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추워진 겨울 날씨에, 잔뜩 몸을 움츠리며 출근을 했습니다. 쏭기자는 겨울만 되면 찬바람에 눈물이 찍찍 흐르는 병(?)을 앓고 있어서,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날엔 바깥에 돌아다니는 게 참 찜찜해요. 버스 기다리면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얼마나 한심한지.. --;; 오늘도 월요일 아침부터 울면서 출근했네요. 이번 한 주.. 울면서 보내는 건 아닐지..;; 월요일부터 상큼한 얘기로 시작하진 못할망정, 눈물 나는 안부로 포문을 여네요.. 소설은 안습이 아니어야 할 텐데.. 벌린 일들 수습하느라 급급해서 정신이 없어요. 제가 벌려 놓고 수습하기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것도 우습고.. 참 가관입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상상들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심정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늘어지지 않게, 깔끔하고 흥미롭게 쓰는 게 목표인데.. 제 주변이 넘 시끄럽네요. 나이가 들면 뭔가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게 쉬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따져야 할 건 더 많아지고, 용기는 점점 더 없어지고.. 소심쟁이에 겁쟁이가 돼 버렸어요. 뭐,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사적인 투정이라, 그냥 흘겨 듣고 잊어 버리세요~ 자, 그럼 소설 다시 시작해 볼까요? 지난 주에 세 편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글 진행이 쑥쑥 이어지질 못했어요. 그래도 달린 보람이 있는지 많은 분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반가운 인사를 해 주셨네요.. 정말 기뻐요.. 다른 작가님들도 속속 컴백하셔서 얼마 전보다는 북적북적대는 시날방이 되어서 조금은 안심이 됐어요. 모두들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시고, 읽어 주시는 대감들도 굳건히 시날방 지켜 주셔서 감사 드려요.. 이래야 텔궁이죠~ ^^ 음..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신이랑 채경이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사이사이 들어가는 두 아이의 이야기가 사건들 속에서 튀진 않는지 걱정하며 이번 편을 썼습니다. 사건 이야기만 쭉쭉 쓰는 게 어쩜 제 스타일일지도 모르지만(비밀 커플에선 줄창 일만 시켰더랬죠..) 우리 임금님께 채경이가 위로가 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욕심에 둘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입니다. 어찌됐든 신이의 계략이 뭔지.. 이연이 어떤 역할을 할지.. 정토산에 숨어 있는 그 놈은 누구인지.. 이제 실체를 드러낼 때가 오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멋진 임금님과 왕비님을 보내게 되겠죠..? 벌써부터 아쉬움이 한가득이지만, 완결에 대한 동경도 꽤 크네요. 며칠 만에 끝내던 소설이, 한 달이 넘어가고, 몇 달이 되더니 이젠 1년을 끌어 한 편이 끝나가네요. 그리고.. 텔궁에서 벌써 네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운 요즘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많은 대감님들과, 새로이 합류해 쏭기자를 지지해 주시는 대감님들까지.. 오늘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모두들 대단하시구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__) 그럼, 저는 다음 소설이 완성되는 대로 갖고 올게요. 이번 주부터는 취재와 원고 작성이 이뤄지는 때라, 그리 일찍 가져올 수는 없을 듯한데요.. 그래도 여러분들의 칭찬과 격려에 힘내서 빨리 오도록 노력할게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곧, 다시 오겠습니다. ######################################################################################## 제48화 별님.. 운우국과 폐하를 지켜 주세요 #1. 강녕전 환익: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신: 뭐가? 환익: 이연님을 미끼로 쓰시는 것이요.. 신: .. 환익: 이연님이 와 주시기만 한다면야 일이 아주 쉬워지겠지만.. 위험 부담이 큰 일입니다. 신: 하지만 그만큼 얻을 것도 많아. 이연이 궁에 오는 걸, 저들은 막을 수밖에 없어. 필사적으로 달려들겠지.. 우린 그때 덮치면 돼. 늘 쫓기만 하다가, 이번엔 우리가 쫓는 거야. 환익, 월희, 원호: (그렇긴 하지만.. 이연님이 잘못되는 날엔..) 신: (셋의 얼굴에 드러난 우려를 보고) 너희들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아. 나야 이연의 재주에 대해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지만, 너희들은 다르잖아. 아니, 운우국 백성들 모두 이연의 재주를 동경하고 아끼고 있어서, 그녀를 잃는 건.. 운우국의 보물을 잃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연과 운우국..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내 선택은 운우국일 수밖에 없어. 환익, 월희 원호: .. 신: 너희들의 이해를 구하는 건 포기할 수 있어도, 이연의 협조를 포기할 순 없어. 그래서.. 왕명을 내린 거야. 아마.. 그녀는 거절하지 않을 거야. 나한테 빚이 있거든. 환익: ……………………………..폐하답지 않으십니다. 신: 그래.. 어쩌면 치사할 수도 있어. 아니, 솔직히 치사해. 하지만.. 이연은 놈들도 버리지 못하는 중요한 패야. 왜 내가 일찍 이연을 생각지 못했는지, 그게 더 원망스러워. 월희가 비약 얘길 꺼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모르고 있었겠지. 월희: 그랬다면 이연님은 저들 손에 넘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환익: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놈들이 이연님을 제거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신: 그래.. 저들이 이연을 생각지 않은 건 크나큰 실수야. 나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지.. 그래서 조금은 위안이 돼. 늦었지만, 아주 늦진 않았으니까.. 우리에게 기회가 있으니까.. 원호: …………………………….저들이.. 움직일까요? 신: 움직일 거야. 원호: …………………….오히려,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전에 일을 치르는 건 아닐까요? 신: 그럴 수도 있겠지.. 해서, 궁성 경비를 강화해야겠어. 환익, 월희, 원호: (신 보는) 신: 그동안 내가 지시했던 일들은 계속해서 진행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도성과 궁 경비에 치중해. (원호에게) 포청과 연계해 도성 경비를 24시진 계속 가동시켜. 당분간 주야 구분 없이 일해야 할 거야. 원호: 예.. 신: (월희에게) 당분간 살인마 수색은 중단해. 그 대신 12시진마다 명운산으로 별들을 보내 이연과 합류하도록 해. 만에 하나 놈들이 움직이지 않을 시엔 이연을 궁으로 데리고 오고, 싸움이 벌어지면 작전을 펼 수 있게 준비해. 월희: 예.. 신: (환익에게) 넌, 명운산과 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매복을 준비 중인 무리가 있는지 알아 봐. 만약 그런 자가 눈에 띈다면, 그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뒤쫓아. 어쩌면.. 훈련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거야. 환익: 예.. 신: (셋을 보며)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고 있어. 그동안은 정신 없이 당하기만 했는데, 이젠 우리가 반격할 때야. 환익, 원호, 월희: (신 보는) 신: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상이 바른 놈 같진 않아. 사상면으로 내가 누굴 탓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놈한테 운우국을 넘기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모두들 고생이겠지만.. 끝까지 힘써 줘. 날 위해서가 아니라 운우국을 위해서.. 환익, 원호, 월희: 예! #2. 명운산 왕의 전언을 발설한 이도, 전해 들은 이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연유로 입을 닫아 버린 미오와 이연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다. 미오는 폐하의 전언을 전했다는 안도감과 이후의 진행에 대해 생각 중이었고, 이연은 폐하의 전언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해 보느라 골몰한다. 하지만 폐하의 의중이 무엇인지, 그 짧은 말들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연은 머릿속은 복잡하나, 담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연: 내 목숨을 담보로 하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미오: (이연 보는) 이연: 날.. 미끼로 쓴다는 곳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인가? 미오: (침 삼키는) 이연: ………………………..혹.. 도성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겐가? 미오: (입술 깨무는) 이연: (미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한테 말해 주면 안 되는 일인가 보군.. 미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연: (미오 보는) 미오: 이미 알려진 사실들도 있고, 함구되고 있는 사실들도 있으나, 이연님께 말씀 드리지 말라는 당부는 없으셨습니다. 이연: 당부가 없어도 비밀을 지켜야 하는 일 아닌가? (잘은 몰라도 그쪽 일이라는 게 그렇다고 들은 것 같은데..) 미오: 물론 그런 일도 많습니다. 허나, 이번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연: 그럼.. 얘기해 주겠나?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렇다네.. 미오: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킨다. 막중한 임무를 여러 번 수행해 봤지만, 대예언자 이연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의 책임을 맡게 되어 궁을 출발할 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사흘 동안 맘속으로만 담고 있던 이야길 풀어놓을 생각을 하니, 또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이연: (긴장돼 보이는 미오의 얼굴을 보고, 보통 얘기가 아닐 거라고 짐작한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을 앞둘 때는 늘 그렇듯,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 머리로는 궁금하다 하는데도, 가슴에선 내가 예측하지 못한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거부하고자 한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은 늘 이렇게 살아갈 텐데.. 어떻게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미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미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여쭤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연: ??? 미오: ………………………..이연님은.. 스스로의 명(命)을 알고 계십니까? 이연: 그건 왜 묻는 겐가? 미오: 자신의 명을 알고 계시다면, 이번 일을 행함에 있어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요.. 이연: 얘기를 다 들은 후 내가 왕명을 따르지 않을 것 같아 물어 본 겐가? 미오: (이연 보는) 이연: 혹.. 내가 거절하면 날 어찌 하라는 명도 있었나 보군.. 미오: (침 삼키는) …………….허락하실 때까지 설득하겠습니다. 이연: ……………………………날 죽이라 하신 겐가? 미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연: (미오 보는) 미오: 폐하께선.. 쓸모 없는 살인은 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있어선 이연님을 보호하길 원하십니다. 이연: ………………………….. 그래도.. 폐하의 명이라면 무조건 따를 거 아닌가? 미오: …………………예.. 그렇습니다. 폐하가 명하신 일은 무조건 따릅니다. 이연: 왕명이.. 부당하다 생각한 적은 없는가? 미오: …………….판단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명이 옳고 그른 것을 단 한번도 따져 본 적 없습니다. 이연: 폐하를 신뢰하고 있나 보군.. 미오: 신뢰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폐하께선 지금까지 그른 명을 내린 적이 없으십니다. 때론 잔인하고 참혹한 처단을 명하실 때도 있었지만, 늘 지나고 나면 타당한 연유가 있었습니다. 해서, 저희들이 행하는 일에 있어서 옳고 그른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연: 그건.. 폐하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미오: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가 사람을 죽이고 해하는 순간에도, 이건 타당한 명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진 않습니다.. 옳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내 심장을 차갑게 식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더운 피가 온몸을 적셔도.. 심장은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이연: 그럼.. 지금껏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 미오: 예.. 아직까지 후회해 본 적 없습니다. 이연: 그렇단 말은.. 폐하께서 실수한 적이 없다는 말이 되겠군.. 미오: 폐하는 실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연: 아니! 폐하도 실수할 수 있다네.. 미오: (이연 보는) 이연: 폐하도.. 사람이잖은가? 해서, 실수할 수 있다네.. 그리고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네. 다만.. 위정자의 실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무엇보다 그들이 실수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실수했을 때보다 훨씬 크지.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많은 이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거든.. 한 사람의 실수가,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파만파로 번져 나간다네.. 해서, 실수해선 안 되지. 미오: .. 이연: 그런 면에서 폐하는 대단한 분이라네.. 여지껏 눈에 띄는 실수를 하지 않고 정치를 행하고 계시니.. 미오: .. 이연: 평탄한 삶이 아니었는데도, 잘 성장하셔서 제 몫을 너무 잘해내고 계시지.. 허나.. 미오: (이연 보는) 이연: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폐하는 피를 부르는 사주라네.. 미오: !! 이연: 지금까지처럼.. 폐하는 사람들의 피를 제물로 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네.. 미오: (침 삼키는) 이연: 아직까진 그 피바다에 빠지지 않고 잘 버티고 계시지.. 충분히 그 피바다에서 뛰놀 수 있으시나,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계시지.. 미오: .. 이연: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군. (표정을 다잡고) 그래, 내게 도성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게나. 미오: 그 전에.. 이것을 받으십시오. 이연: ??? 미오: (품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 이연에게 내민다.) 이연: (손수건을 받아 들며) 이게.. 뭔가? 미오: 폐하의 두 번째 전언(傳言)입니다. 이연: (잠시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살펴본다. 특별할 게 없는 손수건이었다.) 미오: (다시 또 숨을 고른다.) 이연: (고개를 들어 미오를 본다.) 미오: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이연: (고개를 끄덕인다.) 미오: 이연님께서는 도성까지 저희와 동행하셔야 합니다. 출발은 사흘 후에 하게 될 것입니다. 이연: (미오 보는.. 내내 망설이는 듯하던 아이가, 본론이 나오자 단호하게 말문을 여는 게 신기하다. 이래서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는 법이다. 저 여려 보이는 아이도.. 실상은 무자비한 비밀 병기였다.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언제든지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는.. 무서운 실력을 겸비한 무사였다.) 미오: 내일 당장 떠나지 않는 건, 이연님을 도성에서 맞이하고자 하는 무리들을 노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연: ??? (도성에서 날 맞이하는 무리? 노출?) 미오: 그들이 예상하는 도착 시간보다 늦어지도록 해, 그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계획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쪽 병사들이 그들의 후방에서 혼란스러운 그들을 기습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연님이 도성에 도착할 즈음엔, 위험 요소가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연: .. 미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벌어져서 이연님이 놈들의 손에 잡혀간다 해도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손수건.. 폐하의 수인이 맺힌 그 손수건을 갖고 계시면, 어디든 이연님을 찾아갈 수 있다 하셨습니다. 해서.. 이연님을 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저희는 최선을 다해 이연님을 보호하는 척……..만 할 것입니다. 이연: …………………………내가.. 미끼가 되는 거로군.. 미오: ……………….예.. 하지만 지금 저희가 이연님을 모시러 온 것만으로 이미 이연님은 미끼가 되셨습니다. 이연: ??? 미오: 저들에겐 이연님과 폐하가 만날 가능성만으로도 대단한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 단계에선 이연님이 목숨을 담보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은 안전하십니다. 이연: .. 미오: 목숨을 담보로 한 미끼는.. 이연님이 그들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연: .. 미오: .. 이연: 내가.. 미끼가 되어서 잡아야 할 자가 누군가? 미오: (이연 보는) 이연: (미오 보는) 미오: ………………………………….역도들입니다. #3. 사흘 후 다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정토산 움막. 부산하진 않지만 움직임이 끊이질 않는다. 오가는 수많은 복면들과,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이름 모를 가마들, 눈빛을 주고받는 사내들.. 대사를 앞두고 있는 게 분명한, 알 수 없는 기류가 이곳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움막의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그가 있었다. 바깥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앉아서 조종하고, 앉은 자리에서 모두 들어 알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홀려 그의 수하로 끌어들인, 역모의 주동자가 앉아 있었다. 오늘도 수하가 물고 온 새로운 소식에, 울고 웃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들어온 보고는 기다리던 소식들로, 꽤나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들고 온 보고는 듣는 순간 인상부터 쓰게 만들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궁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저희도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뭘 모르겠다는 거야?” “이상하게 전혀 틈이 보이질 않습니다.” “???” “월담을 시도하는 족족 실패했습니다.” “월담을 실패하다니? 궁성 경비가 삼엄해졌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속시원히 얘기해. 뭐가 문제야?” “담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 “담장을 넘으려고만 하면 안에서 밀어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희도 말씀 드리면서 어이가 없습니다. 하오나, 사실입니다. 뭔가가 가로막힌 듯, 담을 못 넘게 막고 있습니다.” “하.. 월담이.. 안 된다고?” “예..” “특정 구역의 담만 그런 거 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경비 구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담에서 월담을 시도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보이지 않는 막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처음엔 보통 방식대로 월담을 시도했는데, 넘을 수가 없어서 다음엔 더 높이 뛰어올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도 담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엔 아예 벽을 타고 넘어가려 했는데, 담벼락에서 딱 막혀 버렸습니다. 담벼락에 걸터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투명막이.. 쳐져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건.. 불가능해.” “(남자 보는)” “끝도 알 수 없이 펼쳐져 있는 게 운우국의 정궁(正宮)이야. 그 궁의 경계를 짓는 담 역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구.. 근데.. 24시진 내내, 그 길고 긴 궁벽을 보호하는 막이 작동하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허나.. 현실은..” “(부하 사량 보는)” “있을 수 없는 보호막이 궁벽을 감싸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궁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듯합니다.” “……………………..하..” “(남자 보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게.. 임금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야?” “..”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단 말이지..” “..” “(생각 많아지는)” “………………………..어찌.. 할까요?” “..” “..” “명운산으로 정찰 나간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하긴.. 사흘밖에 안 지났으니 명운산에 도착도 못했겠지..” “그러나 좀 이상합니다.” “무엇이?” “명운산에서 출발한 이들과 우리쪽에서 출발한 아이들이 서로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군. 명운산까지 가는 데야 사흘이 걸린다지만, 그쪽에서 출발한 자들을 중도에 만난다고 치면 지금쯤 만났을 수도 있겠군.” “그런데 아무런 연통이 없습니다.” “뭐.. 오늘 중으로는 만나겠지.” “그럼.. 이연을 치러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량 보는) “도성과 가까운 곳에서 빼돌리려고 하면, 우리가 놓쳤을 경우 궁으로 도망치기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도 우리가 움직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기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각 좀 해보자꾸나..” “..” “일단 나가 있어. 결정이 되면 부를 테니..” “예..” 사량이 나가고 혼자가 된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우리의 실체를 드러낸 이후로 계획했던 일들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렇다 해도 막상 닥치니 정신이 없었다. 은근슬쩍 알게 모르게 굳건한 궁성을 갉아 내어 무너뜨리려 했는데.. 영악한 왕은 그들의 은밀한 물밑 공작들을 너무 빨리 알아채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대처해 오는 왕의 반격에, 언제부턴가 당혹스러운 건 자신들의 몫이 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일을 도모해도, 반 타작에 못 미치고 있었다. 그래서 머릿속이 바빠졌다.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아졌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게 이렇게 늘어나 있었다. 실패해도 이전의 삶보다 나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실패 따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해서, 그 자리를 꼭 갖고 싶었다. 하늘이.. 내게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면, 내게 그런 능력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엔 늘 원망했던 하늘을.. 이제는 누구보다 그가 제일 믿고 있었다. 하늘은.. 인생은.. 인연은..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무엇이든 존재의 연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다. 실패할 수도 없다. 생각을 마친 남자, 고개를 들어 움막 밖을 바라본다. 결정을.. 알려야 할 것 같다. “들어와라.” #4. 강녕전 신: 좋다~~
채경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운 신은, 아주 오랜 만에 마음까지 누인 기분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부터 내내 긴장을 어깨에 달고 살았다. 이 고운 얼굴 마음 놓고 마주하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독수공방하며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바쁘게 발로 뛰고 있는 부하들 때문에.. 이제나 저제나 소식 한 자 전해 주길 기다리며 밤샘 하고 있는 아내 때문에.. 그는 힘을 내야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으며, 모두를 다독여 움직이게 해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러는 건 모두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의 아내를 거절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쳤다며 그의 침전으로 쳐들어온(?), 채경을 밀어내지 못하고 침전으로 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결과는………… 이 모양이다. 그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따뜻한 차와 입맛 돋우는 주전부리를 맛있게 먹은 후, 얼굴을 봤으니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는 채경을 잡아채고는 이렇게 누워 버렸다. 그 때문에 되려 채경이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이런 전개는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그저 그가 잘 지내고 있나 살피러 온 게 다였는데, 이렇게 눌러앉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황하긴 했어도 그를 밀쳐내진 않았다. 자신이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오랜 만에 폐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채경의 순간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그리하여 남들 눈치를 보는 가운데, 국왕 부부의 오붓한(?) 한때가 시작되었다. 채경: (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신: (미소 지은 채 채경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 좋은 걸 못하고 살았다니.. 아니, 그 놈들을 잡기 전까진 맘 놓고 이럴 수 없다니..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채경: (신의 안색을 살피며 입안에 맴돌고 있는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한다.) 신: .. 채경: (이런 순간에까지 이런 얘길 하는 게 내키진 않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아버지가 떠나면서 마지막까지 당부한 말씀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폐하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폐하가 역적 무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른 덴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말썽도 안 피우고, 바깥 일로 정신 없는 폐하를 대신해 내명부를 다스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해서 폐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적당히 쉬어 주기도 하면서, 그녀 나름대로 폐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폐하의 용안만 잠깐 보고 돌아가자 생각했었다.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분을 붙들고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헌데.. 고맙게도 폐하께서 그녀를 잡아 주셨고, 못 이기는 척 강녕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무릎을 내어 주는 것까지 참으로.. 착하게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슬금슬금 올라오는 호기심에의 탐구욕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입이 근질거렸다. 교태전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또, 너무 많이 캐고 다니는 것도 좋게 보일 것 같지 않아 일부러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작 폐하를 앞에 두고 보니,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신: …………………………….하고 싶은 말 있어? 채경: (생각에 빠져 있느라 신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신: (채경이 멍한 것 같자 손을 흔들어 보인다.) 채경: (그제서야 신 보는) 신: 무슨 생각해? 채경: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 (의심스런 얼굴로 채경 보는) 채경: (신이 너무 빤히 쳐다보자 시선을 급히 돌리며) 저.. 음.. 아버지 소식은.. 좀 있어요? (아무거나 입밖에 내뱉는다.) 신: (채경이 급히 둘러댄 말을 심각하게 듣는다. 좌상의 소식이 궁금해서 그리 망설였나 보다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심각한 얼굴로) 걱정돼? 채경: 예?? 신: 좌상.. 걱정되냐구.. 채경: .. 신: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채경: (신 보는.. 뒤늦게 아버지 소식이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조심스레) 아직.. 연통이 온 건.. 없는 거예요? 신: 응.. 이제 떠난 지 사흘이잖아. 국경까지는 가는 데만 열흘이 걸려. 거기서 또 무영국까지 가서 그곳을 살피고 무영국 왕실과 협상을 하고 돌아오려면, 적어도 달포는 걸릴 거야. 이것도 정말 최대한 빨리 돌아온다는 가정 하에서고.. 채경: 사신단 규모는 얼마나 돼요? 신: 굉장히 커. 좌상이 사신단 대표를 맡았고, 그 밑으로 육조에서 차출된 실무진들이 다 포진됐거든. 무영국과는 처음으로 교역을 트는 거라 살필 게 한 두 가지가 아냐. 첫 술에 배 부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걸 보고 와야 해. 아마.. 고루 분배해서 무영국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올 거야. 그 모든 업무 조율은 좌상이 하게 될 거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좌상밖에 없어. 그래서 보낸 거야. 채경: (신 보는) 신: 나이 지긋한 분.. 그 멀고 힘든 길.. 안 보내고 싶었는데..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좌상밖에 없었어. 채경: ……………………………………..마음.. 쓰이세요? 신: 약간은.. (솔직히 인정한다.) 채경: 그래도 아버진.. 기쁜 마음으로 가셨을 거예요. 신: (채경 보는) 채경: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거.. 폐하께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세요. 겉으로야 쉬게 돼서 좋다고 하시지만, 마음이 무거우신 것 같아요. 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가? 나한텐 홀가분한 표정으로 일관하시더니.. 딸 앞에선 속내를 드러내신 건가? 어쨌든 아쉬워하고 계시다니 좀 덜 억울하군..’ 채경: 그래서.. 떠나기 전에 하나라도 일을 덜어 주고 싶으신가 봐요. 그런 면에서 이번 사신단 일은 아버지께 마음의 짐을 더는 일인 것 같아요. 잘만 마무리되면, 당신께서 물러나더라도 근심을 덜어 드릴 수 있으니까요. 신: .. 채경: 아마.. 기쁜 마음으로 가고 계실 거예요. 신: (그럴 거.. 같다. 좌상이라면.. 그가 아는 좌상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그 힘든 여정을 견디고 있을 것 같다.) 채경: 그런데요.. 그거랑 별개로, 아버지한테 소식이 오면 알려 주세요. 신: ??? 채경: 아버지 건강은.. 신경이 쓰이거든요. (폐하 말씀대로 나이가 있으시잖아요..) 신: 알았어.. 사신단에서 연통이 오는 즉시 얘기해 줄게. 채경: ^^ 신: ^^ (채경이 웃는 걸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평화로운 시간.. 이 평화로움을 걱정없이 만끽할 수 있다면 좋겠건만..) 채경: (마냥 웃으시는 폐하를 보니 입안에서 맴돌던 말은 그냥 삼켜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하신 분.. 나까지 거들지 말자는 생각에 싹 잊기로 한다.) 신: 놀고 싶다.. 채경: 예??? 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데, 이 귀한 시간.. 재미있게 놀고 싶다.. 채경: (신 멀뚱히 보는) 신: 그대 집에 갔을 때 말야.. 굉장히 좋았어. 채경: 무엇이요? 신: 놀이를.. 즐긴다는 게.. 채경: ??? 신: 궁에서 노는 거랑 좀 달랐어. 진짜로.. 노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놀고 싶어져, 때때로.. 채경: ……………………….그런 걸 밖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신: 뭐라고 하는데? 채경: 허파에 바람 들었다고 해요. 신: 뭐?? 채경: ^^ 쓸데 없는 데 사로잡혀서 정신 못 차린다는 의미로 허파에 바람 들었다고 한다구요~ 신: 그래서.. 내가 지금 바람이 났단 말야? 채경: 그런 것 같은데요? 신: 예쁜 여자랑 바람이 난 것도 아니고, 놀고 싶다는 데 뭐가 바람이 들어~ (괜히 트집잡는) 채경: 다른 여자랑 바람 나고 싶으세요? 신: 어?? 채경: 지금 무릎이 부서져라 베게 해 드리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근데.. 다른 여자랑 바람 핀다는 말이 나와요? 신: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채경: 그거나 저거나.. (입 튀어 나오는) 신: (뭔가 억울하다. 어쩐지 말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벌떡 일어난다.) 채경: (신이 자신의 무릎에서 빠져 나가자 본격적으로 삐진 척한다. 고개를 획 틀어 신을 외면한 채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신: (채경 흘끔거리는.. 진짜로 화가 난 건가 살핀다.) 채경: (일부러 진심을 감추기 위해 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괜스레 다른 곳을 쳐다보며 삐진 표정을 짓기 위해 애쓴다.) 신: (채경의 시선을 잡기 위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이러는 거 안 아까워? 채경: 뭐가요? 신: 우리가 어떻게 같이 있는 건데~ 이렇게 시간 보내는 거 안 아까워? 채경: (그제서야 신을 흘끔 보는..) 신: (채경이 보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시선을 잡아 채며) 우리 이러지 말고 놀러 가자. 채경: ??? 신: 한 시진만.. 놀다 오자. 채경: 놀다 오자구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신: 말 그대로야. 나가서 놀자구.. 채경: 후원에라도.. 나가시게요? 신: (픽) 궁 안 말고, 궁 밖! 채경: ??!! 궁 밖이요?!! 신: 뭘 그렇게 놀래? 채경: 궁 밖으로 나가도 돼요? 신: 절대 안 되지~ 채경: 근데 어떻게.. 신: 나랑 같이 나가는 건 괜찮아. 혼자 나가는 건 절대 안 돼. 채경: (이건 또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멀뚱멀뚱 쳐다본다.) 신: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일어나~ 한시가 급해. 채경: (내키지 않는다. 신이 서두르니 더 불안하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신: 이 시점에서, 법도 따지면서 훈계할 생각은 아니지? 채경: (그럴 생각이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자중해야 한다고.. 다른 때도 아니고, 요즘 같은 때 이렇게 분별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고 말리려고 했다. 평소 같으면 그녀가 상궁들에게서 들어야 했던 말들을 신에게 해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저렇게 되물어 보시니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입만 우물거리게 된다.) 신: 아무도 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데로 갈 거야. 채경: 거기가 어딘데요? 신: (씨익 웃는다.) 채경: ??? 신: …………………………………….우리.. 처음 만난 곳.. 채경: (처음…………….. 만난 곳..?)……………………………..심해루요?!!!! 신: 응! ^^ #5. 심해루 채경: (심해루의 후원, 그곳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왠지 모를 감회에 젖는다.) 신: (미소를 짓다가 애잔해지다가 다시 또 미소를 짓기를 반복하며, 옛 시간들을 떠올린다.) 채경: (뭔가에 홀리듯 앞으로 걸어가다가, 망루에 걸터앉게 된다.) 신: (채경을 한번 봤다가 채경 곁으로 가서 역시나 털썩 주저앉는다. 앉은 자세로 채경을 다시 봤다가, 발을 대롱대롱 하며 발장난을 한다.) 채경: (신 보는) 신: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채경: (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래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요망하게(?)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신의 발에 자신의 발을 갖다 대며 툭 친다. 즉.. 발장난을 건 것이다.)
신: (멈칫.. 채경 보는) 채경: ^^ (배시시 웃는다. 다른 뜻은 없다는 듯, 이건 어디까지나 장난이라는 걸 알리는 웃음이었다.) 신: (채경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픽 웃는다. 그리고는 발을 칼 삼아 채경의 다리를 공격한다.) 채경: (이에 질세라 신의 발 공격을 막으며 동시에 공격도 감행한다. 하지만.. 그녀보다 훨씬 길고 단단한 신의 다리에 당할 재간이 없다.) 신: (채경이 가만히 당하지 않고 거세게 반격하자 승부욕이 불끈 솟는다. 그의 아내는 늘.. 그냥 져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하게 한다. 이번에도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이 발장난에 빠져 들게 했다. 진심으로 공격하고, 진심으로 방어하며, 기필코 그녀를 이겨 보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채경: (점점 밀리게 되자 약간 속상해진다. 어떻게 해 보고 싶은데, 힘도 재량도 부족하다 보니 방법이 없다. 그래서 편법을 구사하게 되는데..) 신: ??!! (하..!) 채경: (너무 어이가 없어서 폐하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마지막 공격을 물리지 않는다.) 신: (채경의 두 다리에 잡혀 버린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며 헛웃음 짓는다.) ‘이렇게 다리를 꽉 붙들고 감싸 안아 버리면 공격할 수가 없잖아~’ 채경: (공격을 멈춘 신을 보며 그제서야 긴장을 푼다.) 신: ………………………………….이건 명백한 반칙이야~ 채경: (신 보는) 신: 정당하지 못하다고~ 채경: …………………………그렇게 꼭 절 이기셔야겠습니까? 신: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선 지면 안 되지~ 채경: (어이 없다.) 져 주는 게 이길 때도 있습니다. 신: 이건 거기에 해당 안 되는 것 같은데..? 채경: (눈 흘기는) 신: 그렇게 노려 봐도 하나도 안 무서워. 어쩜 눈을 그렇게 흘기는 데도 색기가 없을 수가 있어? 채경: ??? 신:: 처음에 그댈 봤을 때, 뭐 저렇게 색기(色氣)가 없는 기생이 있지..? 싶었어.. 채경: 색기(色氣)요? 신: 응.. 처음엔 당연히 기생인 줄 알았으니까.. 채경: .. 신: 근데 옷을 그렇게 입고 있는데도 색기가 전혀 흐르질 않는 거야.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채경: (이건.. 칭찬인지 욕인지 판단이 안 선다. 색스러워 보인다는 건 그닥 좋은 평가가 아니라서 욕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폐하께서 하는 말의 문맥상 꼭 그렇게 좋은 뜻만은 아닌 것 같아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신: 하지만.. 내가 만난 그 어떤 기생보다도 날 흥분시켰어. 가슴 뛰게 했고.. 채경: (신 보는.. 가슴 뛰었다는 건 처음부터 내가 좋았다는 뜻인가..?) 신: 그댈 잡으려고 여길 날아다니면서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 여인이랑 그렇게 놀 수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 채경: ‘흠.. 날아 다니느라 가슴이 뛰었다는 건가? 그건 숨이 찼다는 거 아닌가? 그건.. 여인을 좋아하는 거랑은 다르잖아.’ 신: 그래서.. 다시 보고 싶었고.. 그렇게 또 신나게 놀고 싶었어. 채경: ‘그 전에 여인들이랑 어떻게 지냈길래,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신: 만월의 밤.. (후원의 작은 문을 바라보며) 저 문이 열리길.. 얼마나 기원했는지 몰라. 채경: (신의 시선 따라서 문을 바라보는) 신: 세 번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그댈 기다렸어. 채경: (신 보는.. 그때 얘기를 자세히 듣는 건 처음이라 새삼 미안한 마음으로 신을 보게 된다.) 신: (채경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지만, 여전히 시선은 닫힌 문에 가 있다.) 기다려도 저 문은 열리질 않았고.. 끝끝내 나타나지 않은 그대가 원망스러웠어. 그런데.. 원망스러움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채경: ??? 신: 다시는.. 그댈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즐거웠던 시간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채경: .. 신: 없었던 시간이 되는 게 싫었어. 한번만 더.. 그때처럼 자유롭고 싶었어. 날 왕으로 대하지 않고, 그저 여자한테 치근덕대는 남자로 봐 주는 그대를 만나고 싶었어. 채경: .. 신: 그런데.. 그런 여자는 없다잖아. 그곳에 그런 여자는 있질 않다잖아. 그래서 두려웠어. 채경: .. 신: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찾을 수 있긴 한지.. 채경: .. 신: 내가 아는 거라곤 외자로 된 이름뿐인데.. 내가 기억하는 고운 얼굴뿐인데..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 채경: .. 신: 그래서.. 혜민사 계곡에서 그댈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채경: (그들의 두 번째 만남을 떠올린다.) 신: 내가 꿈을 꾼 게 아니었어. 그대라는 여자는 존재했던 거야. 그게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그댄 아마 모를 거야. 채경: (신 보는) 신: (채경 보는) 채경: .. 신: .. 채경: …………………………….폐하를 뵈었던 순간들이 제겐.. 늘 좋지 않았어요. 신: (눈썹 꿈틀.. 자신의 고백에, 돌아온 채경의 고백이 예상 밖이라 눈빛이 흔들리는..) 채경: 언젠가 폐하께 말씀 드렸던 것처럼, 폐하를 뵐 때마다 저는 제가 누군지 속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양반가 규수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만 보였으니까요. 본의 아니게 늘.. 파격적인 모습으로 만나다 보니, 폐하를 만나는 순간들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편하질 않았어요. 계속 도망치고 싶고, 피하고 싶고.. 신: 그럼.. 여길 날아다닌 것도..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어서였던 거야? 채경: ………………………………….(고개 끄덕이는.. 폐하의 기분이 걱정되지만 솔직하게 대답하는..) 신: 나 혼자 착각했던 거네? 채경: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신: 됐어. 위로할 필요 없어. (살짝 삐친 말투다.) 채경: 정말이에요. 도망가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저 역시 자유로웠으니까요. 신: (채경 보는) 채경: 진짜 내가 누군지 밝힐 순 없었지만, 폐하와 나눈 시간들은 아주 특별했어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 앞인데도, 날 보여 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타인들에게 감추고 숨기려 했던 내 모습들을.. 폐하한텐 솔직하게 다 보여 줬어요. 그래서 편했어요. 이상할 정도로 편했어요. 신분을 속여서..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신: .. 채경: 날 좌상 대감의 여식이 아닌.. 약간 특이한 기질을 가진 여자로 봐 주셨잖아요. 아버지 딸인 건 늘 자랑스러웠지만, 세상의 잣대는 날 있는 그대로 봐 주질 않았어요. 그 때문에 내 배경이 배제된 채 만날 수 있는 폐하가 편하고 좋았어요. 신: .. 채경: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꿈만 같아요. 신: (피식 웃는다.) 채경: 왜 웃으세요? 신: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래도 공통된 게 있으니 다행이네~) 채경: ……………………….정말.. 신기한 인연이죠? 신: 응.. 채경: 처음 폐하 뵈었을 땐 그저 기방이나 다니는 샌님일 거라 생각했어요.. 신: 뭐??!! 채경: 복색이 그래서, 글 깨나 읽는 양반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더 당황했잖아요. 혹시 날 아는 양반이 아닐까..? 아버지가 아시는 날엔, 끝장인데.. 하는 생각에.. 신: 심기 불편한 얼굴로) 그러게, 멀쩡한 처녀가 왜 그러고 돌아 다니고 있어? 채경: 궁에 계셔야 할 폐하께선 왜 그러고 여기에 계셨는데요? 신: (하..) 따지는 거야? 채경: (네! 따지는 겁니다! 폐하만 따질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저도 따질 권리 있습니다~!) 신: (눈을 부라리며 눈으로 얘길 하는 채경 보며 어이가 없다.) 그렇게 노려 봐도 하나도 안 무섭다니까~ 채경: 다시 원점이네요. 신: (픽) ‘그러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네..’ 채경: 어?!! 신: ??? 채경: (하늘 가리키며) 방금 보셨어요? 신: 뭘?? 채경: 유성(流星)이요.. 신: (채경의 말에 하늘 보는) 채경: 방금 하나가 떨어졌어요. 신: (유성이 떨어지면 이건.. 심상치 않은 징조일 텐데..) 채경: (아쉬워하며) 소원 빌었어야 되는데.. 신: …………….소원?? 채경: 예~ 유성 보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거든요. 신: 유성 떨어져서 난리가 났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채경: 어쩜 그렇게 재미가 없으세요? 신: (억울해 하며) 재미를 떠나서, 고서(古書)에 나오는 얘기야. 위정자라면 흘려 들어선 안 되는 천문 현상이라구.. 채경: (복잡한 얘긴 듣기 싫다는 듯 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말싸움 하다가 유성을 놓칠까 싶어 마음이 급하다.) 신: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자세를 잡는 채경을 물끄러미 구경한다. 그렇다.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는 구경을 하고 있다. 유성 따위를 보며 소원을 빌겠다는, 순진무구한 아내가 재미있다. 심심하고 지루한 그의 인생에, 어쩜 이리 재미나고 신기한 존재가 나타났는지.. 생각할수록 고맙고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채경: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유성이 다시 보이길 기원한다.) 신: …………………………………..유성한테 무슨 소원 빌려구? 채경: 그런 건 말하면 부정 타요. 신: 내가 전에도 말했지? 그렇게 속 좁은 신한텐 빌지 말라고.. 채경: (신 째려 보는..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부정 탈 말만 하는 폐하가 원망스러운..) 신: 하.. 눈빛에 질려 죽을 수도 있겠다~ 채경: (이를 꽉 다물고 씹어 뱉듯이) 저 이러는 거 하나도 안 무섭다면서요? 신: 지금 건 좀 무서웠어. 진심이 담겨 있네~ 아니, 사심인가? 채경: (여전히 놀리는 신의 언사에 기분이 나빠져서 장소를 옮기기로 한다. 가볍게 바닥을 차서 지붕 위로 올라가 버린다.) 신: 하.. (채경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 저걸 진심으로 믿고 저런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현명한 나의 부인께서 잠시 어딜 가신 모양이다. 오늘따라 철 없는 아이처럼 굴고 계셨다.) 채경: (신의 방해가 없어지자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그래서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이때, 기적처럼 또 하나의 유성(流星)이 밤하늘을 가르며 나타났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 사라져 버린 유성..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채경이 소원을 비는 시간으로는.. 신이 그의 눈에 유성을 담는 시간으로는.. 채경: ‘폐하를.. 운우국을.. 지켜 주세요.’ 신: ‘어서 빨리 이 일이 끝날 수 있게.. 네가 도와줄 수 있겠냐? 너 따위에게 이딴 바람을 얘기해야 하는 게 참..’ #6. 한 시진 후 정확히 한 시진 후, 강녕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신. 채경을 교태전으로 보내고 일터로 복귀하는 중이다. 다시 또 머리 복잡한 일과 대면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어서 일하길 원하는 듯 신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신: (강녕전으로 들어서면서) 아예 둘이 한꺼번에 압박하러 온 거야? 환익, 월희: (신이 도착하자 안도와 함께 긴장감 어린 얼굴로 맞이한다.) 신: (둘을 지나쳐 상석으로 올라서며) 왜? 무슨 일이야? 환익, 월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신: ??? 환익: (월희와 둘일 땐 늘 그가 보고를 담당했다. 이번에도 월희는 보고를 미뤘다. 해서 그가 앞으로 나서야 했다.) 신: (둘의 분위기를 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말해.. (운을 떼 준다.) 환익: (신 보는) 신: (환익 보는) 환익: 방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신: .. 환익: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신: 왜? 이연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환익: (고개 젓는다.) 신: 그럼..? 환익: ……………………………………….희연 공주가.. 암살당했답니다. 신: ??!!!!!!! 환익: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신: (환익 보는) 환익: ………………………………….희빈 마마께서.. 살해 당하셨습니다. 신: !!!!!!!!!!!!!!!!!!! |
'플래닛 >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상상소설>왕(王)의 여자(50) 도처에 위험이.. (0) | 2009.12.17 |
---|---|
[스크랩] <상상소설>왕(王)의 여자(49) 왕, 제대로 된 꼬리를 잡다 (0) | 2009.12.10 |
[스크랩] <상상소설>왕(王)의 여자(47) 숨가쁜 꼬리 추격기 (0) | 2009.12.03 |
[스크랩] <상상소설>왕(王)의 여자(46) 천하무적 임금님 (0) | 2009.12.01 |
[스크랩] <상상소설>왕(王)의 여자(45) 소문 속 임금님을 믿지 마세요 (0) | 2009.11.27 |