조금쯤 상상이 되기도 한다.)

 

: (밥 꿀꺽 삼키고) 여기서 시장이 가깝나요?

 

혜옥, 채경: (뜬금 없는 신의 질문에) ???

 

: 뭐 살 게 있는데..

 

혜옥: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 .. 이 집엔 없을 것 같아서요..

 

혜옥: 뭐가 필요한데?

 

: 제가 입을 옷이요..

 

채경: (불쑥) 옷은 왜요?

 

: 계속 이거만 입고 있을 수 없잖아. 갈아 입을 옷이 있어야지.

 

채경: !!! 안 올라갈 거예요?

 

: ..

 

채경: ??!! 안 올라간다구요?

 

: () 그럼 내가 혼자 올라가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밥을 계속 먹는다.)

 

채경: (당황한 얼굴로 신 보는)

 

혜옥: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치만 보는)

 

 

 

 

잠시 후..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온 신이 좁은 마당 위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정말로 서울 안 갈 거예요?”

 

 

 

 

: (돌아보는)

 

채경: 회사는 어쩌고 여기 있겠다는 거예요?

 

: 회사가 걱정돼?

 

채경: ..

 

: 그렇게 걱정이면 니가 같이 가면 되잖아.

 

채경: ???

 

: 어제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모르겠어? 나 너 혼자 두고 안 가~ 같이 가려고 온 거야.

 

채경: 실장님..

 

: 니가 결심이 설 때까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기다릴게. 그러니까 천천히 마음의 준비해도 돼.

 

채경: 저 안 가요.

 

: (채경 보는)

 

채경: 못 가요.

 

: 못 가는 이유가 우리 부모님 때문이야?

 

채경: ..

 

: 그런 거면 진짜 잘못 생각하는 거야. 이젠 내가 알잖아. 내가 중간에서 다 해결할 거야. 다신 너 힘들게 안 해.

 

채경: ‘그게 아니에요.. 실장님 부모님 때문에 못 가는 게 아니에요.

.. 실장님한테.. 정말 잘못한 일이 있어요. 그건.. 아무도 용서 못해요.

내가 용서가 안 돼요. 그래서 나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 절대..’

 

 

 

 

 

 

 

 

 

#. 바닷가 식당

 

 

 

 

저 놈 계속 저렇게 둘 거야?”

 

 

 

귓속말 하듯이 바짝 다가서서 조용히 내뱉는 혜옥의 말에 채경도 한숨부터 나온다.

그리고 자연스레 식당 제일 안쪽 탁자에 앉아 있는 신에게 시선이 옮겨가는 채경.

 

채경이 쳐다보길 기다렸다는 듯, 채경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이는 신.

아침부터 내내 식당에 온 이후로 저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아서 채경 바라기 중이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그저 턱을 괸 채, 채경이 움직이는 대로 시선만 따라 다니고 있는 신.

 

그런 신을 보고 식당에 온 모든 손님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워낙 외지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벽촌이라는 점에서 이방인의 등장이 시선을 끈 것도 있겠거니와,

너무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여기선 잘 볼 수 없는 양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것부터 남달랐다.

 

게다가 누가 봐도 채경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그의 시선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개중에는 채경이 처음 해조리에 왔을 때를 떠올리며 저 남자가 채경의 배를 불리게 한 그 놈인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어떤 눈 먼 놈이 채경의 매력에 풍덩 빠져서 바보처럼 저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것도 아니면 속 편하게 3년 만에 처음으로 채경이 아는 사람이 놀러 왔다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듯 신에 대한 평가는 모두 다 달랐지만, 어쨌든 결론은 낯선 남자가 채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덴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작디 작은 마을에, 스타와도 같은 채경에게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리고 새벽에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던 태호가 부두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들은 소식도 그것이었다.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이 있었지만, 태호는 내색 하지 않고 후작업을 끝내곤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태호 왔냐?”

 

 

 

식당에 들어서자 혜옥이 무뚝뚝한 말투에 반가움을 담아 인사를 한다.

혜옥의 인사에 무의식적으로 답인사를 하고 식당 안을 빠르게 훑는 태호.

그리고 이내 식당 제일 안쪽 자리에 앉아 그 옆 자리를 치우고 있는 채경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담양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고 보니 기분이 참.. 거지 같다.

 

 

움직이는 채경을 따라 움직이는 남자의 시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채경을 향해 있었다.

저렇게 쳐다보면 민망할 법도 한데, 남자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건지 채경은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쳐다보고 있는 태호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채경이 잔반이 남은 그릇들을 챙겨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남자의 시선도 덩달아 움직인다.

턱을 괸 채 몸은 움직이지 않고 시선만 따라가다 보니 거의 목이 빠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도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지 채경을 보며 즐거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 보고 더는 참지 못한 태호가 성큼성큼 걸어가 남자의 맞은편 의자에 소리 나게 앉았다.

 

이에, 내내 채경에게 꽂혀 있던 남자의 시선이 태호에게로 움직인다.

 

 

맞은편에 앉은 태호를 보고 아주 잠시 남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원위치로 돌아온다.

 

하지만 무표정한 눈빛에도 왜 댁이 거기에 앉는 거냐는 질문은 담겨 있었다.

 

남자의 눈빛을 읽어내지 못할 만큼 눈치 없는 태호는 아니었으나, 거기에 대해선 대답해 주고 싶지 않아,

 

 

 

 

태호: 또 보네요..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 또 보는구나 하는 뉘앙스)

 

: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가지만 담담하게) 그러네요..

 

 

 

결코 호감이 담겨 있지 않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말보단 눈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에게로,

 

 

태호야~ 밥 먹을 거냐?”

 

 

하고 아무렇지 않게 혜옥이 묻는다.

 

 

 

 

태호: (시선은 여전히 신을 바라본 채) ~ 늘 먹던 걸로 주세요.

 

: ..

 

혜옥: 채경아~ 들었냐? 태호가 늘 먹던 걸로 달랜다~

 

채경: (설거지를 하려고 하다가 혜옥의 말에 살짝 고개를 내민다.) 왔어요?

 

태호: (그제서야 시선 돌려 채경 보며) ..

 

채경: 오늘 출항 하는 날이었나 봐요..

 

태호: .. 그래서 점심 장사 다 끝나고 왔어요. 미안해요. 번거롭게 해서..

 

채경: 아니에요.. 금방 차려 드릴게요. (말하면서 슬쩍 신을 본다. 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신의 시선은 지금 태호를 향한 채 움직일 줄 모른다. 굳어 보이는 그의 어깨가 신경 쓰이지만, 일단은 뒤로 물러나기로 한다. 당장은 신과 안 부딪히게 주방에 있는 게 속 편할 것 같아 비겁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음식 준비에 들어간다.)

 

태호: (채경이 주방으로 물러가자 신을 본다.)

 

: (좀 전보다 동글동글해진 표정으로) 설마.. 여기서 밥 먹을 건 아니죠?

 

태호: 왜요? 안 됩니까?

 

: 안 되죠~ 여긴 엄연히 남의 자리인데..

 

태호: 앞자리 비어 있는 것 같은데..

 

: 그 자리 임자 있어요.

 

태호: (신 보는)  

 

: 왜 그렇게 봐요?

 

태호: ..

 

: () 그 눈빛은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냐.. 뭐 그런 것 같은데..

 

태호: 눈치가 아주 없진 않네요~

 

: () 어디 가서 눈치 없단 얘긴 안 들어요~ 근데 그쪽은 눈치 없단 얘기 많이 듣죠?

 

태호: ???

 

: 누가 봐도 굴러온 돌은 내가 아니라 그쪽인데.. 남의 자리에서 주인 행세하는 거.. 눈치 없고 뻔뻔한 짓 아닌가?

 

태호: ??!!

 

: 그러니까 임자 있는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지 마. 거기 니 자리 아냐.

 

태호: ..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 내가 왜? 싸울 필요도 없는 일인데 내가 왜 시빌 걸어?  

 

태호: ??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얄미워 죽겠다. 이런 놈은 사흘 밤낮으로 패 줘야 되는데..!!)

 

: 넌 절대 박힌 돌 못 빼. 아무리 굴러다녀도 나 못 빼.

 

태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니가 박힌 돌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데?

 

: 신채경 가슴에 박혀 있는 돌은 예나 지금이나 나밖에 없다는 게 뻔하니까.. 내가 믿는 구석이라고 해 봤자 거기밖에 더 있겠어?

 

태호: (얄밉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이 놈이 조금은 부럽다는 미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 내가 그쪽보다 잘 나서 기고만장한 것 같아? (도리도리) 아니~ 난 그냥 저 녀석을 믿고 있을 뿐이야.

 

태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겠네..

 

: () 내가 아는 신채경은 자기 발등은 찍을지 몰라도 내 발등은 안 찍어.

 

태호: ..

 

: , 한 번은 실수했지만, 두 번 실수는 안 하게 하려고.. 그래야 쟤도 좀 웃고 살지..

 

태호: (신이 한 말에서, 한 번의 실수가, 이제는 웃고 살게 하겠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아 할 말을 못 찾겠다. 이 남자는 맘에 안 들지만, 채경이 웃고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같으니까..)

 

: ..

 

태호: ..

 

: 그쪽 심정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은 포기하는 게 상책이에요.

 

태호: (신 보는)

 

: 그쪽이 아무리 그렇게 노려 봐도, 그 대단해 보이는 주먹으로 줘 팬다 해도 난 끄떡도 안 해요.

 

태호: 난 둘째치고 채경씨가 불편해 하는 건 어떡할 거예요? 내가 보기엔 그쪽이 물러나 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 그거 쟤 진심 아니에요.

 

태호: 그렇게 생각해요?

 

: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게 맞아요. 쟤는 자기 진심을 표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태호: 본인 편할 대로 생각하는 거 아니구요?

 

: 아니에요. 채경이가 저러는 건 우리 사이에 사정이 있어서지, 절대 진심으로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저 녀석은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해야 돼요. 원래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 녀석이 본심을 말할 때까지 계속 찔러 보려구요.. 더는 못 버틸 때까지 할 생각이에요.

 

태호: ..

 

: ^^

 

태호: (이 남자.. 이렇게 능글맞은 느낌이었나? 새삼스럽다. 담양에서 봤을 땐 너무 날카롭고 차가워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았는데..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오늘은 아주 부드러워서 녹아 버릴 것 같다. 뱃놈인 그는 평생 가도 이런 표정은 못 지을 것 같은데.. 손발이 오글거린다.)

 

: 근데.. 정말 안 일어날 거예요?

 

태호: ..

 

: 남 밥 먹는 거 쳐다보는 취미는 없는데..

 

태호: ..

 

: 그만 일어나죠~

 

태호: 왜 지금에야 나타났습니까?

 

: ..

 

태호: 왜 하필..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 ……………………………………….(피식.. 그냥 웃는다.)

 

 

 

 

 

 

 

이때 채경이 음식 쟁반을 들고 둘에게 다가온다.

 

이에, 동시에 고개를 들어 채경을 보는 두 남자.

 

 

 

 

채경: (정말로 두 사람이 앉은 탁자에 상을 차려야 하나 고민한다.)

 

: (채경이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채경을 쳐다보는 데 열중한다.)

 

태호: (채경을 곤란하게 할 수 없어서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옮긴다.)

 

채경: (태호 뒤를 따르며 움직인다.)

 

: (채경의 뒤통수에 대고) 이제 좀 한가해진 것 같은데 나랑 산책 안 나갈래?

 

채경: (신의 말 무시하고 상 차리는 데 몰두한다.)

 

: 저기 등대 보이는데.. 우리 저기 가 보자~

 

채경: (묵묵히 그릇만 옮기는)

 

태호: (뻘쭘해서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 (혼자 천진난만하게) 우리 오랜 만에 광합성 하러 가자~

 

채경: ..

 

: 신채경~ 햇빛이랑 원수 진 거 아니지?

 

채경: ..

 

: 얼굴 까매질까 봐 햇빛 피해 다니는 거 아니지?

 

채경: ..

 

 

 

 

 

 

 

 

 

#. 제일그룹

 

 

 

 

팀장님~”

 

현수: (돌아보는) ???

 

이사님 찾으시는데..”

 

현수: 누가?

 

마케팅팀의 차승준 차장님께서요..”

 

현수: 결재 건 땜에?

 

..”

 

현수: (잠시 생각하다가) 이사님 출장 중이시니까 결재는 보류해야 한다고 해.

 

급하다고 하시는데.. 이사님이랑 비상 연락망 가동 안 되냐고 물어보시네요.”

 

현수: 비상 연락망 안 돼. 결재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현수: (부하직원이 일을 처리하는 걸 잠시 보다가, 신의 방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신이 어제 그렇게 회사를 빠져 나가고 20시간이 흘렀다.

하루도 안 지난 사이에 신을 찾는 사람만 스무 명이 넘었고,

신의 연락만 기다린다는 메모가 포스트 잇으로 도배될 지경이다.

 

언제 오시겠다는 기약도 없이 떠난 거라,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 현수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 막막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야말로 오랜 기다림의 종지부를 찍고, 이사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쟁취하길 바랬다.

 

 

 

 

팀장님..”

 

현수: (상념에서 빠져 나와) .. ?

 

회장실에서 찾으십니다.”

 

현수: ..

 

 

 

 

 

 

 

 

 

#. 등대

 

 

 

 

머리카락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꽤나 상쾌하다.

바닷가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짠내도 오늘만큼은 맡을 만했다.

아마도 그건.. 이곳에 함께 있어 주는 이가 있어서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경치 보면서 살았구나~”

 

 

 

바람결에 신의 목소리가 채경에게 날아온다.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신과 서 있던 채경이, 신의 목소리에 그를 쳐다본다.

그런데 그 순간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에 채경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얼굴을 간지럽히며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대충 수습하고 나니,

이미 신은 등대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턱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다.

 

그 자리는.. 채경이 늘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 향해 광합성을 하며 앉는 바위였다.

가르쳐 준 적도 없고, 함께 와 본 적은 더더욱 없는 이곳에서, 하고 많은 바위 중에

어떻게 하필 저 바위를 골라 앉을 수 있는지.. 그 모르게 조금 놀라는 채경이다.

 

 

 

 

: (하늘 보며) 오늘 날씨 진짜 좋다~ 그치?

 

채경: ..

 

: (채경 보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

 

채경: ..

 

: 하루 웬종일 서서 일하던데, 여기 앉아서 좀 쉬어~

 

채경: ..

 

 

 

 

, 고집 피우는 채경을 보다 못해서 속으로 한숨 쉰다.

그리곤 무릎을 짚고 일어나선 성큼성큼 채경에게 다가간다.

 

신을 외면하느라 바다를 보고 있던 채경이 신이 다가섰다는 걸 알아채고 뒤로 물러나기도 전, 신이 더 빨랐다.

 

다짜고짜 채경의 손목을 잡더니, 채경이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반항하기도 전에 얼른 좀 전에 있던 자리로 채경을 데려가 강제로 앉혀 버리는 신.

 

당황한 채경이 일어나려고 하자 채경의 어깨에 양손을 지그시 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막는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신과 너무 가까이 마주하게 된 채경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게 돼 버렸다.

 

신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고 물러서지 않고 있어서, 채경의 코앞에 그의 허리벨트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들자니 신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칠 것 같고(그것도 거의 코앞에서),

아래로 내리자니 신의 바지와 허리 부분이 눈에 가득 담겨와 좀 민망했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 도망갈 수는 더더욱 없고..

사정거리 밖에서 안전하게 있으려고 했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얌전히 앉아서 광합성 할 거지?”

 

 

 

머리 위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오랜 만에 햇빛한테 같이 인사하자~ 혼자 미친 놈처럼 혼잣말 하는 거, 실은 되게 쪽팔렸단 말야..”

 

 

 

그동안 혼자서도 햇빛이랑 인사하고 살았어요?

난 또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랑 햇빛이랑 다 잊고 살까 봐 걱정했는데..

 

 

 

신채경~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요.. 당신 말만.. 들려요..

 

지금 내 귀엔 당신 목소리만 들려요. 당신 숨소리만 들려요.

 

당신의 존재만 느껴져요. .. 당신만 느끼고 있어요..

 

 

 

신채경~~”

 

 

“……………………....”

 

 

신채경~”

 

 

“………….. 듣고 있어요..”

 

 

 

 

채경의 대꾸에 빙긋이 웃는 신. 채경의 메아리가, 채경의 반응이 기쁘다.

 

헤어진 3년 동안 신채경이라는 이름은 부르는 순간 가슴이 텅 비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부르는 순간 행복해지는 이름이 되었다.

 

대답 없는 이름이 주는 공허함 같은 거..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가슴을 꽉 차오르는 따뜻함에, 신은 빙구 같은 웃음을 지으며 채경에게서 물러난다.

 

 

 

 

채경: (신이 손을 떼고 물러나자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 (채경 옆 적당한 바위턱에 걸터앉는다.)

 

채경: (일부러 신 쪽으론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바다 쪽을 본다.)

 

: (채경 흘끔 봤다가 역시나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채경: ..

 

: ..

 

채경: ..

 

: 저기 보이는 건 뭐야?

 

채경: ???

 

: 저 수평선 너머에서 움직이는 거.. 뭐야?

 

채경: 배요..

 

: (채경이 대답을 안 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대꾸해 주자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임에도 흥미를 보이는 척한다.) 무슨 배?

 

채경: 고기잡이 나갔다가 항구로 돌아오는 배요..

 

: 배가 저렇게 작아?

 

채경: 그럼 원양어선처럼 클 줄 알았어요?

 

: 고깃배면 다 큰 거 아냐?

 

채경: 작은 고깃배기 더 많아요.

 

: 저렇게 작은 배 타고 나갔다가 태풍이라도 만나면 어떡해?

 

채경: 운 좋으면 살고 운 나쁘면 수신(水神)이 데려 가겠죠..

 

: ??

 

채경: 잘은 모르겠는데.. 여기 사람들은 인명(人命)은 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바다에 목숨 맡기고 사는 인생들인데, 물이 부르면 가야 하는 거라고..

 

: ..

 

채경: 혜옥이 아주머니도 그렇게 아저씰 보내셨대요.. 그리고 언젠가 본인도 그렇게 갈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구요..

 

: 죽음에 너무 초연한 거 아냐?

 

채경: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사니까.. 결국엔 자기 합리화인 거죠.

 

: ..

 

채경: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 (채경 보는)

 

채경: 정말 죽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고 잠이 오고.. 그러잖아요.

 

: ..

 

채경: 그래서 밥 먹고 자고 눈 뜨고.. 또 밥 먹고 자고 눈 뜨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가 있고..

 

: ……………………………..니 얘기야?

 

채경: 실장님 얘기.. 이기도 할 걸요?

 

: ..

 

채경: 견디지 못했다면.. 죽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우리 이렇게 못 만났을 거잖아요.

 

: 살아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털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채경: ..

 

: 문드러진 가슴이.. 아물지 못한 상처가.. 절대 덮을 수 없는 절망이..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일 수도 있잖아.

 

채경: ..

 

: 괜찮아 보인다고 정말 괜찮은 거 아닐 거잖아.

 

채경: 그거.. 내 얘기예요?

 

: ..

 

채경: (신 보며) 괜찮아 보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 니가.. 살아 있어 준 게 고마워..

 

채경: ???

 

: 죽을 것 같은 시간들 버티고.. 그렇게 흘려 보내고 살아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채경: ..

 

: 허튼 생각 안 하고 여전히 신채경으로 남아 줘서 고마워.

 

채경: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 ..

 

채경: , 고맙다는 말 듣는 거 좀 그렇거든요?

 

: ? 들을 자격 충분한데..

 

채경: 사람 놀려요? 죄 짓고 떠난 사람이 사과도 안 한다고 지금 시위하는 거예요 뭐예요?

 

: 진짜 고마워서 그러는 건데?

 

채경: (안 믿는.. 신이 또 장난 친다고 생각하는..)

 

: 나 정말 너한테 고마워.

 

채경: , 진짜!!

 

: (채경 진지하게 보는)

 

채경: (신의 진중한 시선에 흥분했던 마음 가라앉히고 숨 고르는)

 

: 혼자 견디게 해서 미안해.

 

채경: (조금 화나는) .. 감사 인사에 이어 이번엔 사과예요? 사람을 어디까지 미안하게 해야 직성이 풀ㄹ..

 

: 우리 아이..

 

채경: ??!!!!

 

: 우리 아이.. 놓쳤다며..

 

채경: !!!!!!!!!!!!!!!!

 

 

 

  


출처 : 시나리오 창작방
글쓴이 : 쏭기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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