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편 빨리 갖고 오겠다는 말.. 빈 말 아니었죠? 하루만에 다음 글 갖고 온 쏭기자에게 칭찬 많이 해 주시길.. ^^ 사건 사고의 연속에서, 그래도 두 아이가 행복한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요.. 지난 편 읽으면서 많이들 행복하다 해 주셔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글이 약간 두서가 없었는데요.. 오랜 만에 갖고 온 글이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보다 더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주신 것 같아 감사해요.. ^^;; 어쩌다 보니 매편 글 길이가 30장을 넘어가고 있는데요.. 이젠 30장이 안 되면 안 된다는 생각마저 하게 돼요. 그래서 일부러 글을 늘리려는 꼼수를 부리기도 하는데, 결국 막판에 가서는 어쩔 수 없이 30을 넘어가더라구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오래 기다리게 한 만큼 긴 글 갖고 와서 괜찮다 하신 대감님들께, 미한 마음을 전합니다.. 42편을 올리고 마감에,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아마 12월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라,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을 시간은 더 없어지지 않을까.. 미리부터 걱정이구요.. 그래서 그 전에 글을 빨리 써서 완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요. 처음 써 보는 사극이고, 그 어떤 남주보다 매력적인 이번 신이를 놓아 주기 싫지만.. 미완인 채로 남겨 두고 맘 한구석에 짐이 되는 것보다 나을 거란 생각에, 저 스스로를 마구마구 채찍질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 응원 많이 해 주세요.. 대충 완결 예상 편수는 50편이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택도 없을 것 같구요.. 어찌됐든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고 흥미롭게 끝맺음 할 수 있도록 노력 할게요.. 프리티우먼, 바이러스5. 에메랄드, 맑은 하늘, 라떼, 꼬맹이맘, 웃음넘치고, 미쁨, 가을하늘, 베티, 그리움, 아로아, 미우, 비밀, 연꽃, russia59, 등꽃여인, 서울여자, 로사리오, 쟁이공주, 연두는목련을, 미래소년코난, NJELL, 햇빛속에별, 오만과편견, 카시오페, Reds, 언제나행복한나, serendipity, 파란하늘, 배따라기, 쥰세이, 주사랑, 선아, 저승사과, 어설픈찍사, 세이지, achieve210, 보보보, 하늘바라기, 노랑병아리, 이쁜엄마, Jean, 토토, 2gether4ever, 큰손, 아지, 이미지, 성준엄마, sunrainmom, 퀸에스더, 가넷, 구찌, 우실이, 중일맘, 알프스, 시베리안꼬꼬, 별의 씨앗, 사과꽃향기, L군, 천칭자리, 보리수 대감님까지..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회수 5000이 되기 전에 다음 글을 올리는 게 얼마 만인지 생각도 안 나네요.. 워낙 쏭기자가 자주 오질 않으니, 이곳을 찾는 분들의 발길도 뜸해졌다는 걸 실감한 하루였어요. 나중에 들어오셨을 때 쏭기자 글이 몇 편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반가워 하실 대감들을 기대하며.. 저는 다시 또 다음 편을 위해 물러날게요.. 다음 편도 곧!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고 갑니다~ 이번 편 제목처럼 일탈이 임금님을 웃게 하듯, 댓글 비타민은 쏭기자를 춤추게 한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신나서 글 쓸 수 있게 쏭기자에게 비타민 투척 많이 하고 가 주시구요.. 저는 다시 인사 드릴게요. (__) ###################################################################################### 제44화 일탈은 임금도 웃게 한다 #1. 다락방 궁(宮)의 침전과 비교해 너무도 볼품 없는 곳이었다. 이부자리 하나 없는 맨바닥에, 허리를 세우면 머리가 닿을 듯한 낮은 천장, 곳곳에 켜켜이 쌓인 먼지 구덩이까지.. 운우국의 국왕 부부가 사랑을 나누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대대로 신씨 집안의 아이들이 비밀을 묻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봉인한 공간으로서, 누구의 간섭 없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인 곳이기도 했다. 하여, 궁 밖, 그것도 궁과 무관한 곳으로 출타 나온 국왕 부부에게 이보다 더 매혹적인 공간은 없었다. 늦은 밤 남몰래 물레방아로 숨어 드는 여느 연인들처럼, 두 사람은 그들만의 은밀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아직은 해도 지지 않은 늦은 오후.. 밖에서는 태양이 찬란히 마지막 빛을 뽐내고 있었으나, 빛이 채 들어오지 못하는 다락방에는 적당한 어둠과 적당한 밝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혼란스러운 명암(明暗) 속에서, 연인으로 돌아간 부부는 한 꺼풀 한 꺼풀 허물을 벗었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옷가지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달아오른 맨몸이 부딪혔다. 입술이 얽혀 들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됐고, 다리가 얽혀 들어가더니, 가슴이 뒤를 따랐다. 자로 잰 듯 딱 들어맞은 두 몸은 미세한 틈도 내어 주지 않으려고 서로를 단단히 달라붙었다. 신의 입술이 채경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가는 동안, 채경은 낮은 신음소리로 화답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가슴은 신의 손길을 받기 위해 발버둥쳤고, 다급한 채경의 부름에 허벅지까지 내려갔던 신은 다시 되돌아와 채경의 우뚝 솟은 가슴 정상을 으깨듯 깨물었다. 그 아련한 통증과 함께 밀려드는 아찔한 쾌락에, 채경의 전신에 전율이 퍼져 나갔다. 신의 이빨이 점령해 버린 채경의 가슴은 어느새 붉게 피어 올라 열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신의 입술과 혀, 이빨, 손가락이 남긴 붉은 열꽃은 채경의 온몸 구석구석에서 만발했다. 이미 촉촉히 젖어 버린, 그래서 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나 버린 채경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를 재촉했다. 여전히 가슴을 공략하고 있는 신의 허벅지를 다리로 감싼 채, 힘을 주어 자신에게로 신을 밀어 올렸다. 그러자 신이 채경에게 닿았다. 채경의 은밀한 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를 자극하는 사랑의 향내에 발을 들였다. 이미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남성은 신의 심장박동만큼이나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갖고 싶다고, 그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던 신은 조금 더 몸을 위로 끌어올리며 채경 안으로 들어갔다. 촉촉하게 젖은 통로는 딱딱하게 커진 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었다. 너무도 매끄러웠다. 걸리는 게 전혀 없었다. 한번에 샘 끝까지 가 버린 신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잠시.. 이대로 멈추고 싶었다. 모든 것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지만, 잠시 멈추고 싶었다. 꿈틀거리려는 채경마저 온몸으로 저지하고, 신은 잠시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자 했다. 오래되고 낡은 이 작은 방에서 전쟁처럼 치르고 있는 농염한 정사(情事)에서 쉼표를 찍고,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감정과 제어가 되지 않는 몸을 잠시만 쉬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쉬고 싶다는 바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움직이고 싶어 날뛰기 시작한 녀석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자꾸만 엉덩이를 꿈틀거리는 채경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려가고 싶어 요동치는 녀석을 쫓아 열심히 움직였다.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숨소리는 더 거칠어지고, 신음소리는 더 커져 가고, 땀방울은 더 맺혔다. 말초신경 하나 하나까지 다 살아나서 이 격렬한 사랑의 행위에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절정이 다가올수록 서로를 찾는 손길은 다급해졌고, 서로를 탐하는 입술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다급한 몸놀림에서 이 은밀한 정사(情事)가 곧 끝이 날 것임을 직감한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보듬고, 만지고, 입 맞추고, 감싸 안았다. 그리고 결국엔 나를 잊어 버렸다. 네가 나인지, 내가 나인지도 모를 정도로 깊이 빠져 버려, 종국에는 완전히 서로에게 함몰해 버렸다. 신이, 채경에게 무너져 내린다. 더는.. 허리를 세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신을, 채경이 가슴으로 안아 주었다. 맞닿은 가슴이 격렬하게 뛰어댔다.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신도, 채경도, 거칠게 숨을 몰아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똑같이 뛰고 있는 심장소리 덕분에, 같은 마음이라는 걸 느끼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늘한 공기가 주변을 떠돌고 있지만, 사랑을 나눈 두 사람에겐 따뜻한 온기만이 느껴질 뿐이다. 신: (여전히 숨을 몰아 쉬며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맥박이 빠르게 뛰고 있는 채경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른다.) ‘오늘의 사랑이.. 그대의 유년 시절을 유린하는 일이 아니길 바래.. 그대가 아끼고 사랑하는 추억을..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훼손한 게 아니길 바래.. 난 그저.. 이곳에서의 추억 중 한 자락에 내가 있었으면 했어.. 욕심이겠지만, 그대가 이곳을 떠올릴 때면, 내가 함께 떠올랐으면 했어.. 난.. 욕심 많은 놈이잖아. 누구에게든 첫손가락에 꼽히지 못하면 빈정 상하는 놈이잖아. 그러니 이곳에서의 날 뒤로 물리지 마.. 안 보이는 구석으로 치워 두지 마.. 난 분명 이곳에서 그대와 사랑을 나누었고, 이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야.. 난.. 평생 기억할 거야. 그러니 그대도 오늘을 기억해. 오늘의 나를 기억해. 그대의 유년 시절과 여인이 된 시간이 공존했던 오늘의 이곳을 기억해. 그대의 과거 속으로 갈 수 없으니.. 현재의 나로서 그대의 과거와 공존할 거야. 난.. 그대 인생에서 나의 흔적이 남지 않는 곳은 용납하지 않을 거야. 어디든 내 흔적을 남길 거고, 그렇게 그대라는 사람을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 거야. 그러니 오늘의 무례도.. 이해해 주길 바래.. 나의 욕심을.. 한번 더 묵인해 주길 바래..’ 채경: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숨을 고른다. 그러다 신이 목덜미에 얼굴을 묻자, 고개를 살짝 돌려 신의 머리카락에 입맞춘다.) ‘오늘은 참.. 역사적인 날이네요.. 잊지도, 잊을 수도 없는 날이 될 것 같네요.. 천지 분간 할 줄 모르던 어린 시절 천방지축 날뛰며 들락거렸던 이곳에서,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그렇게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공표해 버렸네요.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이곳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워 버린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무너뜨린 당신이, 대단하네요. 이렇게 나의 유년 시절과 안녕을 고하게 되는군요.. 눈물나게 예뻤던 그 시절을 보내는군요.. 슬픈 건 아닌데.. 아픈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요.. 가슴이 묵직해져요.. 난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걸까요..?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걸까요..? 이렇게 당신과 함께라서 행복한데.. 좋은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신: (채경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볼에 닿는 무언가에 멈칫 한다. 물기가 있는 무엇이 볼에 닿았다. 이건.. 땀이 아니었다. 이건, 눈물이었다. 놀라 고개를 들어 채경을 보는데..) 채경: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 (당황했다. 어쩌면 채경이 슬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으나, 진짜로 울 만큼 슬퍼할 줄은 몰랐다. 어떡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아무것도 못하고 채경을 쳐다보기만 하는데..) 채경: (신이 떨어져 나가자 천천히 눈을 뜬다.) 신: (채경이 눈을 뜨자 채경을 어떻게 마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채경을 마주 볼 준비가 안 됐는데 어떡하지?) 채경: (신 보는) 신: (당혹스러운 눈으로 채경 보는) 채경: (신의 표정이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한다.) 신: (채경이 멀뚱히 쳐다보자 더 당황해서) 왜.. 울어? (이런 바보 같은 질문밖에 못한다.) 채경: .. 신: 내가.. 뭘 잘못했어? (다 짐작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자신이 한심하다.) 채경: (자신의 눈물에 신이 당황했음을 알아챈다. 그래서 그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닦는다.) 신: (채경 흘끔거리는.. 요즘 채경을 자주 울리는 것 같아 민망해 죽겠다.) 채경: 그냥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이 난 거예요.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신: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채경: (신의 눈빛을 읽어내고는 빙그레 미소 짓는다.) 정말로 괜찮아요. 신: (여전히 믿지 못하는) 채경: (신을 위해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서 그래요.. 신: 무슨 생각? 채경: 설명은 잘 안 돼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폐하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에요. 그건 확실해요. 신: (확실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줘도 안심이 안 된다.) 채경: 어쩌면.. 폐하가 말씀하셨던 처음.. 때문인 것 같아요. 신: ??? 채경: 이런 일이 처음이라.. 감정이 복잡해진 것 같아요. 나쁘진 않은데.. 뭔가 울컥거려요. 낯설고 두렵지만, 피하고 싶진 않고.. 다시 또 이런 순간이 온다 해도 이렇게 할 거 같은데..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아쉽고.. 더는 이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아서 혼란스럽고.. 뭐 그래요.. 신: .. 채경: (신 보는) 신: (걱정 어린 표정) 채경: (미소 지으며 신을 끌어 안는다.) 신: (조금은 뻣뻣하게 채경에게 안긴다.) 채경: ……………………………………………..이제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신: (움찔) 채경: 어렸던 저는.. 이런 건 못했으니까.. 신: !! 채경: 이곳에서 이런 건 안 했으니까.. 신: (침 삼키는) 채경: 혼례를 치르고 왕비가 됐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었어요. 신: (채경에게 미안한) 채경: 어렸던 신: .. 채경: 그리고.. 이제 어른이니까,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신: .. 채경: 제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은 폐하께서 잘 지켜봐 주셔야 돼요. 제 과거는 이곳에 있지만.. 제 미래는 폐하께 있으니까.. 신: ‘ 채경: (크게 미소 지으며 신을 더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신: (채경에게 안기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교차한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 심정이다.) 채경의 과거가 존재하는 다락방.. 그리고 채경의 미래가 되어 줄 신.. 그 둘이 만나 채경의 현재가 되어 버린 지금 이 순간, 채경은 비로소 애기씨에서 왕비님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좌상댁의 보배 같았던 애기씨 운우국의 보석 같은 왕비님 그것만으로도 이번 외출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두 부부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므로.. #2. 좌상댁 일각 이미 야심한 시각이었다. 시끌벅적했던 환영 분위기도 밤이 되자 사그라들었다. 국왕 부부는 장인 장모가 차려 준 저녁상을 함께 들며 식구로서 처음 식사를 했다. 좌상댁의 전통(?)에 따라 남녀가 모두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이면에는 은형의 격한 반대가 있었으나(임금님에게 몰지각한 집안으로 보일까 걱정되어), 채경 덕분에 겸상에 익숙해진 폐하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우현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저녁 식사 자리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처음의 어색함은 많이 가셨고, 예상했던 것보다 인간적인(?) 신의 모습에 은형도 안심했다. 워낙 냉정하고 무서운 분이라는 소문이 무성해, 쳐다만 봐도 눈빛에 질릴 거라 예상했는데, 채경 옆에 앉아 음식을 들고, 우현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또 가끔은 웃어 보이는 신이, 은형은 정말로 사위 같았다. 처가에 인사 온, 반갑지만 대접도 해 줘야 하는 평생 손님.. 그래서 더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신을 살피며 그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장모로서 처가에 온 사위를 진심으로 대접하고, 딸을 잘 부탁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렇게 네 사람의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신혼 부부는 채경의 방으로 물러났다. 훨씬 더 삼엄한 경계 태세가 갖춰졌다는 것만 빼고는, 좌상댁은 평소와 같았다. 가을밤은 깊어가고 있었고, 멀리서 올빼미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그런 평범한 밤이었다. 월희: (신과 채경이 거하고 있는 건물 근처를 살피고 있다.) 이때 월희에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몸을 돌리는데.. 월희: (어둠에서 드러난 발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살짝 눈을 크게 뜬다. 예상치 못한 손님이었다.) 미오: (월희에게 다가와 인사를 올린다.) 월희: 어찌 네가 여기까지 왔어? 궁은 어쩌고 온 거야? 미오: 대장님께 긴급히 보고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월희: 밑에 아이들을 시켜 전할 수도 있었잖아. 지금 궁을 지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이래? (살짝 역정이 난다.) 미오: 하오나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라.. 월희: (대체 무슨 일이길래 궁을 내팽개치고 왔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미오를 노려 본다.) 미오: (월희의 서슬 퍼런 시선에 주눅들지 않으려 애쓰며 본론을 바로 꺼낸다.) 별이 하나 졌습니다. 월희: (눈썹 꿈틀) ‘뭐.. 라고? 뭐가 져?’ 미오: 방금..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월희: (경직된 얼굴로) 확실한 거야? 미오: 예..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이번에 투입된 별 아이였습니다. (‘별’은 그림자 부대의 수련생들을 뜻하는 은어이다.) 월희: (별이 하나 졌다..? 하.. 어이가 없다.) 어디서 어떻게 당했는데? 미오: 취객을 상대로 벌인 살인 사건과 동일한 수법이었습니다. 단.. 한 방에 갔습니다. 월희: (입술 깨무는) 미오: 그리고.. 발견 장소는 범행 장소와는 다른 듯합니다. 주변 정황상 그곳은 살인이 일어날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월희: 어찌해서? 미오: (살짝 망설이다가) 남문 광장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월희: !!!!!! 뭐?!! 미오: 다행히 세유(그림자 부대원 중 하나)가 바로 발견해, 별 문제 없이 넘어갔습니다. 월희: 그래도 남문 광장이 아니더냐? 거긴.. 미오: 예.. 도성 내에서 사람의 왕래가 제일 많은 곳이지요.. (그래서 숨어들기는 좋으나, 감추는 건 불가능한 곳이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부대원이라는 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월희: 아무리 빨리 수습했다 해도 본 사람이 몇인데.. 미오: 본 사람은 많으나, 취객 살인 사건과 동일한 방법으로 당한 데다, 순찰 돌던 관원들이 바로 발견해서 기밀 유지가 가능했습니다. 이건 믿으셔도 됩니다. 월희: (포청에서 그림자 부대원이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거 좀 찜찜한걸..?) 입단속은 한 거야? 미오: 예.. 월희: 포청하곤 어떻게 얘기됐어? 미오: 이번 건은 우리 쪽에서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명(命)을 내리실 거면.. 월희: 아니! 이건 우리가 가져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쪽에 맡겨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미오: (일단은 해야 할 얘기는 거의 다 전했다. 그래서 중요한 보고를 마치고 난 심정에, 조금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럽기만 하다.) 월희: 사체는 어떻게 됐어? 조사에 들어갔어? 미오: 예.. 1차 검시를 하고, 검시관에게 주고 왔습니다. 철저히 조사하라고 일러 뒀습니다. 월희: 1차 검시 결과는 어때? 별다른 점은 없었어? 미오: (월희 보는) 월희: 반항 흔적은.. 있었어? 미오: (도리도리) 없었습니다. 특이한 사항도 육안으로 봤을 땐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월희: 하..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당했다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미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놈들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놈들인 것 같습니다. 월희: (생각 많아지는) 미오: (월희 보는.. 대장님이 어떤 명령을 내려 줄지 기다리는..) 월희: 이틀 전부터 살인 사건이 뚝 끊겼다 했지? 미오: 예.. 월희: 별들을 도성에 푼 게.. 이틀 전이었다.. 미오: .. 월희: 기다렸다는 듯이 살인이 멈췄고.. 살인 사건이 부활했다 싶었더니 우리 별이 피해자다..? 미오: (믿고 싶진 않지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결과가 그랬기에, 아무 말 못한다.) 월희: 피해를 입은 건 아쉬운 일이지만, 확실해진 건 있구나.. 미오: 그게 무엇인데요? 월희: 그들은 분명 왕실을 노리고 있다.. 미오: (침 삼키는) 월희: 우리 중 하나가 죽는다 해서 전력에 큰 손실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혼란은 줄 수 있지.. 지금껏 국왕 직속 부서인 우릴 건드린 적은 없었다.. 헌데, 보란 듯이 우릴 걸고 넘어지고 있어. 이건 분명 왕실을 향한 선전포고야. 다른 목적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어. 역모가.. 시작된 거야. 미오: !!! 월희: 대체.. 이런 대범한 짓을 벌이는 자들은 누구지? 미오: (두근두근) 월희: 자신들의 목적을 숨기려고도 안 하는 자들은 대체 누굴까? 미오: .. 월희: .. 미오: …………………………….어찌.. 해야 할까요? 월희: (미오 보는) 미오: 별을 노리고 있는 거라면, 그 아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습니다. 월희: 그렇다고 숨을 수는 더더욱 없지.. 미오: 예??? 월희: 희생이 따르더라도 놈들의 꼬리를 잡아야 한다.. 미오: .. 월희: 작은 단서라도 좋아. 뭐든 상관 없어. 놈들을 잡을 단서를 찾아야 해. 미오: 허면.. 아이들은 그대로 두란 말씀입니까? 월희: ………………………………..더 풀어야지.. 미오: !!! 대장님!! 월희: 구회암에 연통을 보내 아이들을 더 내려 보내라 해라. 미오: 아직 투입되기엔 준비가 덜 된 아이들입니다. 월희: 완전한 준비란 없다.. 그리고 우린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라는 걸 잊지 마라.. 미오: ‘하오나..’ 월희: 이번에 죽은 아이에 대해선 철저히 조사해. 그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 미오: (하고 싶은 말을 다 누르고) 예.. 월희: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 잘하고.. 미오: 예.. 월희: 이만 물러가.. 자리를 지켜라.. 미오: (인사 올리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월희: (미오가 물러나고 혼자가 되자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쉰다.) 하.. 이런 순간, 한숨밖에 쉴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미안하다. 대의를 위해 쓰러져 간 아이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을 위할 수 있을 때 존재의 이유를 갖게 되는 숙명의 모순.. 그 모순을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함을.. 오늘도 되새길 수밖에 없다. 월희: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별처럼 진 부하를 위해 마음 속으로 눈물 흘린다.) ‘네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부디 편히 잠들어라..’
#3. 다음 날 소박한 아침을 먹고, 간단한 다과를 즐긴 후, 신은 숙직을 하고 퇴궐한 호경과 장기 대결에 들어갔다. 신은 가끔 궁에서 우현과 장기를 두곤 했는데, 다과상까지 물리고 난 후, 딱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은 우현이 신에게 장기를 두자고 제안했다. 이에 후원 정자에서 장기를 두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퇴궐한 호경이 인사를 하러 후원으로 왔다. 장원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갔지만, 아직은 까마득한 직급이다 보니 폐하를 뵐 기회가 없었다. 하여, 잔뜩 긴장한 채 인사를 드리러 왔는데, 궐에서 멀리서나마 뵙던 폐하는 어디에도 없었다. 편한 차림으로 아버지와 마주앉아 장기를 두고 있는 신 옆에서는 누이가 훈수를 두고 있었다. 그 모습은 호경에게 일상적이고 익숙한 풍경이라, 폐하가 계신 게 맞나 싶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어찌됐든 호경은 자기 식구들과 허물 없이 어울리고 있는 신을 보고 조금은 긴장을 풀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국혼 이후 처음 보는 누이 채경에게 반가운 눈인사를 건네며 집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렇게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호경은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숙직으로 인해 피곤하기도 했고, 밤을 새고 온 탓에 폐하와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를 붙잡았다. 폐하와 당신께서는 서로의 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재미가 없으니 새로운 상대끼리 붙어 보라면서..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누이가 호경이 얼마나 장기를 잘 두는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도 상대가 안 된다며, 장기로는 운우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거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게 아닌가? 이에 폐하의 미간이 살짝 좁아지면서, 사내들이 으레 그러하듯 맞수를 만났을 때의 표정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오호~ 이거 한 판 붙어봐야겠는걸? 얼마나 잘났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주겠어.. 뭐 이딴 감정이 실린 표정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호경은 물러설 수도 없게 돼 버렸다. 멍석을 저리 깔아 주시는데 사양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기에.. 그러면서 걱정이 앞섰다. 누이의 자랑이 꼭 과대 포장된 것만은 아니어서, 그의 실력은 제법 빼어난 편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상대에게는 져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마저도 봐 주면서 장기를 둘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 자신의 실력을 알기에 마음껏 재주를 뽐내고 싶은 마음에, 절대 질 수 없다는 승부욕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 아마.. 상대가 폐하라 해도 호경은 제대로 붙을 게 뻔했다. 강한 상대라면, 더더욱 제대로 붙어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었다. 폐하를 상대로 승부욕을 발산시켜도 될는지.. 아니, 최선을 다해서 이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현: (아들의 고뇌를 눈치 채고는 피식 웃는다. 아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미안하지만, 이건 좋은 기회였다. 감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에게는 폐하도 아들녀석처럼 귀엽고 어리게 보였다. 또래 집단 없이 홀로 커오신 분에게 호경과 장기를 두는 것과 같은 놀이는 경험이 없을 터였다. 그걸..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비록 아들 녀석의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건 호경에게도 나쁜 기회는 아니었다. 폐하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테니.. 하늘 위에 존재하는 분이라는 인식을 깨고, 작은 승부에 집착하고 장기 한 알 두는 데 오랜 고민을 하는 평범한 남자라는 걸..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니.. 그래서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아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리고 채경 곁으로 가서 앉으며 두 남자아이의 대결을 관망하게 되는데..) 신: (겉으로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처남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왠지.. 지고 싶지가 않았다. 저리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장기판을 구경하고 있는 아내에게, 운우국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는 동생에게서 이기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났기 때문이다.) 호경: (폐하의 실력보다는 자신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긴장하지 않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남몰래 숨을 고르며 장기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척한다.) 채경: (그저 해맑게 새로운 장기 대결을 구경할 뿐이다.) 호경: (신을 본다. 먼저 시작하라는 뜻을 담은 눈빛을 보낸다.) 신: (우현을 봤다가 호경을 본다.) 내가 먼저 둬도 되나? 우현: 먼저 두시지요.. (그래야 시작을 할 것 같습니다..) 신: (호경이 아닌 우현이 대답해 주자 살짝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생각했던 장기 알을 움직인다.) 호경: (신이 움직인 장기 알을 보고 무난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에서 시작은 대단히 특색 있진 않으므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두 번 세 번 생각하다 보면 너무 꼬아서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말자 다시 한번 다짐하며 자기도 무난하게 시작한다.) 신: (호경이 선택한 장기 알을 보고 복잡하게 생각한다. 간단한 응수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생각에 잠긴다. 호경의 표정을 살펴 그의 의도를 알아내려 하지만, 진지하게 장기판만 내려다보고 있는 처남의 얼굴에선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또 생각했던 걸 움직인다.) 호경: (피식 웃는다.) 신: (호경의 웃음을 바로 포착한다. 저 웃음은.. 무슨 의미지?) 호경: (금세 웃음을 거두고 판에 집중한다. 아무리 폐하가 선제 공격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걸 파악했다 해도, 티를 내선 안 된다. 그래서 언제 웃었냐는 듯이 담담하게 말을 움직인다.) 신: (호경이 움직인 두 번째 장기 알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까지 어떤 성향인지 파악이 안 되는 것 같다. 너무 무난해서 잘 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원래 의도했던 대로 계속 가보자 생각한다. 그렇게 세 번째 장기 알을 움직인다.) 호경: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지금 움직인 말보다 폐하가 다음에 움직일 말을 흘끔 쳐다본다. 그리고는 몇 수 뒤에 펼쳐질 판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당분간은 폐하의 의도대로 움직여 줘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허를 찌르자고 마음을 정한다. 그래서 신의 공격을 방어하는 척 장기 알을 옮긴다.) 신: (맘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얼굴엔 좋아하는 걸 전혀 티 내지 않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가는데..) 호경: (이번에도 신이 방금 움직인 장기 알보다 다음에 움직일 것을 쳐다본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신을 막아낸다.) 신: (이제 한 수만 더 두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맘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장기 알을 움직인다.) 호경: (잠시 판세를 살핀다. 행여나 자신의 예상이 너무 이른 건 아니었나 의심했으나, 폐하께선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대응해 주셨다. 지금으로선 자신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일부러 위기에 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더 봐 주면 단번에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에도 모른 척하고 엉뚱한 곳에 장기 알을 옮긴다. 하지만 폐하가 보기엔, 자신의 공격이 먹혀서 그걸 방어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였다.) 신: (호경이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자, 웃음이 비어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꾹 참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이거, 이렇게 빨리 끝나도 되는 거야? 그리고는 신중하게 고민하는 척하며 회심의 한 수를 두는데..) 우현: (순간 눈살 찌푸리는..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움직이려는 걸 억지로 참는..) 호경: (결국 피식 터지는 웃음을 막지 못한다.) 채경: (고개 갸웃한다. 호야가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는 걸 보고 이상하다 생각한다.) 신: (역시나 호경의 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에, 호경이 저리 웃자 그 의미를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데..) 호경: 장군이네요.. 신: (호경 보는.. 내가 장군이라는데, 왜 저리 표정이 여유만만이지?) 호경: 혹.. 한 수 물리시지 않겠습니까? 신: (이것 봐라~ 그렇게 장기를 잘 둔다고 소문난 양반께서, 몇 수만에 물려달라 부탁하네~? 이거이거 유언비어였구만~ 회심의 미소 지으며, 유언비어의 근원지 채경을 쳐다본다.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 팔이 안으로 굽은 누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호경: (다시 한번) 물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신: 사내가 한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도로 물릴 순 없지~ 호경: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 신: 안 할 것 같은데? 호경: 저는 분명 기회를 드렸습니다. 신: ??? (기회를 주다니? 뭘? 어..? 그러고 보니 물리라고 했지, 물려 달라고 한 게 아니지?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어감이 다른데..?) 호경: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장기 알로 손이 뻗는다.) 우현: (호경이 그 장기 알을 잡기 전에) 그냥 여기서 끝낼 셈이냐? 호경: (아버지 보는) 신, 채경: (우현 보는) 우현: (호경을 보며) 벌써 끝낼 거냐? (폐하와 좀 더 놀아 주지 않으련..?) 호경: 기회를 세 번이나 드렸는데, 거절한 건 폐하세요.. 우현: 그래도.. 너무 이르지 않냐? 호경: 그렇다고 제가 봐 주는 걸 원하시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하면서 신을 쳐다본다.) 우현: (역시나 신을 쳐다본다.) 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음을 직감한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돼서 내가 불리한 상황인지, 장기판을 샅샅이 살펴봐도 답이 안 나온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내가 유리한 상황인데.. 저쪽에서 멍군으로 막는다 해도, 그 다음 수에서 내가 이기게 되어 있는 판인데.. 어떻게 된 거지?) 우현: (장기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신을 보고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이제서야 깨닫게 되신 모양이다. 하여..) 한 수 물려 달라고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신: (대꾸 안 하는.. 자기가 해답을 찾고자 고집 피우는..) 호경: (아버지가 폐하를 설득하는 데 시간을 주기 위해 팔짱을 끼고 한 발 물러나기로 한다.) 우현: 폐하께서 한 수 물리거나, 호경이가 한 번 봐 주지 않으면 끝나는 상황입니다.. 신: (아, 글쎄! 그러니까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알아야겠다구요!! 왜 나는 못 보는 걸 둘은 알고 있냐고요! 난 그게 기분 나쁘다고요!!) 우현: 폐하~ 신: (짜증이 확 솟구쳐 올라 도와주려는 우현을 째려 본다.) 우현: (살기 등등한 폐하의 눈빛에 헛웃음이 나온다. 어쩜 저리 귀여우실까..) 채경: (폐하의 심각한 표정을 피해 호경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어떻게 된 거야? 호경: (채경 흘끔 보는) 채경: 이번 판.. 폐하가 이긴 거 아냐? 호경: 가르쳐 주면.. 가서 일러 줄 거 아냐? 채경: (눈 작아지며) 나 그렇게 치사한 짓은 안 하거든?!! (발끈 한다.) 호경: (픽 웃으며 채경에게 짧게 판세를 일러 준다.) 채경: (귀로는 호경의 얘기를 듣고, 눈으로는 장기판을 훑어 그녀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진짜 판세를 알게 된다. 알고 나니 드는 생각!) ‘폐하가 지셨구나.. 이를 어쩌지?’ (호경의 실력을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폐하가 이리 쉽게 무너지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신: (채경의 측은한 눈빛까지 더해지자, 세 신씨 일가가 작당하여 자신을 궁지에 모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참으로 닮은 세 사람을 주욱 앉혀 놓고 보니, 자신이 얼마나 이질적인 혈통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는 무척 외롭다. 승부는 감도 못 잡은 마당에, 외로움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더 스산하다.) 우현: (신은 포기하고 호경에게) 폐하께선 마음이 없으신 것 같다.. 호경: 지더라도 깨끗하게 지는 게 사내잖아요. 신: (호경의 말에 더 빈정이 상해 버린다. 맞는 말이라 더 가슴 찔린다.) 호경: (씨익 웃으며 장기 알을 집어 든다.) 신: (호경이 집어 든 장기 알을 보고 어리둥절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기 알이었다. 저걸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호경: (웃는 얼굴 그대로 신의 진영으로 넘어와 적재적소에 장기 알을 놓는다.) 신: !!!!!!!!!!!!! (저.. 저.. 저게 저기에..?!!!) 호경: 장군입니다~! 신: (놀라움과 짜증이 섞인 얼굴로 호경 보는) 호경: ^^ 신: (입술 깨무는) 호경: 어찌 막으시겠습니까? 신: (후~~~~~ 열을 식히기 위해 한숨 길게 내뿜는) 호경: (자신의 패(敗)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가까스로 참고 있는 신을 보고 큭큭 웃는다.) 신: (호경이 큭큭대며 웃는 걸 보고 인상 굳어진다.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그나마 자신을 배려해서 저리 웃고 있는 걸 짐작은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웃는 건 불쾌했다. 특히나 채경과 똑같은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가끔씩 그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는 채경과 너무나 닮은 웃음소리라 기분이 나빴다.) 호경: (신의 눈빛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웃음을 억지로 삼키고) 흠흠.. 혹, 막지 못하겠으면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화제를 돌린다.) 신: (눈썹 꿈틀) ‘다시 시작..?’ 호경: 단판에 끝내는 대결은 대결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 ‘그렇지~ 뭐든 단판에 끝내는 건 진정한 승부가 아니지!’ 호경: 판을.. 다시 시작할까요? 신: …………………………………………..(고개 끄덕인다.) 호경: (신의 허락에 장기 알들을 정리하며) 어쨌든 첫 판은 폐하께서 지신 겁니다. 신: (멈칫.. 굳이 자신이 이겼다 말하지 않고, 내가 졌다고 정리해 주는 호경의 언사에 기분이 상한다.) 호경: (씨익 웃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신을 바라본다.) 신: (채경과 너무 닮은 얼굴로 저렇게 해맑게 웃으니 울화가 치민다. 그러고 보니 있는 대로 자신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게 누이랑 막상막하였다. 좌상도 오래도록 그랬는데.. 혹시 이거.. 집안 내력 아냐? 하는 망상까지 든다.) 우현: (호경에게 살짝) 살살해~ 채경: 그런 게 어딨어요? 승부는 정정당당해야죠~ 호경: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두 분 다 훈수는 접어 두시죠~ 신: (세 식구가 자길 앞에 앉혀 놓고 저러는 걸 보고 있으려니 다시금 외로움이 급습한다. 아~ 할마마마 보고 싶어..) #4. 늦은 오후 채경의 무릎을 베고 누운 신이, 들고 있던 서책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들은 지금 채경의 방에서 한가하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신과 놀아 주는 데 신물이 났는지, 아니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주고 싶었는지, 우현과 은형, 호경은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대며 그들과 함께하는 걸 거부했다. 그래서 버려진(?) 두 부부는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궁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여유였다. 가끔 이렇게 쉬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바쁘게 살다가 막상 휴식의 시간이 도래하니 신은 심심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그래서 독서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신: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뭔가 재미있는 거 없을까? 채경: (신과는 달리 처녀적 탐닉했던 소설을 오랜 만에 읽으며 정신을 못 차리다가 신이 말문을 열자 책을 내려놓는다.) 신: (채경 올려다보며) 나 좀 재미있게 해 줘~ 채경: 이제 여기가 편해지셨나 봐요.. 어리광을 다 부리시고.. 신: ‘그런가? 편해진 건가?’ 채경: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서) 뭘 하면 재밌을까요? 신: ‘그건 내가 물었잖아. 답은 이 집 터줏대감이 찾아야지~’ 채경: (눈을 굴리며 이 생각 저 생각 해 보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신: 더는 탐사할 데 없어? 채경: 어제 내내 돌아다녔잖습니까? 이 집이 그리 큰 것도 아니고, 봐야 할 덴 다 보셨습니다. 신: 소개시켜 줄 사람은 더 없어? 채경: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소개해 드렸는데, 빠진 이가 있겠습니까? 신: 하.. 그럼 할 건 다 했단 말야? 채경: 예..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습니다.. 신: (실망하는) 채경: 그렇다면 남은 건..?!! 신: ??? ‘남은 거 있어?’ 채경: (의미심장하게 신 보는) 신: (채경 보는) 채경: (입꼬리 올라가며) 집 밖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겠는데요? 신: ??? 채경: 오늘 연등 축제 하는 거 아시죠? 신: 그래서? 채경: 이런 날엔 늘 담을 넘어 밤나들이를 했었어요. 신: 뭐??!! 채경: (완전 들떠서) 월담 하는 거 어떠세요? 신: 뭘 하자구? 채경: 담 넘어서 연등 축제 구경 가자구요~ 신: 여기 깔린 병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채경: 그거야 말만 잘 맞추면 되죠~ 나도 맨날 월담 할 땐 공범이 있었어요. 신: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야?) 채경: 류대장님이랑 월희양(채경이 월희를 부르는 애칭) 잘 구슬려 봐요~ 신: ‘걔네가 퍽도 나한테 넘어오겠다~ 이실직고 하는 즉시,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할 걸?’ 채경: 이럴 기회가 언제 또 있겠어요? 그러니까 얼른 불러서 얘기해 봐요~ 신: (채경의 재촉에 벌떡 일어나 앉는다.) 채경: 폐하~ 우리 가요~ 예?? (이제 어리광은 그녀가 부린다.) 신: (채경 보는) 채경: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는) 신: ………………………………………..공범은.. 안 만드는 게 좋겠어. 채경: ??? 신: 아무도 몰래 빠져 나가자. 그래야 방해 없이 나갈 수 있어. 채경: (멀뚱멀뚱) 신: 저녁 먹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린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자는 걸로 해 두자구~ 채경: (신의 의도를 다 파악하진 못하겠으나, 일단 고개를 끄덕거려 동조한다.) 신: (걱정은 되지만,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채경과 한번쯤 암행을 나오고 싶었었는데.. 그 기회를 오늘로 삼으면 될 것 같다. 축제이니 사람들도 많을 거고, 늦은밤까지 놀아도 수상쩍게 여길 사람도 없겠지.. 이야~ 이거 마지막밤을 매우 특별하게 보내겠는걸~^^) 그렇게 또 한번 사고 치기로 결심하는 철 없는 국왕 부부였다. #5. 저잣거리 거리는 온통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 고운 빛이 사방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 빛에 현혹되어 채경은 신의 손도 놓아 버릴 뻔했다. 졸지에 인파 속으로 채경을 놓칠 뻔한 신은, 호위 무사들이 왜 그리 자신의 개별 행동에 마음을 졸이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말 십년 감수했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채경을 놓쳤다면, 어찌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여, 손을 단단히 잡았다. 채경을 어디에서도 놓치지 않게 자신 곁에 착 달라붙게 하고는 저잣거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축제를 맞아 갖가지 물건을 내다팔고 있는 벼룩시장에서 물건들을 구경하고, 별 것 아닌 물건을 사면서 상인과 가격 흥정을 하며 언성을 높여 보기도 하고, 연등을 두 개 사서 소원을 쓰고는 연등걸이에 걸어 한참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연등을 손에 들고 밤거리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쫓으며 숨이 턱에 차기도 했다. 또한 채경이 즐겨 다녔다는 먹거리 장터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먹으며 질겁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채경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게 심술이 난 신은 채경이 단 한번도 발 디딘 적 없는 홍등가에 데리고 갔다. 화려한 치장을 한 여인들이 줄줄이 거리로 나와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홍등가에서 눈 둘 데가 없어 발 끝만 보고 걷던 채경은 술 취한 남자와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 놀려 주려고 데리고 갔다가 사고를 당한 채경 때문에 기겁한 이는 다름 아닌 신이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채경을 바로잡아 주며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린 신이었건만, 술 취한 남자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채경에게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냐며 시비를 걸었다. 고래고래 소리치는 남자를 보고 기가 찬 신은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겠다며 달려들었는데,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된 채경이 남자에게 돌진하는 신을 저지하며 홍등가를 빠져 나왔다. 신이 어찌나 완강하게 버티는지 그를 끌고 나오는 데 채경은 온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홍등가를 벗어난 신과 채경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서책가로 갔다. 먼지 냄새 폴폴 풍기는 서책가의 작고 오래된 서점에 들어가 오래된 고서를 구경하는 척하다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벼락같이 입을 맞추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나중엔 짧게 입 맞추지는 게 아쉬워 오래도록 서로의 입술을 물고 있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남자야 면이 팔려도 괜찮지만 여자는 정조 관념이 투철한 시대라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하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주인에게 채경을 안 보여 주려고 신은 도포 자락으로 채경을 덮어 버렸다.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채경을 보쌈 하듯이 옆구리에 낀 채 문제의 서점에서 빠르게 빠져 나왔다. 신: (어느 정도 서점에서 멀어졌다고 판단되어 손 힘을 느슨하게 푼다.) 채경: (도포를 헤치며 밝은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신: (채경 보는) 채경: (격하게 숨을 몰아 쉬며 호흡을 고른다. 정말 숨막혀 죽는 줄 알았다.) 신: 오늘 우린 어딜 가든 사고만 치네~ 채경: (신 보는) 신: 아무래도 진정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 쉴 만한 데가 있으려나? 두리번거리는데..) 채경: …………………………………………배.. 안 고프십니까? 신: (인상 쓰는) 또 먹거리 장터로 가자고? 채경: (피식 웃는.. 정말로 싫으셨나 보군..) 신: (웃는 채경이 맘에 안 든다.) 나 배 안 고파! (확실하게 의사 표현한다.) 채경: 저는 고픕니다. 신: (뭐라 반박하고 싶은데 말이 안 떠오르는.. 배 고프다는 사람더러 참으라고 하는 건 너무 치사한 것 같았다.) 채경: 드시고 싶지 않으면 밥 먹는 절 보고만 계십시오. 신: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게 밥 먹는 거 옆에서 쳐다보는 거라는 거 몰라?) 채경: (신의 팔짱을 끼며 어딘가로 걸음을 뗀다.) 꼭 한번 먹어 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신: (채경에게 끌려가며 한숨 쉰다.) 부인~ 채경: 예??? 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지금 너무 대범한 거 아십니까? 채경: ??? 신: (채경이 팔을 끼우고 있는 자신의 팔을 살짝 흔들어 대며) 아무도 이러고 안 돌아다니거든요~ 채경: !!! (손에 불이 붙은 듯 화들짝 놀라며 팔짱을 획 풀어 버린다.) 신: (절레절레 고개 흔들며) 너무 흥분하셨네~ 우리 부인.. 채경: 흠흠.. (헛기침 하며 민망한 표정을 감춘다.) 신: (피식) 그래서.. 어디 가려구? 채경: (멈칫 서서 신 보는) 신: (채경을 마주 보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잠시 후.. 신: 오고 싶다는 데가 국밥집이었어? 채경: 예.. 신: 논두렁에서도 밥 먹어본 사람이 여기선 왜 못 먹어 봤대? 채경: 여자들끼리 오긴 좀 그래서요.. 신: ??? 채경: 보통 월담 해서 밖으로 나올 땐 남자 종들을 끌고 오진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먹거리 장터에서 계집종들이랑 이것저것 먹는 게 다였어요. 신: (채경의 말을 듣고 보니 객점엔 여자들끼리 온 손님, 그것도 비단 옷을 입고 온 여자 손님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채경: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주변을 훔쳐 본다. 상이 내어져 나올 때까진 주변을 마음껏 구경하기로 마음 먹었다. 객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 설레고 기분 좋다.) 신: (이유야 어찌됐든 밖으로 나온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걸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안심이다. 국밥은 모르겠고, 술은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객점 마당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술상 또는 밥상을 받아 놓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하는 이야기도 다양했다. 제일 많이 하는 얘기는 오늘 연등 축제에 대한 것이었고, 보부상들은 장사에 대해, 농민들은 최근 수확에 대해, 평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각자의 소신에 따라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난상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폐하께서도 주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듯했다. 하여, 채경도 입을 다물었다. 쓸데 없는 감상을 늘어놓으며 폐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는 일에 방해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이어, 술상을 겸한 밥상이 곧 내어져 나오고, 채경은 수저를, 신은 술잔을 집어 들었다. 채경: (밥 한 술 뜨기 전에)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신: (술잔을 부딪히듯 채경에게 내밀며) 재미있었어. 고마워~ 채경: ^^ 신: 먹어.. 배 고프다면서.. 채경: 예~! (씩씩하게 대답하고 밥을 국에 만다.) 신: (맑은 동동주를 한번에 쭈욱 들이킨다.) 채경: (뜨끈한 국밥을 숟가락에 한껏 떠서 한입 털어 넣는다.) 신: (입가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술잔을 내려놓는다.) 채경: (뜨거운 밥 때문에 씹지 못하고 식히느라 정신 없다.) 신: (채경 보며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술병을 들어 술잔을 다시 채우려고 하는데..) “우리 임금 미친 거 아냐?” 신: (멈칫) 채경: (놀라서 뜨거운 밥을 그냥 꿀꺽 삼키는) 너무도 또렷하게 날아온 그 목소리는, 소란한 객점을 일순간에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걸 알아챈 목소리의 주인공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석자는 당황해서 친구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자는 자신이 한 말이 뭐가 대수냐는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왜? 내가 못할 말 했어?” “자네 취했네 그려~” “아~니! 나 안 취했어! 요즘 우리 임금이 하는 짓 보면 미친 게 분명해.” “(당황해서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거지촌 애들 몰살하는 거 좀 봐~ 그게 사람으로서 할 짓이야?” 신: (눈썹 꿈틀) ‘거지촌? 몰살?’ 채경: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신의 표정을 살피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지촌 몰살에 대한 이야기가 웅성거리며 퍼져 나간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계속해서 동석자에게 뭐라고 뭐라고 떠들고 있었고, 이미 그 사람의 이야기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되고 주변 소음이 커졌다. “거지촌 몰살이라니.. 들어본 적 있어?” “글쎄.. 처음 듣는 얘긴데..” “난 들어본 적 있어. 근데 너무 황당해서 안 믿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어?” “얼마 전부터 왕실에서 도성 외곽 정비에 들어갔는데, 철거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어. 그 중에 거지촌이 끼어 있었나 봐. 그래서 거지촌에 있는 거지들을 내보냈다던데.. 반항하는 곳이 있어서 강제 이송시키려고 했다나 뭐라나? 그래도 안 되는 곳은..” “다 죽여 버렸다는 거야?” “어차피 거지들이야 있으나 없으나 한 놈들이잖아. 쓸어 버리는 게 깔끔하지~” “아무리 그래도 한밤중에 불에 태워 죽이는 건 너무 한 거 아냐?” “불에 태워 죽였대?” “그렇대~” “근데 더 웃긴 건 불 지르고 나서 물을 뿌려 껐다는 거야~” “그건 또 왜?” “알 수 없지.. 근데 그것 땜에 임금이 미쳤다고 하나 봐.. 그럴 거 불은 왜 지르냐고..” “임금이 이해할 수 없는 짓 한 게 어디 한두 번이야?” “그건 아니다~ 소문이 무섭게 나서 그렇지, 실제로 임금한테 억울한 일 당했다는 사람 본 적이 없다~” “하긴.. 우리 임금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 위인은 아냐.. 혹시 다른 사람이 임금 욕 보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하.. 여기 또 왕실 열혈 충성파 있네~ 활활 타오르는 불을 그렇게 일시에 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흔한 줄 알아? 그건 임금밖에 못해~” “그럼 임금이 직접 몰살하고 다닌단 말야?” “그러니까 미쳤다는 소문이 돌지~” “장가 들고 괜찮아졌다고 하지 않았어?” “지난 번에 해루국 공주가 그 짓을 벌이고 갔는데 멀쩡하겠어?” “하..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거야? 밤에도 살인마 놈 때문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겠고.. 누군 자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불 타서 죽고.. 이거 어디 무서워서 살겠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왜 집에 일찍 안 들어가고 맨날맨날 객점에 있어?” “그러게 말야~ 하하하~” “술이나 들자구~ 나랏님 하는 일에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토 달아서 뭐 하겠어?” “그래 그래~ 술이나 마시자구~ 오늘은 축제 아닌가?” 사람들은 또 자기 식대로 소문을 정리하고 본래의 술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단 한 곳.. 처음 이곳에 왔을 때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 (생각에 잠긴 듯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채경: (이미 식어 버린 국밥은 잊은 지 오래다.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나는 소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분노 때문에 몸이 떨릴 지경이다.) 신: .. 채경: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려 애쓴다.) 신: 기(氣)가 너무 흐트러졌다.. 채경: (신 보는)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 한가하게 기 얘기 할 때가 아니라구요!’ 신: 절대 움직이지 마! 채경: ??? 이때, 밤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날아오는 은빛 단도가 채경의 눈을 시리게 했다. 그와 동시에 비호처럼 몸을 일으킨 신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채경을 막아 섰다. 신의 가슴 바로 앞에서 멈춰 선 단도는 허공에 뜬 채 갈 길을 잃고 동작 그만되었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객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굳어 버렸다. 하지만 신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단도가 날아온 어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곧 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낸 검은 물체를 넋을 잃은 듯 쳐다봤고,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신의 힘에 조종되어 끌려온 물체는 곧 객점 마당에 내동댕이쳐졌고, 사람들은 이내 그것이 검은 복면을 쓴 덩치 큰 남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신: (평상에서 내려와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본다.) 남자: (숨쉬기가 힘든 듯 듣기에도 큰 숨소리를 내며 괴로워한다.) 신: 누구냐, 넌? 남자: (복면 사이로 드러난 두 눈으로 신을 쳐다본다.) 신: 누가 보냈지? 남자: .. 신: 말해! 누구야? 남자: .. 남자는 거친 숨소리만 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숨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객점은 신의 기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폐부를 찌르는 가운데,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신: 마지막으로 묻겠다.. 누구냐 넌? 남자: (신 보는) 사람들: (주목하는) 신: 계속 침묵하시겠다~ 남자: .. 신: ………………………………..왕명(王命)을 거역할 셈이냐? 남자: (숨 삼키는) 사람들: (왕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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